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 커피 CEO 3인, 커피에 얽힌 스토리를 말하다

지역내일 2010-12-16 (수정 2010-12-16 오후 1:56:17)

하얗게 내리는 함박눈 속에도, 고즈넉한 아침을 깨우는 새벽공기의 알싸함 속에도
커피는 명료하게, 때론 아련하게 스미어 추억 같은 맛을 선사해준다.
어느새 우리네 일상 깊숙이 들어와 진한 향을 선물하는 커피, 각자의 취향에 따라
제각각의 색깔과 맛으로 혀끝에 저장된다.
혼자여도 좋지만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더욱 진가를 발휘하는 소통의 전령.
분당의 커피 CEO 3인이 들려주는 달콤 쌉쌀한 추억, 커피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연두’ 여선구 대표
커피는 맛있는 소통이다

분당 율동공원의 뒷자락 고즈넉한 골목을 끼고 돌면 커피 볶는 냄새가 은은하게 퍼지는 곳이 있다.
서울 삼청동에서 시작, 분당으로 이어져 맛있는 원두커피의 대명사로 알려진 ‘연두’의 여선구(41) 대표, 그리고 ‘커피와 사람들’이다.
가공커피가루에 프림과 설탕이 적절한 비율로 간(?)맞게 들어간 인스턴트커피가 주류를 이루던 7~8년 전, 커피가 좋아 무작정 시작한 그에게 가슴 뛰게 하는 에너지원인 커피는 어느덧 삶을 구성하는 전체가 되어 버렸다.

맛있는 커피는 공정무역 커피다
“제가 처음 시작할 7~8년 전만 해도 커피에 대한 정보도 거의 없고 좋은 커피에 대한 기준도 없었어요. 대개는 벌크로 들어오는 저급한 커피가 주류를 이뤘죠.”
생두에 대한 정보도 얻고 맛있는 커피를 찾아 생산지로 눈을 돌려야 했던 여 대표.
“산지에서 제가 경험해본 맛있는 커피들 앞에 대부분 FTO가 붙었는데 처음엔 그게 뭔지도 몰랐죠.”
나중에야 ‘페어트레이드오르가닉’의 약자였던 것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무조건 FTO가 붙은 생두만을 취급, 역시나 실패율 제로에 가까운 품질 좋고 맛좋은 커피를 손님들에게 선사할 수 있었다.
그렇게 2002년 봄 안산에서 시작한 작은 커피 집은 서울 삼청동 ‘연두’라는 카페로 유명세를 타게 되었고 2005년 분당의 ‘커피와 사람들’로 맛있는 커피를 알리기에 이른다. 연두를 열면서 생두를 가져다 볶는 로스팅을 하기 시작했다. 원두커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없던 때라 외로운 시작이었다.
그렇지만 갓 볶아 내린 신선한 원두커피는 고객에게 전달하고픈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차츰 좋은 커피를 알고 찾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공급에 있어서는 아직 편하지 않은 거품이 있음을 그는 아프게 직시한다.
“다국적 기업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커피 프렌차이즈는 공급을 늘려났을 뿐이죠. 사람들 눈에 띄는 입지조건에 화려한 인테리어가 먼저다 보니 커피 가격만 올려놓는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아무리 품질이 좋고 맛있는 커피라도 한잔 당 3천 원 이하가 적당하다고 보는 여 대표.
소규모 농장도 점차 거대 자본에 종속되고 있는 현재의 커피 시장에서 좋은 생두 농장을 개발하고 직거래를 통해 저렴한 가격에 신선한 커피를 제공하는 시스템, 그가 목표로 삼고 있는 사업 방향이다. 

카페주인과 친해지면 맛있는 커피가 온다
이쯤에서 그가 말하는 맛있는 커피를 무엇일까.
“세상에는 2종류의 커피가 있습니다. 맛있는 커피와 맛없는 커피죠. 커피집 주인장과 친해지면 맛있고 좋은 커피를 마실 수 있습니다. 하하하”
그럼에도 커피를 고르는 기준에 있어선 까다로운 여 대표. 원두커피를 구입할 때는 신선도를 가장 먼저 고려해야한다고 귀띔한다.
“갓 볶은 신선한 커피를 마셔봐야 커피의 진짜 맛을 알 수 있어요. 우리가 흔히 먹는 2~3개월 지난 커피는 원칙적으로 커피의 본래 맛을 잃은 커피들입니다.” 로스팅한지 10일 이내, 100g 단위로 사서 5번 정도 내려먹는 분량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그가 운영하는 커피 집에서도 기본으로 삼고 있는 원칙이다.
집에서도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여 대표의 팁 하나. 커피 물을 끊이면서, 여과지를 펼치면서, 커피가 내려지는 모습을 눈과 코로도 맛보라는 것. 커피를 얻기 위한 기다림을 즐겨보는 일, 역시나 최상의 커피를 얻기 위해 필요한 마지막 2% 임에 동의되었다.
권미영 리포터 myk31@paran.com

‘풀시티’
임경춘 대표
커피는 감미로운 음악으로 완성된다

맛있는 커피는 좋은 원두에서 출발해야 온전히 그 맛과 향을 낼 수 있다. 음악과 미술 역시 역시 그 소중함을 아는 이를 만나야 제 빛을 발한다. 커피가 있는 열린 문화공간 분당 서현동 ‘풀시티’의 임경춘 대표는 커피만큼 진한 문화의 향기를 뿜어내는 인물이다.

분당의 예술코드 알고 싶다면 풀시티로 가라 
카페 벽면에 걸린 그림들이 눈길을 사로잡고 은은한 클래식과 재즈의 선율이 끊이지 않는 곳 풀시티의 임경춘(6) 대표. 그는 일명 ‘다방커피’라 불리는 달달한 믹스커피가 주류이던 90년대부터 원두커피 알리기에 앞장서 온 커피애인(커피愛人)이다.
“커피믹스의 지존이라 할 만큼 원래 우리나라의 인스턴트커피 제조 기술은 독보적이죠.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원두커피의 역사는 길지 않아요. 1996년 신촌 이대 앞에 스타벅스 1호점이 들어오면서 일반인들이 원두가 뭔지 알게 됐으니까요.”
임 대표는 2004년 분당에서 처음으로 매장에 기계를 들여놓고 직접 로스팅한 커피를 내렸다. 당시만 해도 로스팅기를 찾아보기 힘들었고 드립커피 또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커피와 예술은 일맥상통한다고 했던가. 그의 진한 커피 향은 분당의 문화예술인들을 풀시티로 불러모았고, 언제부턴가 ‘분당의 예술 코드를 알고 싶다면 풀시티로 가라’는 얘기가 들려왔다. 그 역시 분당윈드오케스트라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는 예술애호가다.
“분당사랑방클럽 등 음악동호인들의 공연이 자주 열려요. 매장의 흰 벽면을 살려 화가들에게 전시공간으로 내주고 있죠. 어떤 분은 이곳에서 그림을 20점이나 팔기도 했으니 갤러리 역할까지 하고 있는 셈이네요.”
 
음악과 함께 하는 커피야말로 최상급의 ‘스페샬 티’
그가 취급하는 커피는 스페샬 티로 전 세계 커피 생산량의 5% 정도밖에 되지 않는 고급품종들이다. 주로 콜롬비아 수프리모, 브라질 산토스, 과테말라 안티구아, 인도네시아 만데링, 에디오피아 모카류를 브랜딩한다. 그렇다면 하루에 커피 서 너잔은 꼭 마신다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커피는 어떤 맛일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커피는 하와이에서 재배한 코나에요. 자메이카의 블루 마운틴, 예멘의 모카와 함께 세계 3대 커피로 불리는 코나는 향이 깊고 쓴 맛 없이 달콤한 맛이 특징이죠.”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오늘의 커피’가 리필됐다. 일명 ‘단일원두’라고도 부르는 피버리(Peabery) 커피. 반으로 쪼개질 수 없는 땅콩처럼 둥근 모양의 원두만을 골라낸 것이다. 한쪽 면이 평평한 일반 원두에 비해 로스팅이 고르게 되고 고밀도로 이뤄진만큼 맛과 향이 뛰어났다. 원두의 품질과 신선도, 로스팅과 드립방법 등에 따라 커피의 맛은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그는 커피를 제대로 즐기는 비결은 따로 있다고 했다. 
“커피는 살아있는 생물체라서 아무리 좋은 최상급의 커피도 볶은 후 보름이 지나면 맛과 향이 현격히 떨어지죠. 조금씩 사서 그때그때 마시는 게 가장 좋아요. 하지만 진짜 커피의 맛과 향은 어떤 분위기에서 누구와 마셨는지가 좌우하는 것 아닐까요.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는 루왁커피도 음악 없이 마신다면 2% 부족한 맛일테니까요.”
홍정아 리포터 tojounga@hanmail.net

‘가비양’ 양동기 대표
커피, 사람의 손에서 다시 태어나다

양동기 대표 커피, 사람의 손에서 다시 태어나다4남매가 모두 커피업에 종사하는 유명한 커피 패밀리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지금이야 집에서도 원두커피를 즐기고, 골목마다 핸드드립커피 전문점이 들어서고 있지만, 커피명가의 명성이 쌓아지기까지 그들은 얼마나 앞선 세월을 살았을까 궁금했다.
서현역 먹자골목에서 끝자락으로 들어간 (주)가비양의 카페 커피부띠끄 G. 이른 아침 문을 열고 들어선 그곳에선 진한 커피향이 스며 나왔고, 커피라는 매개물로 모여진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커피를 볶는 사람, 커피를 내리는 사람, 커피를 마시는 사람, 커피를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 그리고 양동기(41)라는 커피쟁이를 만났다.
“저희 집안이 커피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큰 형님 때문이었죠. 형님이 국내 최초 원두커피 프렌차이즈 회사에 입사했다가 퇴사해서 로스팅 커피원두 납품회사를 차리셨어요. 저는 일본에서 전공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제게 커피 일을 맡기셨죠. 반강제적으로(웃음)”
그렇게 시작하여 집안의 넷째 양동기 사장은 10년간 원두와 커피기계 수입, 커피아카데미, 카페 컨설팅 일을 해왔다. 이 모든 일을 하는 곳이 주식회사 가비양이다. 둘째 양미라 씨는 분당에서 ‘양미라 커피교실’을 운영하고 있고, 분당동의 커피해피는 셋째 양철안 사장이 운영한다.
‘가비양’은 무슨 뜻일까 궁금했는데, 양 사장은 “고종황제가 커피를 즐기셨을 때, 양탄국에서 들어온 가비차라고 부르셨답니다. 그래서 붙인 이름이 가비양이죠. 전 세계 사람들이 부르기 좋게 만든 순수 우리말입니다”라고 설명했다. 
한 잔의 커피를 마시는 최종 소비자는 그저 커피향과 분위기를 즐길 지 모른다. 하지만 커피에 관한 모든 과정을 책임지는 양 사장과 가비양 직원들에게 커피 한 잔은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커피 한 잔은 농부가 뿌리는 씨앗에서 수확과 탈곡, 건조와 유통, 보관과 로스팅, 추출의 과정을 거쳐 얻어집니다. 이 모든 과정 중 한 가지만 잘못돼도 1년 수확한 커피의 맛이 무너지는 거죠. 커피도 와인처럼 그 세계가 심오한데, 와인과 달리 과정에 저희가 참여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게 매력적이죠.”
그렇기 때문에 양 사장은 스스로를 ‘커피쟁이’라 자칭하면서 본능처럼 좋은 원두를 찾아 세계를 돌아다닌다. 좋은 원두를 찾아 나서는 길은 험하고도 멀지만 커피 키우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양 사장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콜롬비아 커피 농장에 갔었을 때였어요. 정성들여 키운 커피콩을 싼값에만 사가려는 수입업자에 대한 반감이 있어서 농부들이 저를 경계의 눈으로 대했죠. 하지만 전 콩을 찾으러 온 게 아니라 사람을 찾으러 왔다고 말했어요. 저의 관심은 온통 커피보다는 커피 키우는 사람들에게 있었거든요. 결국 커피는 사람의 손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니까요.” 
그렇게 태어난 커피가 ‘나부시마케’다. 가비양 커피부띠끄 G에서는 농부의 땀과 손길, 가비양의 정성과 기술이 담긴 나부시마케의 순수한 마음 한 잔을 마실 수 있다.
오은정 리포터 ohej0622@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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