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사랑하세요? 그렇다면 건강부터 챙기세요”
하늘색이 청명함을 더해가는 10월의 어느 날, 분당 보바스병원의 1층 야외 로비에는 휠체어를 밀고 산책길을 동반하는 두 노인이 있다. 그 중 환자의 무릎담요를 덮어주며 살뜰히 눈빛을 맞추는 사람. 지긋해 보이는 나이와는 다르게 차분한 열성이 묻어나오는 사람. 오늘 만나볼 김영돈(70ㆍ신봉동)씨다.
30년 몸담은 교직을 퇴직한 그 무렵. 난데없는 위암선고를 받고 세상을 다시 살게 됐다는 김씨. 우연히 찾아온 고비를 통해 이웃에게도 시선을 넓힐 수 있었다는 그이는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 그렇게 아픈 이웃에게 찾아가 따뜻한 말벗이 되어 주고 있다.
위암 선고 받고 인생을 달리 보게 돼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 전. 2000년에 퇴직하고 바로 그 해 4월에 위암선고를 받았어요. 33년간 교직 생활 후라 집 사람과 즐겁게 살아야지 싶었는데 웬걸 투병생활로 아내에게 고생만 안겨 준 셈이죠.”
하지만 인생이 반드시 손해만 있는 건 아니 듯, 그렇게 찾아온 병마가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교과서가 되어 주었다.
“다행히 수술이 잘 되고 지금은 10년이 넘었는데 잘 살고 있잖아요. 위의 80%를 절제하고 담낭 절제에, 당뇨약도 먹고 있지만 아직까진 봉사도 다닐 만큼 괜찮아요.”
그렇게 건강이 회복되자 호스피스 교육을 받고 봉사를 시작, 지금껏 횟수로 6년을 이어오고 있다. 처음엔 보바스 어린이병동에서 시작해 3년 동안 어르신 목욕봉사를 해왔다. 각 병실을 다니며 말벗이 되고 산책을 도와주며 분당 서울대병원에서는 수술실 앞에서 안내봉사도 맡고 있다.
동병상련, 먼저 털어놓으니 마음을 열더라
“몸이 아프다보면 마음도 굳어지죠. 처음엔 꿈쩍 않던 분들이 암 극복한 얘기를 해 주면 그때부터 눈을 맞추기 시작하는 거예요. 어쩌면 제가 참 좋은 조건(?)을 갖고 있는 거지요.”
말벗을 하면서 김 씨는 오히려 많은 걸 느끼고 배운다. 희노애락의 마지막 지점에 있는 환자들의 모습은 세상의 온갖 부귀영화도 헛됨을 알게 한다고.
“유명한 정치인부터, 연예인, 대기업 오너에 대학 교수 등 소위 잘 나가는 지위와 명성을 가진 분들도 많죠. 그런데 병이 들고 나면 옆에 있어 줄 가족이나 말벗이 그리운 똑같은 한 사람이 되는 거예요.”
특히 몸의 병이 오래되면 다양한 양상의 우울증도 동반 된단다.
“재산이 아주 많은 분이었는데 아내가 주는 음료수는 절대로 안 마신다는 거예요. 독이 들어 있을 거라면서. 재산을 차지하려고 빨리 죽기 만을 바란다고요.”
한 달 병실료가 만만치 않은 고급 노인전문병원인 보바스병원. 거의가 자신들이 벌어놓은 재산으로 병실 비용을 충당하는 경우가 많고 그렇다보니 끝까지 믿고 있는 것도 돈이라도. 돈을 잃으면 자식이나 가족에게 버려진다는 생각이 많아 강박증도 많고 끝까지 부여잡고 있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단다.
특히 뇌졸중, 뇌경색은 시한부와는 다르게 길고 지루한 싸움. 긴 병마에 가족들도 지쳐가는 대표적 질환이다. 병이 오래되면 자식들 눈빛이 달라지고 세도를 부리던 재산도 긴 세월 병원비로 바닥나는 경우가 많다고.
“환자뿐 아니라 가족들의 관계, 분위기들도 다 보이죠. 어떤 경우엔 재산이 병원비로 다 쓰이기 전에 아버지가 빨리 돌아가시기를 바라는 자식들도 보게 돼요.”
그런 다양한 케이스를 보면서 “잘산다는 게 뭔지, 잘 죽는다는 게 뭔지 생각하게 되더라”는 김영돈씨. 그래서 제일 안타까운 사람이 ‘왕년’의 나를 못 떨치는 사람이다.
나를 잘 돌보는 게 가족을 사랑하는 길
“대학교수, 의사, 정치인들이 많은데 왕년에 내가~하는 사람들은 간호사, 간병인 뿐 아니라 주변 인들과 어울리고 소통하기기 힘들어요. 어깨에 힘 빼고 나누고 소통하려는 분들이 편안하게 지내시죠.”
6년간의 봉사 활동을 증명하듯 김씨의 수첩에는 환자들의 이름부터 특징, 병명, 케어 주의점 등이 빼곡히 적혀 있다. 또 환자들에게 들려주면 좋을 격언과 시, 좋은 말들도 깨알같이 적어 놓았다. “백 마디 말보다 한편의 시(詩)가 때로 이분들에게 위로와 감동이 될 수 있더라고요.” 요즘 그이가 자주 인용하는 시는 용혜원 시인의 ‘내가 준 행복 때문에’이다.
김 씨는 수많은 환자들을 만나며 깨달을 것이 있단다. 가족들을 사랑하느냐는 질문이다.
“아무리 재산이 많고 명성이 높아도 몸이 아프면 무용지물이고 긴병에는 효자는 커녕 가정이 풍비박산나기 쉽죠. 가족을 사랑한다면 자기 관리가 가장 중요합니다. 내가 건강해야 가족과 좋은 거지, 병들어 짐이 되면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거예요.”
운동과 식이요법, 꾸준한 자기 관리로 김 씨 역시 건강을 필사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그것이 그가 봉사를 통해 깨달은 남은 인생을 잘살기 위한 삶의 교훈이자 배움이다.
권미영 리포터 myk31@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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