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생님 - 풍산초등학교 정영원 교사

지역내일 2010-12-14

 “마을활동으로 배움의 공동체 만들어요”

 어린이 자치회의는 끝날 줄 몰랐다. 애국가 1절, 교가 부르고, 잘못한 일 돌아보고, 주간 계획 전달하고 15분 만에 끝나는 어린이 회의가 아니었다. 정해진 시간이 끝나도 의견이 넘쳐나는 활기찬 교실. 이곳은 풍산초등학교(교장 윤석중) 6학년 3반 참살이 마을이다. 

직업을 갖고 일하며 세상을 배우는 교실
“사진을 팔 건데 많이 사주면 좋겠어요. 한 장에 200콩이에요.”
“우리가 월급을 240콩 받는데?”
“환불은 안 됩니까?”
마을의 시민들인 어린이들은 직업을 갖고 일해서 자치 화폐인 ‘콩’을 번다. 노동에는 수업을 포함한 모든 학급 활동이 포함된다. 은행이 있어 대출도 받는다. 직업에는 경찰, 감사, 재정경제부와 법률가, 섬김이, 과학부, 문화부 같은 ‘공무원’들과 찻집, 유기농 매장, 문방구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이 있다. 직업을 정할 때는 면접을 거치는데 원하지 않을 경우 백수로 남을 수 있다. 자치 회의에서는 얼마나 일했는지 발표하고 콩을 지불해줄 것인지 다수결로 결정한다. 지불된 콩은 재정경제부에서 관리하는데 통장과 장부, 은행기록이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
“과학부는 일을 안 했네요.” (사회자)
“실험실은 누가 정리했다고 생각하냐?” (과학부)
“증인 있습니까?”(사회자)
아이들이 손을 들었다. 과학부는 월급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교사는 안내자의 역할을 할 뿐, 자치회의는 자율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얼핏 어수선해 보였지만 가만 들여다보면 평등한 관계, 건설적인 비판과 관용, 설득과 타협, 경청 등 민주사회에 필요한 덕목들이 녹아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누군가는 ‘아이들을 돈으로 활동하게 한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4년째 어린이마을로 학급을 꾸려온 강영원 교사의 말은 다르다. 상대의 말을 듣고 내 생각을 말하는 아이들로 자라나더라는 것이 그의 경험이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하나라도 배우고 가게 하자
 강영원 교사가 마을활동으로 학급운영을 하게 된 것은 <좋은교사운동모임>에서 벤포스타에 대해 배운 것이 계기가 되었다. 벤포스타는 1956년 에스파냐 오렌세에서 실바 신부가 가난 때문에 버림받은 아이들을 모아 만든 마을이다. 아이들은 마을의 주민이 되어 직업을 갖고 자치 법에 따라 생활하고 배우며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제 앞가림을 하면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배우는 벤포스타 마을의 이야기는 그에게 하나의 모델이 되었다.
“두 번째 발령받은 학교에서 가정방문을 나갔을 때 한 학부모님이 교육철학이 뭔지 물으셨어요.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다 ‘배움의 공동체’ 이론을 만났죠.”
배움의 공동체는 ‘모든 아이들이 학교에서 하나라도 배우고 가게 만들자’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 전에는 인성교육이냐 수업이냐 고민이 많았어요. 수업을 통해 인성교육을 하자는 것이 ‘배움의 공동체’의 가르침이에요.”
‘배움의 공동체’이론과 ‘벤포스타’가 만나 정영원 교사만의 마을활동으로 틀이 잡혔다. 그가 운영하는 ‘참살이 마을’이 그것이다. 정영원 교사는 교실의 책상을 전체적으로 ㄷ자가 되게 배치한다. 컴퓨터와 TV는 한쪽으로 치우고 작은 책상에 앉아 아이들과 마주보고 수업한다.
“여기 앉아서 보면 아이들이 다 보여요. 수업에 집중 안하는 아이한테 다가가 뭐하냐고 물으면 어떻게 알았냐고 신기해해요.”
수업에 방해만 하지 않으면 지적받을 일이 없었던 아이들, 관심밖에 놓였던 아이들이 점차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하얗던 책에는 무언가 내용들이 적혀갔다.
아이들은 서로 마주보고 있으니 보기 싫어도 보아야 하고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한다. 상대방의 말을 듣고 난 다음 그것을 바탕으로 의견을 말하도록 이끌어주니 논리 있게 발표하는 힘도 길러졌다.
“아이들이 말이 많아지고 관계가 편안해서 좋은 점도 있지만 힘들기도 해요. 교사가 수업 준비를 잘 하지 않으면 교실이 소란스러워지기 때문에 연구와 고민을 열심히 해야죠.” 

한 해 문자 1천5백통...학생, 부모와 소통하는 교사
강 교사는 마을활동으로 학급운영을 하면서 준비물을 챙겨오지 않았다고 혼낼 일도 없다. 50콩을 내고 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은 돈의 맛을 어릴 때부터 알죠. 마을활동을 하면 돈을 바로 알고 쓸 수 있게 돼요. 직업이 쉬운 게 아니라는 것도 배우죠.”
아이들은 마을 안에서 건강한 사회의 모습을 경험한다. 주민들이 욕을 조금 심하게 한다 싶으면 시민운동가들이 나서서 욕하지 말자는 캠페인을 벌인다. 따돌림 문제가 생길 때도 먼저 다가가 도와준다. 파산한 아이들에게는 기부를 해서 돕기도 한다. 기부 받은 콩을 모아 강 교사가 현금으로 바꿔 유니세프에 실제로 기부하기도 한다. 
 “공부 말고도 잘하는 일이 있다는 것. 떳떳하게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 같아요.”
아이들은 이 독특한 경험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했다.
“유기농 매장에서 일하고 월급도 받고 수업 수당도 받아요. 사회에서 나오는 말들이 어려웠는데 마을활동 하면서 경제나 감사 이런 말도 알고 공부에 도움이 됐어요.”
신유림 양의 말이다. 이원빈 군은 은행의 대출 이자와 예금이자의 차이를 노린 사기행각(?)을 벌이다 재판까지 벌인 일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강 교사는 학생들이 잘한 일을 부모들에게 문자메시지로 알려주며 칭찬해줄 것을 당부한다. 한 해에 그가 보내는 문자메시지는 평균 1천 5백통. 생활통지표에는 독서록과 일기 등 활동에 참여한 횟수를 기록하고 모든 과목의 성취도 수준을 적어 보낸다. 또 아이들의 글을 모아 주마다 문집을 만들어 보낸다. 모두 아이들이랑 부모들이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김나행 양은 “선생님이 잘못한 일보다 잘한 일을 더 많이 적어 보내서 부모님한테 칭찬을 받아 좋았다”고 말했다.
학교에 오는 일을 즐거워 한다는 6학년 3반 어린이들.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 강 교사는 오늘도 연구를 멈추지 않는다.
“너무 공부에만 치우치면 아이들이 불행해요.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에 공격성이 생기고 피곤해 해요. 아이들이 버릇없고 힘들게 하는 게 아니라,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여기고 인격체로 대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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