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우 원장이 추천하는 책이야기-“울기엔 좀 애매한”

최규석 글.그림 사계절 펴냄

지역내일 2010-11-17 (수정 2010-11-17 오후 11:31:46)
 
 나이 탓일까? 요즘 들어 불쑥 눈물이 솟으며 가슴이 먹먹해지는 때가 부쩍 늘었다. 아이가 몸이 아파 고교 자퇴서를 낼 때도 그랬고, 희귀병과 싸우는 병상의 열 살짜리 꼬마의 “아, 나는 어떻게 안 아픈 날이 하루도 없을까”라는 말을 듣고도 그랬다. ‘만화 안내는 출판사에서 만화를 펴내는 애매한 만화가’ 최규석이 쓰고 그린 “울기엔 좀 애매한”을 읽고 나서도 그랬다. 단지 ‘그랬다’라고 하기엔 애매하다. 미안하고 슬프고 부끄럽고 답답했다.
 애매한 만화다. 입시미술(만화)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의 한 학기 속에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담아냈다. 만화인데 드라마나 연극보다 극적이고, 잘 쓴 문학작품만큼이나 다양한 인간군의 이야기가 짙은 여운을 남긴다. 학원 원장과 강사 그리고 각기 다른 처지의 학생들, 그리고 그들 부모들의 이야기가 씨줄 날줄로 잘 짜여 져 읽는 이의 감정선을 흔들어 댄다.
 작가가 살아온 과정을 보건대 이 만화는 자전적이다. 고교 재학 때 만화학원을 다니고, 뒤에 강사 생활을 하면서 겪은 일들을 바탕으로 썼을 게다. 전체적으로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를 이 애매하고 정 많은 작가는 아이들의 언어를 빌려 가볍고 유쾌하게 끌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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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말인가? 좋거나 나쁘거나, 검거나 희거나, 가난하거나 풍족하거나, 대학에 가거나 못가거나 둘 중의 하나만 존재하는 이진법의 세상이다. 디지탈 세상 속, 감성이 사라진 아이들의 마음은 황폐해 진다.  울기엔 좀 애매한 세상, 그래서 아이들은 답답한 거다. 학교에 있었다면 그 답답한 슬픔과 분노를 연극으로 만들어서라도 풀어줄 수 있었을 텐데.
 30년 전 고등학교 미술부 화실의 풍경이 떠오른다. 그 때 그 나이 또래도 모두 답답했으나 애매한 채로 살지는 않았다. 유쾌한 찌질이들이었다. 술에 취해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펑펑 울고, 자신이 그린 그림을 찢어 발기며 분노하고, 세상을 비웃고 통쾌하게 웃을 줄 알았다. 지금은 광고쟁이, 화장품 장사꾼, 사이비 목사, 합창단 지휘자, 유명 조각가로 변한 친구들도 그때는 유쾌한 찌질이들이었다. 그 찌질이들이 이제는 만화 속 만화지망생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는 것 같아 미안하고 슬프고 부끄러운 것이다.
 외고입시를 준비하는 중3 학생들과 학업계획서와 면접에 대한 상담을 하면서 만화 속 아이들과 눈앞의 아이들의 간극 때문에 답답해졌다. 장래 목표가 변호사, 의사, 외교관, 교수를 벗어나지 못하고, 읽은 책은 워런 버핏이나 힐러리, 반기문, 아이비리그 합격수기가 모두다. 아이들은 모퉁이가 있는 길을 걸어 본 적이 없다. 길을 잃고 헤맨 기억도 없고, 길을 가다 막힌 길을 만나면 돌아가야 한다는 것도 알지 못한다. 오로지 한 길로 쭉 뻗은 길만 걸어 왔고 앞으로도 그런 길만 있을 것이라 여기며 살아갈 것이다. 이 아이들이 만화가의 꿈조차 감내할 수 없는 가난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내가, 어른들이, 애매한 세상이 그리 만들었겠으나 막다른 길에 서서 당혹스러워 할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면접을 앞둔 중 3학생들에게 질문을 해봤다. “가출한 친구가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겠느냐”고. 모두들 아무 생각 없이 곤혹스런 표정이다. 그런 친구를 친구로 만난 적이 없으니 아이들은 대답할 수 없었을 게다. 이 만화를 읽으며 세상 다른 한 켠의 친구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만나 보았으면 좋겠다. 그들이 앞으로 세상을 함께 할 친구라는 걸 이해했으면 좋겠다. 인성과 소통능력을 두루 갖춘 글로벌 리더는 말로 되는 게 아니니까. 길모퉁이를 돌아가는 화실 학생들의 ‘울기엔 좀 애매한’ 느낌을 이해하고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따뜻함을 간직할 수 있다면 세상도 함께 따뜻해 질테니까.

조동기국어논술 영통캠퍼스 남태우 원장 031-273-2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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