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자 교과서 여행

잃어버린 왕국 백제를 찾다

백제의 수도였던 공주와 부여 당일치기로 알차게 둘러보기

지역내일 2010-12-03 (수정 2010-12-03 오전 10:06:32)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6시, 백제의 수도였던 공주와 부여에 가기 위해 비몽사몽 정신없는 딸아이를 깨워 서둘러 채비를 했다. 부산에서는 먼 거리기에 당일로 다녀오기 위해서는 일찍 출발해야 무리 없이 일정을 소화할 수 있다. 이번에는 교과서여행 전문가와 함께 가는 여행이라 꽤나 알차게 다녀올 수 있겠다는 기대를 품고 전세 버스에 몸을 실었다.


정림사지 5층석탑


전문가와 함께 하는 교과서 여행

우리를 유서 깊은 도시로 안내해줄 인솔자는 교과서여행으로 이름난 라산 오진동 선생이다. 휴게소에 들러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한 뒤 버스 안에서는 수업이 진행됐다. 처음 오샘을 만나 어색한 아이들은 큰 목소리로 발표를 잘하는 학생에게 장학금을 준다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바로 적극적인 태도로 변신. 대답하는 목소리는 한층 또렷해졌고 질문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역시 동기 부여는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절대적인 힘이다 싶었다.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를 구별 짓는 기준이 무엇인가가 질문의 시작이었다. ‘기록’이 남아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나눠진다는 것을 처음 안 아이들도 많았다. 나 역시 역사를 배울 때 그런 기준에 대해 배웠었나 돌이켜보면 기억에 없다. 학창 시절, 단지 외울 것 많았던 역사 시간에 가끔은 오랜 역사의 기록이 남아있어 우리를 괴롭힌다고 투덜거렸던 부끄러운 기억만 남아 있다. 역사가 짧으면 그만큼 외울 것도 적을텐데라는 무지한 생각과 함께 말이다.
이해하기 쉽게 만든 자료를 바탕으로 흥미로운 이야기가 첨가되면서 계속되는 설명에도 지루하지 않게 시간은 흘러 드디어 부여에 도착했다.


서동 설화를 간직한 궁남지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정림사지 5층석탑

백제는 찬란했던 역사에 비해 남아있는 문화재가 거의 없어서 더욱 소중하게 다뤄지고 있다. 더불어 유물 종류가 몇 가지 안 되기 때문에 시험에는 꼭 나온다는 사실.
부여에 들러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정림사지박물관. 외우기만 했던 정림사지 5층석탑을 난생 처음 눈으로 확인했다. 대충 훑어보면 생각보다 볼품없다고 느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탑들은 착시 현상을 일으키는 신비한 재주가 있다며 탑을 보는 방법이 따로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오샘이 일러준 대로 우리 모두는 정면에서 약간 벗어나 정해준 위치에서 3걸음씩 다가가며 탑을 보는데 탑에 점점 다가설수록 입에서는 ‘우와~’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평범하면서도 그다지 크지 않게 보였던 탑이 웅장하고 멋있게 다가왔고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신비로운 모습에 넋을 잃고 한참을 쳐다봤다.
역사를 배우면서 고구려의 유물은 남성적이고 씩씩하다, 백제 유물은 여성적이고 부드러우며 세련됐다는 특징을 이유도 모르면서 외웠었다. 한 번만이라도 제대로 봤으면 외울 필요없이 느낌으로 알았을텐데 생각할수록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우리와는 달리 직접 눈으로 보고 몸소 느껴보는 요즘 아이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들이 행운아라는 사실을 과연 알고 있을까?


국보 제287호 백제금동대향로


서동 설화를 담고 있는 백제 왕족의 유원지 궁남지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 연못인 궁남지는 ‘궁궐의 남쪽에 위치한 연못’이라 궁남지(宮南池)라고 불린다. 궁남지 입구의 연못은 연꽃이 말라 있어서 좀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연이 피었던 흔적만이 남아 있었지만 여름이면 얼마나 화려한 꽃을 피웠을까 상상하니 만개할 때 다시 한 번 들러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궁남지는 서동과 선화 공주의 설화를 간직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바와 달리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는 그야말로 이야기일 뿐이라는 설이 유력하다는 다소 실망스러운 사실을 알게 됐다. 낭만이 깨지는 순간이었지만 호젓한 연못 한가운데에 멋들어지게 자리잡고 있는 정자와 연못 주변을 둘러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버드나무는 운치를 더하고 있었다.


삼천 궁녀의 슬픈 역사 낙화암

백제의 마지막 임금인 의자왕은 집권 초기에는 훌륭한 정치를 폈다고 전해진다. 처음부터 엉망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방탕한 생활로 나라를 망하게 했고 결국 삼천 궁녀가 치마폭에 얼굴을 묻고 차디찬 강으로 뛰어들게 만든 장본인으로 역사에 남아 있다.
황포돛배를 타고 부소산성을 도는 중간 바로 눈앞에 낙화암이 보였다. 쳐다만 봐도 아찔한 50m 높이의 바위절벽. 삼천 명이 과장된 숫자라고 하지만 수치스러운 삶보다는 스러져가는 나라와 함께 꽃같이 몸을 날리는 길을 택한 수많은 궁녀들의 비운에 타사암이라는 본래 이름 대신 낙화(落花)암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한다. 슬픈 역사를 간직한 채 백마강은 고고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궁녀들이 꽃처럼 떨어졌다는 낙화암


국립부여박물관 슈퍼스타 백제금동대향로

1993년 능산리 절터에서 출토된 백제금동대향로는 정식 발굴 작업이 아니라 능산리 고분 주차장을 만들다가 우연히 발견됐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다.
김채은 (광남초 4학년) 학생은 “대향로 진품을 보게 돼서 무척 반가웠어요. 서울에서 대백제전을 하면서 빌려 갔었기 때문에 모조품을 볼 수도 있다고 들었거든요. 향로에 동물들이 하나하나씩 섬세하게 새겨진 것도 대단해보였어요”라며 향로가 잘 보존돼 있어서 다행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무령왕릉이 있는 송산리 고분군


백제 문화의 빛을 밝혀준 무령왕릉

마지막으로 간 곳은 공주에 위치한 무령왕릉이었다. 우리가 들어가서 본 곳은 실제 능을 재현해 복원해놓은 송산리 고분군 모형관이다. 무령왕릉은 송산리 6호분 배수로 공사 중 발견됐다고 한다. 찾기 힘든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도굴을 당하지 않았다고. 다행히 무령왕릉임을 밝히는 묘지석이 있었고 각종 장신구를 포함해 4600여점의 수많은 유물이 출토됐다.
아이와 함께 여행에 참가한 이나원(남천동·39) 씨는 “경주는 온 도시가 신라의 유적지인데 비해 부여와 공주에는 남아 있는 유물이 거의 없어 문화재 보존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어요. 또 기록의 중요성도 실감했고요”라며 사라져버린 유물에 대한 안타까움을 전했다.
무령왕릉을 마지막으로 짧지만 알찼던 당일치기 여행은 끝이 났다. 역사와 마주하면서 이렇게 가슴 뛴 적이 있었나를 돌이켜보면 단연코 아니었다. 역사는 외울 것 많아 고달픈 지나간 과거일 뿐이었다.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고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 듣는 유구한 역사는 가슴을 뜨겁게 하기에 충분했다.
백제가 역사적으로는 잃어버린 왕국일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사그라졌던 역사에 대한 관심을 다시 찾게 만든 여행이자 어렵기만 했던 역사가 친근하게 다가온 소중한 여행이었다.




이수정 리포터 cccc09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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