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발’이나 ‘파리 음악 축제’에 몰려온 유럽 사람들은 몇 시간 동안이나 우리의 판소리 공연에 몰입해 울고 웃는다. 열광적인 호응 속에 유럽에는 판소리 팬도 많이 생겼다. 어찌 보면 우리보다 외국인들이 우리 문화예술의 매력에 푹 빠지는 듯하다. 이런 현상은 비단 판소리뿐만이 아니다. 우리 것이라고 하기엔 우리가 너무 외면하고 있는 전통문화예술. 가장 한국적이라는 ‘단청’의 매력을 일반인에게 알리고 싶다는 단청 기술자 임경식씨를 만나 그 깊은 이야기를 들어봤다.
예술과 문화, 역사를 배울 수 있는 ‘단청’
춘천향교에서 만난 임경식(41)씨는 초등학생들에게 단청 설명이 한창이었다. “궁이나 사찰과는 다른 향교의 단청은 화려하지 않고 엄숙한 극기 단청이나 모로(루) 단청이 사용됐다”며 이야기를 시작한 그의 설명은 향교의 역할과 유교 건축물의 특징으로 이어졌고, 더 나아가 조선의 역사 이야기까지 이어진다. 아이들은 책에서만 보던 내용을 눈으로 직접 보며 설명을 들으니 따로 외울 필요 없이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제가 단청 공부할 때도 그랬어요. 책으로 백번 보는 것보다 현장에 와서 직접 보고 느끼는 것이 진짜 살아있는 공부가 되죠”
인간문화재 만봉 스님, 벽산 홍찬원 선생에게 배워
지난 93년, 만봉스님(중요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장)을 만나 탱화부터 배웠다는 그는 만봉스님의 뒤를 이어 중요무형문화재로 인정받은 벽산 홍창원 선생과 8년 가까운 시간을 함께 작업했다. 경복궁 복원을 비롯해 광화문, 수원 화성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건축물 단청 작업에 참여한 그는 사실 행정학과 출신의 평범한 공무원 지망생이었다. “어릴 적부터 미술에 관심은 많았어요. 어릴 적 자주 소풍갔던 수타사의 그림도 참 좋아했어요. 하지만 취미로 시작한 일이 내 인생을 바꿀 줄 몰랐죠.” 공무원이 되길 바라셨던 부모의 반대도 완강했었다. 하지만 굶어죽는 한이 있어도 원망하지 않겠으니 허락해달라는 그의 의지를 부모님도 꺾을 수 없었다.
그렇게 시작한 단청은 그에게 더 할 수 없이 소중한 일이 되었다. 자신의 이름을 건 첫 작품 ‘울진 대종각’을 탄생시키기까지 힘들고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단청에 대한 그의 애정은 갈수록 깊어져만 갔다. “단청하는 동안은 작업 속에 푹 빠져 시간가는 줄 몰라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매순간 느끼죠.”
일반인과 외국관광객들에게 ‘단청’을 알리고 싶어...
그는 사찰 단청을 하면서 비구니 스님이 중매로 만났다는 지금의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털어놓았다. “작업을 하는 동안 집을 계속 비워요. 아내가 이 일을 이해해주지 않았다면 아마 제 꿈을 이룰 수 없었겠죠.” 하지만 그에게는 또 하나의 꿈이 하나 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단청을 알리고 대중화 시키고 싶다는 것. “외국 친구에게 단청 그림을 선물했는데 반응이 대단했어요. 거실에 크게 걸어놓고 친구들에게 자랑한답니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가장 한국적인 예술이라는 거죠. 하지만 우리는 너무 모르는 것 같아요. 관심 있는 사람들도 배울 곳이 없어요. 특히 춘천은 문화도시잖아요. 외국인들에게도 일반인들에게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화려한 단청이 탄생하기까지 많은 어려운 과정이 숨어 있다는 그는 단청 속에 담겨진 하나하나의 의미를 알게 된다면 그 가치는 더 커질 것이라며 인터뷰를 마쳤다.
문의 010-8738-0465
현정희 리포터 imhj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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