시지각 기능이 왜 사람마다 차이가 날까?

페르난도 보테로와 안구운동

HB두뇌학습클리닉

지역내일 2010-12-19
 페르난도 보테로와 안구운동

차를 타고 달리다가 눈에 번쩍 띄는 간판 하나. 돈(豚) 주마.  돈(錢) 주면 삼겹살을 주면서 마치 돈(錢) 받아가며 삼겹살 먹는 느낌이 강타하는 간판이다. 주인장의 머리씀이 예사롭지 않다. 살집의 대표격인 삼겹살을 이렇게 횡재한 기분으로 만들어 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살집으로 풍성한 느낌을 전달하는 화가도 있다. 사람 모양의 고무 풍선에다 최대 폐활량을 소모해 불어 만든 듯 부풀어 있는 사람들. 부풀어 터질 듯한 오동통한 손을 덥석 쥐면 감미로운 촉감으로 전신이 따뜻해질 것 같은 느낌. 페르난도 보테로이다. 보테로 전을 관람하려는 구름같은 인파 때문에 표를 사는 데만 해도 덕수궁의 수문장 교대식을 다 볼 수 있을 정도로 오래 기다렸다.


보통 살집은 축축 늘어져 주름을 형성하기 때문에 결코 아름답지 않는데 그림 속의 살집들은 어찌 그리 주름없이 매끈한지....저럴 수만 있다면 살집도 아름다움의 반열에 들 수 있을 것 같다. 토실토실한 애기한테서나 볼 수 있는 경이롭고 건강한 살집이 전시회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보테로의 새로운 시각에 젖어 실컷 풍성함을 맛보던 중 풍성함과는 다른 맛이 입에 딱 걸려 걸음을 고정시켰다. 


그림 제목이 ‘자매들’... 뒷줄에는 언니들이 여럿 명 포진해 서 있고, 앞자리에 키가 작고 노랑머리에 붉은 리본을 과장되게 매고 있는 막내로 보이는 모델의 눈동자가 발길을 멈추게 만든 주범이었다. 뒷줄의 언니들은 화가를 쳐다보는 듯 한 곳을 향해 일정하게 눈길이 정렬되어 있는데 유독 막내만 코 앞을 쳐다 볼 때처럼 양쪽 눈동자가 가운데로 확 몰려있는 것을 보자 다양한 상상력이 몽글거리기 시작했다. 


자매 중 제일 어려서 화가의 요구에 협조를 안 하고 딴 짓을 한 결과일까? 화가인 보테로를 열심히 쳐다 보고 있는데도 눈동자가 밖으로 자연스럽게 움직여지지 않아서일까? 보테로가 본대로 그린 거라면 어떤 이유로 저 모델은 안구운동의 자연스러움을 잃어버린 걸까?


막내의 눈동자가 다른 사람과 달리 적절한 시선 처리가 안되어 다소 엉뚱하고 모자라 보이는 이미지로 그려진 것이 ‘자매들’외에도 ‘정원 가꾸기’ 등 서너점의 그림에서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때 매번 딴 짓을 했다고 보기도 어려울 것 같다. 딴 짓을 한 게 아니라면 원하는 곳을 볼 때 자연스럽게 조절되어야 하는 안구운동에 제한이 있는 모델이란 말인가? 그럴 가능성도 없는 것이 보통 안구운동에 문제가 있어도 육안으로 표시가 잘 안 나고 딱 봐서 누구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안구운동에 제한이 있으면 사시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사시는 눈모음 운동을 시켜보면 양쪽 눈이 같은 각도를 이루며 안으로 절대 모아지지 않는다.


화가 앞에 섰을 때마다 딴 짓을 했다고 보기도 어렵고 양 눈이 안쪽으로 동시에 모아진 것으로 봐서는 사시도 아니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저렇게 눈에 띄게 양안이 안쪽으로 모아진 이유는 뭘까? 상상이 연이어져도 상상의 결과물이 없으니 억지로 연상을 지속시켜보면 페르난도 보테로가 사시를 가진 모델을 그리다가 정상적인 시선과 비정상적인 시선의 차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 사시에게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과다한 눈모음으로 그린 것 일 수도 있겠고, 보테로의 눈에는 사시를 가진 모델의 다소 어긋난 눈길이 마치 지나친 눈모음으로 비춰진 결과 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진실은 보테로 자신만 알고 있을테니... 상상은 상상일뿐, 진실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상상일 것이다.



어떤 물체를 볼 때 한 쪽 눈은 그 물체를 응시하지만 다른 한 쪽 눈은 그 물체를 바라보지 못하고 다른 곳을 보는 경우를 사시라고 한다. 두 눈이 같은 각도로 모이거나 벌어져야 초점이 맞춰져 물체의 상이 정확하게 하나로 보이는데 양안의 초점이 맞지 않는 사시의 경우 물체의 상이 겹쳐져 보여 복시가 생기기 쉽다. 사시처럼 한 순간에 두 개의 사물에 대한 정보가 들어오게 되면 두뇌 시스템에 혼란이 생기게 되므로 아무래도 초점이 안 맞는 사시가 있는 쪽에서 들어오는 물체에 대한 정보를 두뇌가 무시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그 쪽 눈을 덜 사용하게 되고 사용을 덜하면 덜 발달되는 진화의 원리에 따라 사시가 있는 쪽의 시력이 다른 눈에 비해 더 떨어질 가능성이 생겨나게 된다.




사시를 가진 아이처럼 양안 운동이 안 될 경우 보고 인식하는 기능이 떨어진다. 간헐 사시가 있어 수술 후 바깥으로 드러난 문제가 없어진 경우나 약시 때문에 정상 시력인 눈에 가림치료를 해서 약시가 해결된 경우에도 안심해서는 안된다. 이렇게 사시나 약시는 시지각 기능의 저하로 학습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짐작이라도 할 수 있지만 외관상이나 시력의 발달에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도 보고 인식하는게 정확하지 않는 경우도 간혹 있어 학습능력을 끌어내리는 원인 찾기를 매우 어렵게 만들고 있다.


망막에 상이 정확하게 맺히면 정상시력이 나온다. 정상시력임에도 침대 위에 있는 손수건을 찾아오라고 하면 “어디 있어, 안보여, 엄마가 찾아봐”라고 한다던지, 피구할 때 본인은 분명히 공이 오는 위치에 손을 내밀었는데 손 끝 앞에서 공이 뚝 떨어져 버려 공을 받아본 기억이 까마득하거나 친구들이 공을 주기를 꺼리는 대상 1호로 지목을 당하고 있거나 알림장 쓰기가 늦거나 노트 필기를 아예 안하거나 영어 단어를 유난스럽게 외우기 힘들어 한다면 본 것을 인식하는 속도가 늦거나 또래에 비해 상당적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시지각 문제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


 
청지각이 안 들리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못 들어 지시내용을 잘못 이해하는 것이라면 시지각은 안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기는 보는데 본 것을 정확하게 인식하기가 힘들고 남들보다 본 것을 인식하는데 시간이 걸려 학습 속도가 늦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시지각 기능이 떨어지면 칠판에 있는 글자가 상대적으로 눈에 적게 들어와 친구들이  2~3단어를 한 번에 보거나 한 줄 전체를 한 번에 보고 적을 때 한 자 적고 칠판 보고 한자 보고 노트에 적는 식으로 거북이 필기법을 하게 된다.




그럼, 시지각 기능이 왜 사람마다 차이가 날까?


많은 원인이 있지만 안구운동 제한과 얼렌증후군인 시지각 스트레스 증후군이 주요 원인이다.


우리가 칠판을 볼 때는 두 눈동자가 벌어지고 가까이 있는 책이나 모니터를 볼 때는 양 눈이 안으로 쫙 모여야 한다. 양쪽 눈이 벌어지는 것은 눈의 개산운동, 모아지는 것이 폭주운동이다. 이런 눈운동에 문제가 없어야 칠판에 적혀있는 내용을 노트로 옮겨 적는데 어려움 없이 정해진 시간 내에 적을 수 있고 내용을 빠뜨리지 않고 글씨도 이쁘게 쓸 수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해 알림장을 대충 적어오거나 아예 안 적고 외어오거나 적어오더라도 글씨가 노트 칸을 벗어나 있거나 글씨가 엉망일 경우 안구운동의 문제를 생각해봐야 한다. 안구운동이 자연스럽지 않은 어떤 초등학생은 알림장을 거의 적어온 적이 없다고 한다. 다 외워서 왔다고 하는데 엄마는 아이가 머리가 좋아서 그런 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4학년이 되자 국어는 지문 읽기가 안 되고 사회는 암기가 안 되기 시작하면서 난독증을 우려해 필자를 만나 아이의 상태에 관한 점검을 받고서 알림장을 적지 않고 외워왔던 이유가 안구운동의 제한으로 개산과 폭주운동이 원활하지 않아 쓰기 보다는 외우는 것이 더 수월해 외워서 왔다는 설명을 듣고 “그런 줄도 모르고 글씨 좀 이쁘게 쓰라고 매일 야단치다 시피하고 다른 애들처럼 알림장 좀 적어 와서 보여주는 게 소원이었는데 진작에 알았으면 저도 나도 고생을 덜 했을 것이다”고 하셨다.


특히, 현대인은 양 눈이 모아지는 폭주운동이 안된다고 한다. 책 보기에 꼭 필요한 폭주운동이 안 되는 이유가 뭘까? 사람의 눈은 애초에 멀리 보게끔 설계 되었다. 수렵과 채집 등 원시 경제 활동을 하기에 적합한 형태이다. 그러나 문자가 생기면서 책을 보기 위해 가까이 있는 것을 오랫동안 볼 수 있게끔 원설계의 재조정이 필요하게 되었다. 현대인에게 책을 보거나 모니터를 보는 일이 원시경제의 수렵, 채집활동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산운동 중심에서 폭주운동 필요의 증가에 적응이 잘 된 사람은 가까이 있는 사물을 보는데 어려움이 없으나 적응이 안 된 경우에 폭주운동 장애가 오게 되는데 현대인의 약 80%가 이 문제를 갖고 있다고 한다. 결국 폭주운동 장애는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진화적 문제라고 봐야할 것 같다.


폭주 운동이 안 되면 근거리 작업을 오래하기 힘들기 때문에 공부를 하거나 책 읽기를 힘들어한다. 책 읽기가 힘들다보면 읽기에 전력을 쏟아 붓게 되어 내용을 생각할 겨를이 없어 읽고나서도 머리 속에 남아 있는 것이 없다. 개산과 폭주 운동이 원활하지 않으면 눈을 덜 움직이려고 하기 때문에 심한 경우 알림장을 쓸 때도 시선이 칠판과 노트 사이를 왔다 갔다하지 않고 아예 칠판에 시선을 두고 쓰는 경우도 있어 글씨가 엉망이 되는데 글씨가 악필일 경우에도 안구운동 상태를 점검해봐야 한다. 이렇게 안구운동에 문제가 있는 아이에게서 다음과 같은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책 읽을 때 눈이 가렵거나 아프다고 하거나 자주 눈을 비비고 두통을 호소하고 책을 20~30분 이상 보지 못하고 심하면 책만 들면 조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럴 때는 아이의 시지각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자세히 물어 보야 할 내용이 있다. 눈이 흐릿해지는지, 글자가 흔들려 보이다가 다시 보이는지, 갑자기 앞이 흐릿해지고 사물이 뿌옇게 보이는지, 책을 가까이 하면 눈에 힘이 쏠리는 느낌은 없는지, 눈을 자주 찡그리고 깜박이게 되는지, 학교에서 1교시가 끝나고 나면 눈이 피곤한지 등등의 질문을 통해 아이도 엄마도 인식하지 못했던 안구운동의 문제는 없는지 확인해 보는 게 필요하다.


그 다음의 절차로는 약시나 사시, 시력의 문제는 없는지 안과 검진을 받아보고 안과적으로 깨끗하다는 소견을 들었는데도 그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안과적 문제는 없으나 눈의 기능이 떨어지는 상태로 봐야 한다. 습진이나 화상 등의 의료적인 문제가 없어도 환하고 깨끗한 피부를 위해 피부관리를 하듯이 안과적 문제가 없어도 보고 인식하는 기능이 떨어지고 책을 보고 나면 유난히 피곤하다면 시지각의 기능 향상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안구운동 훈련 후에 아이들의 대부분이 보는게 쉬워졌고 잘 보인다고 한다. 전에는 희미하게 보이고 흐트러져 보였는데 이제 책을 읽을 때나 칠판의 글씨를 볼 때도 잘 보인다고 말한다. 수학 시험에서 실수가 줄고 아는 것도 틀리는 답답한 일도 덜 생기고 공부하는데 속도도 붙게 된다. 훈련 후 책장에서 책을 꺼내며 “엄마, 나, 이제 눈이 잘 보여요. 이 책 재밌어요. 제가 읽어 봤거던요”라는 아이의 말을 듣고 기뻐하는 부모는 아직 한명도 보지를 못했다. 아이의 말에 충격을 받아 좋아졌다는 말이 귀에 안 들어오는 상태가 된다. 그럼 이때까지 글씨가 어떻게 보였다는 이야긴가? 라는 생각에 머리 속이 복잡해지는게 시지각 훈련 효과에 대한 대부분의 반응이었다.


돈을 잘 벌고 싶지 않은 가장(家長)은 없듯이 공부를 잘하고 싶지 않은 아이는 거의 없다. 공부를 안하려고 한다면 게을러서.....하기 싫어서.....집중력이 부족해서.....라는 일반적인 해석으로 아이의 어려움을 덮지 말고 다양한 해결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아이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글 : HB두뇌학습클리닉 노원센터 이명란소장
문의 : 932-7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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