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조기교육 과연 필요한가?

지역내일 2010-11-30

그리고 어떻게 가르쳐야 효과가 있을까?


 문단열

 연세대학교 신학과 졸
 현 성신여자대학교 교수
 EBS English Cafe 진행, SBS 생방송 투데이
 헬로우 퀴즈짱 등 방송
 문의 031-902-0509 

 조기교육이란 대개 3-7세, 넓게는 초등 1-2학년생까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대체로 모국어는 6세 정도에 머리 속에서 큰 판이 한번 형성되고, 점진적인 발전을 거쳐 12-13세에 완전히 세팅이 된다는 게 학자들의 의견이다. 이 때문에 조기유학을 언제 보내느냐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보통 사춘기 이후에 유학을 보내면 그 나라 언어가 완벽해질 확률이 적다. 반면 12-13세 이전의 초등 고학년이라면 제2의 모국어로 정착되기가 쉽다. 하지만 일찍 보낸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유치원 시기에 가면 영어 자체는 완벽해질 수 있지만 한국어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조기 교육에 의한 글로벌 어학 인재의 예
 내가 90년대 초반 중국어 어학연수를 떠나 북경 외국어대 어학당에 있을 당시다. 한 유태인 커뮤니티 모임에 초대를 받았는데 나는 그곳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독일어로 영화를 감상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불어 더빙 영화로 전환되고, 곧 이어 영어로 상영되기 시작했다. 그 리고 대화는 중국어로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나는 이들의 다국어 구사 능력에 기가 죽었다. 그 중 Carl이란 친구는 본토박이 독일인이었는데 영, 불, 독, 그리고 히브리어와 불가리아어의 국경을 새처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Carl 뿐만 아니라 그 날 거기 모인 ‘어학 영재’들은 뛰어나게 다국어를 구사 하면서도 아무도 놀라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며 그저 어릴 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하면 그럴 수도 있다는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조기교육이 아이를 망친다고 누가 얘기 했는가. 제대로만 가르칠 수 있다면 아이들은 이처럼 진짜 ‘글로벌 시대의 국제적인 어학 인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조기교육의 논란거리 중 흔히 모국어가 제대로 형성되기 전에 영어를 주입해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문제제기가 있다. 이에 대해 나는 전용건물이 다르다는 말을 하고 싶다. 한국말과 영어가 같은 장소, 중복된 건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영어유치원에서 한국말과 영어 둘 다 잘 하는 아이들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가 있다. 아이들은 신기하게도 한국말을 하도록 되어있는 선생님(한국인이건 아니건)에게는 한국말을 쓰고 아예 한국말을 못 하는 선생님에게는 한국말을 하지 않는다. 이들의 머리구조가 보통사람과 좀 다를까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아이들의 머리 속에는 영어건물과 국어건물이 따로 서 있다는 의미다. 즉, 영어건물과 한국어 건물이 따로 있어서 필요할 때마다 언어의 스위치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가 있다. 

가르치려들지 마라, 구체언어는 절로 습득된다  
 영어건물을 좀 구체적으로 보면 건물의 1층은 sensory words와 concrete words의 공간이다. 여기서 concrete words는 감각적인 것은 아니지만 책상, 의자, 엄마, 해, 달처럼 뻔한 것들이다. 즉, 굳이 개념을 이끌어내고 설명할 필요가 없이 아이들은 ‘house’나 ‘cat’에 대해 아무런 고통 없이 영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가 있다.
 한편 sensory words는 기본 언어이지만 체험으로 확실히 익힐 수 있다. 예를 들어 wavy와 curly를 생각해보자. 엄마가 꼬맹이를 데리고 미용실에 가서 퍼머를 하면서 꼬불꼬불한 머릿결을 보여주며 ''''curly''''라고 했다면 아이는 단숨에 이해할 것이다. 특히 아이들의 경우에는 감각적으로 느끼는 단어나 구체적인 표현을 가르치면 스트레스를 하나도 받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순식간에 다 외워버린다. 방울토마토를 손 안에서 으깨며 ‘squash''''를 30초 만에 외우는 이치다.
결국 영어를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을 위해서는 자기 세계 안에 속한 언어를 가르치라는 것이다. 아이들의 세계 밖에 있는 언어를 자꾸만 들이미는 것은 부모가 나서서 스트레스를 받도록 장거리 유도미사일을 날리는 꼴이다. 그런데도 우리 아이가 단어를 몇 천개나 알고 문장을 줄줄 외운다며 자랑을 하는 부모들이 있다. 정말 그렇다면 이 아이는 장영주와 같은 천재거나 부모의 허영에 눌린 희생자이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언어를 즐겁게 배워서 1, 2층의 기저를 착실히 쌓아올린 아이들이 3층, 4층 고층의 탑을 튼튼히 쌓을 수 있다. 반대로 억압적으로 1, 2층을 쌓아올린 집은 갈수록 비뚤어져 기둥이 부러지고 기왓장이 깨지는 식이다.
부모가 아이를 비인간적으로 밀어붙인 집은 다 실패였다는 것이 그간의 경험사례다. 어쩌면 세상적으로 성공할지는 몰라도 부모가 원하는 ‘효도’라는 걸 하는 아이가 되지는 않았다. 뿐만 아니라 영어선생으로 봐서는 영어마저도 실패였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영어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고 심지어 미워하게까지 되는 경우를 수 없이 봐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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