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영화에서 길을 찾다 - <중경삼림>(1995)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지역내일 2010-10-22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다. 길가 가로수 잎들만큼 가슴이 물든다. 그렇다. 외롭다.
지인은 그 나이에 가을을 타느냐며 남편이 없니 새끼가 없니 친구가 없니 눈을 흘긴다. 그래도 어쩔 것인가. 외로운 것을.
그들은 외로웠을까. 혼자여서 외로웠을까. <중경삼림>의 네 친구. 중경의 숲이 우거진 곳에서 그들은 늘 혼자였다. 아주 잠깐씩 외에는 도무지 같이 있는 꼴을 못 봤다. 그래서 원색창연하고 왁자지껄한 홍콩은 혼자가 모여 북적대는 도시다.
그럼에도 그들은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 혼자가 오히려 매력적이다. 그것은 왕자웨이(왕가위가 더 익숙하죠?) 감독과 크리스토퍼 도일 촬영감독, 그리고 지금 봐도 지독히 매력적인 네 친구 덕분이다. 그래서 다 본 후 “재들 뭐래는 거야?” 싶으면서도 15년 넘어서까지 불러낸다. 이쯤하면 마력이다.
왕자웨이 감독은 90년대 한국의 청년들을 집단몽환에 빠지게 한 장본인이다. 그 이름 아래 영화를 꿈꾸었고 사각 프레임의 환상을 기꺼이 믿었다. 외로워도 슬퍼도, 고독마저도 감미로울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고독은 더 이상 감미롭지 않다. 중경의 숲이 우거진 곳에서 그들은 혼자였어도 스쳐갔고 교차했고 다시 만났다.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지금은 희망이 없다. 오로지 외로운 혼자다. 교차도, 스침도, 다시 만남도 기약할 수 없다.
이제는 호소하는 시대가 아닌가 보다. 믿는 것은 나 하나 뿐. 누군가 무엇을 해줄 것이라고, 함께 할 것이라고 여길 수가 없다. 고작 몇 푼에 구천에 가야 할 부모를 그대로 방치하고 자신의 아이를 장염으로 죽게 해 보험금을 타낸다. 분명 구체적인 증거임에도 도무지 믿을 수 없다 하고 나의 아름다운 국토는 온통 헤집어진다. 그것이 외롭다. 외로워 미치겠다.
그럴 때 지친 구두를 벗기고 그저 쉬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한 마디 약속이 없어도 그저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이 있다면 외롭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서 그들은 외롭지 않았을까. 혼자여도 외롭지 않았을까.
시인은 말했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라고.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니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말라고. 그럼에도 기다린다. 눈이 오면 기대어 눈길을 같이 걸어가고 비가 오면 맞잡고 빗길을 함께 걸어갈 든든한 어깨를, 따뜻한 손을.
이제야 깨달았다. 리포터도 그들처럼 사람이다. 외로우니까, 그 외로움 나누며 위로 받고 싶으니까.
김나영 리포터 naym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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