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의 여왕, 바로 저예요
참 수줍던 아이였다. 집밖에서 누가 인사를 하면 엄마 뒤에 숨고는 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다 가도록 발표 한 번 못했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하던 아이가 낯선 사람을 수없이 만나야 하는 봉사활동으로 큰 상을 받기까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경기도 청소년 자원봉사대회에서 경기도의회 의장상을 받은 백석고등학교(교장 이재영) 2학년 표주영 학생을 만났다.
엄마따라 시작한 봉사활동...독거노인 찾아가 슬픔 느껴
“작년 여름부터 봉사활동을 했는데 그때까지는 공부도 안하고 철이 없었어요.”
여전히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진 채로 인터뷰에 응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간호사로 일하며 봉사활동에 열심인 어머니를 따라 처음 가본 독거노인의 집에서 표양은 ‘슬픔’을 느꼈다고 말했다.
“치매에 걸린 80대 할머니가 혼자 사시는데 반 지하 집이라 눅눅하고 어두웠어요.”
TV로만 보던 모습을 눈앞에서 맞닥뜨린 표양은 “그런 집은 처음이라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정정하시고 마음도 고우세요. 만족하면서 행복하게 살고요. 저는 멋이나 부리고 옷 사러 다니고 그랬는데 그런 게 아까운 거예요. 정부에서 받은 보조금을 저한테 주시면서 초코파이 사먹으라고 하시는데 되게 슬펐어요.”
정기적으로 할머니를 만나러 간 것을 시작으로 치과 의료봉사, 청량리 노숙인 쉼터, 생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후원 시설인 나눔의 집, 해외봉사까지 다녀왔다. 가족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다. 고양시자원봉사센터 청소년브이위원회로, 학교에 다니는 평일을 빼고 놀토와 일요일은 대부분 봉사활동으로 시간을 보낸다.
그 가운데 필리핀으로 다녀온 해외봉사활동이 눈에 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상태로 비행기를 타고 감행했기 때문이다. 올 1월에도 해외 봉사활동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고소공포증 때문에 포기했다. 이번에도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울면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서웠어요. 가고는 싶은데 겁이 나서요. 비행기에 탈 때는 선생님들이 양쪽에서 잡아주셨어요. 선생님들은 주무시는데 저 혼자 잠도 못자고 떨면서 갔어요.”
수면제와 진정제를 챙겨갔지만 말똥말똥 잠은 안 왔다. 남들은 다 잠들어 있는 비행기 안에서 고소공포증을 이겨내며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러나 표양은 필리핀 봉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쥐, 벌레, 도마뱀도 나오고 지저분했어요. 그래도 이틀 지나니까 적응돼서 벌레도 막 잡구요. 여자애들 20명이 갔는데 엄청 친해져서 돌아왔어요.”
고양시자원봉사센터의 청소년위원회에서 기획했던 봉사활동이었는데 함께 했던 학생들이 돈독해진 것을 보고 지도 교사들이 동아리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생긴 것이 ‘알비단 봉사단’이다.
“필리핀 빈가완 지역의 알비단이라는 초등학교에서 봉사를 같이 했거든요. 아침에는 학교 울타리 만들고 페인트칠하고 오후에는 아이들 데리고 리코더, 태권도, 컴퓨터, 꼭두각시 춤을 가르쳤어요. 말도 안 듣고 싸우는 애들이랑 8박 9일 함께 지내다 헤어질 때는 엄청 울었어요. 아쉬워서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봉사활동 하고 알았어요
표양의 어머니 김춘옥 씨는 “주영이는 자기욕심 안 차리고 나서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게 일하고 나보다는 남을 우선하는 마음 때문에 친구들한테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앞에 나서는 것을 잘 하지 못해 걱정이라면서도 남을 돕고 사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딸이 그 뜻 그대로 살아가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봉사하는 삶을 살아라. 돈이 전부가 아니라 남들에게 나누어주고 베푸는 것도 인생의 중요한 덕목이다’라고 딸에게 가르쳐왔다. 표양을 지켜보던 아버지는 간호사가 되어 기술을 갖고 봉사를 하면서 살아도 좋겠다고 권유 했다.
“잘 산다고 좋은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간호대학을 권했어요. 남을 배려하고 봉사도 좋아하니까요.”
남을 도우면서 행복을 느끼고, 봉사활동에 다녀오면 상대방을 애틋하게 여기는 심성을 지닌 아이. 딸의 그런 모습을 보며 부모는 간호사가 될 것을 권유했다. 표양도 간호학과를 목표로 공부를 하고 있다. 중학교 때는 부모님도 크게 강요하거나 시키지 않았고 표양도 공부에 대한 뜻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들어와 봉사활동을 한 이후로 성적이 눈에 띄게 올랐다. 1학년 때는 노력상을 받을 정도였다. 표양은 그 이유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봉사하기 전에는 요리사 돼서 저 혼자 잘 살고 싶었어요. 봉사하니까 힘든 사람들을 많이 보잖아요. 그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고 싶으니까 그만큼 성공을 하고 싶어 졌어요. 내가 먼저 안정이 돼야 사람들을 도울 수 있으니까요.”
표양은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많다. “어쩌다 시작한 봉사활동에서 많은 것을 얻었다”고 말하는 그는 사랑의 집짓기 운동인 해비타트 봉사활동과 겨울의 연탄 나르기 봉사활동을 꼭 해보고 싶은 일로 꼽았다.
“친구들이 봉사활동을 참 안 해요. 봉사활동 60시간 채우려고 억지로라도 하면 얻는 것도 있고 깨닫는 것도 생기거든요.”
발표를 못하는 수줍음 뒤에는 남의 아픔을 드러나지 않게 돌보는 배려의 마음이, 늘 손해 보는 것 같은 여린 마음씨 뒤에는 약자를 품어 안는 사랑의 마음이 자라고 있었다. 봉사활동 속에서 자기 빛깔을 찾아가는 표주영 학생의 앞날이 기대된다.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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