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품안의 작은 오케스트라, 아코디언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호수위로 떨어진 마른 낙엽이 잔잔한 물결을 만들어 내고 있던 지난 11월의 첫째 목요일. 분당 율동공원 안에서는 장중하고도 경쾌한 선율이 가을의 향기를 전파하고 있었다. 고즈넉한 가을 분위기를 한층 돋아주는 소리의 정체는 60~70대로 구성된 분당 아코디언 동호회원들의 음악 향연.
등록 인원 40명으로 구성된 이들 회원들은 매주 목요일 율동공원에 모여 산책 나온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할 만큼 아름다운 연습에 빠져있다. 아코디언 하나만으로도 세상의 모든 음악을 품을 수 있다고 호언하는 회원들. 그렇게 아코디언이 좋아 시작한 모임이 어느덧 10년이란 유수의 시간을 동거동락하게 해주었다. 만추의 계절과 어울려서일까? 소풍 나온 유치원 꼬마부터 젊은 연인들, 산책을 즐기는 주부들까지 이들이 들려주는 연주를 감상하며 달달한 상념에 젖어들고 있었다.
클래식, 가요, 뽕짝 등 아코디언만 가지면 만사 OK
아코디언은 오른손은 멜로디를 왼손은 화음을 낼 수 있는 일종의 손풍금이다. 다른 말로는 핸드 오르간이라 불릴 만큼 원하는 모든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것이 아코디언의 매력.
젊은 사람들에겐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아코디언은 옛 향수를 간직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선망하던 악기였다.
“어릴 때부터 배우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악기를 안 사줘서 이렇게 늦게 시작 했어요. 나이 들어 배우니 손가락이 굳어 조금은 힘이 들지만 내 손으로 연주한다는 기쁨이 정말 좋습니다.” 동호회 전 회장을 맡아 모임을 이끌었던 이종대(70·분당동)씨의 설명이다.
“초등학교 때 학교 운동장에서 해 넘어갈 때까지 놀다보면 어디선가 풍금소리가 들려오잖아요. 그 아련하게 울려나오는 소리가 마음을 적셨는데 아코디언 소리가 마치 그때 울리던 고향의 소리하고 닮았어요.” 10년 전 동호회를 처음 만든 장본인 오윤상(63·이매동)씨도 아코디언의 소리를 오랜 향수처럼 간직하고 있었다고.
“나는 가족밴드를 구성하려고 배우기 시작했어요. 아들은 기타, 딸은 플롯을 해서 훗날 봉사 다니자고 시작했는데 애들이 공부하기에 바빠 지금은 나 혼자 이렇게 남았잖아요.” 은희강(70·이매동)씨의 활동 동기다.
기타나 색소폰과는 다르게 혼자서도 모든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작은 오케스트라. 그것이 아코디언이 가진 매력이라고 회원들은 입을 모은다. 단조로 연주하면 서정적인 느낌, 장조로 연주하면 진중한 무게감이 느껴져 독립운동 때는 진군가 등에 쓰일 만큼 사람들의 마음을 선동하는 악기였다고.
“그래서 주로 체코나 소련, 북한 등 사회주의 나라에서 많이 쓰이는 악기예요. 소리가 가진 힘찬 기운도 있고 장중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죠.”(은희강)
지역사회에 연주로 재능을 나누는 회원들
어깨에 메고 주름을 펴고 접을 때마다 울려나오는 아코디언의 소리는 웅장하면서도 경쾌하고 때론 흥겨움과 가벼움 등 다양한 느낌을 전해준다. 하지만 60~70대 시니어들이 양손을 움직이며 연주하기에는 어려울 수도 있을 터.
“처음에는 뭐든지 어렵지요. 그런데 자꾸만 배우다보면 하나씩 하나씩 소리가 달라지거든. 화음과 어울려 풍성하게 나오는 소리의 매력에 자꾸만 빠져들어 배우게 되는 거예요. 그래도 짧게 배워서는 아무래도 어렵지. 뭐든 인내를 가지고 길게 해야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거잖아요.”(이종대)
“떨림판(리드)이 많을수록 좀더 풍성한 소리가 나와요. 그래서 더 비싸기도 하고요. 이태리나 독일제가 제일 알아주는 악기죠.” 웬만큼 소리가 좋은 아코디언의 경우 600만원에서 천만 원 선. 경제적 여유가 있는 시니어들이 아코디언을 접하고 연주하는 비율이 높은 까닭이다.
악기 장만으로도 호사(?)스런 취미라 여겨질 수 있지만 회원들은 10년 이상 쌓은 연주 실력과 재능을 이웃과도 나누고 있다. 지역의 병원이나 복지관, 경로당, 교도소 등지를 다니며 흘러간 옛 가요부터 뽕짝, 가곡 등 다양한 연주로 음악 선물을 선사하고 있는 것.
“경로당의 노인들은 옛 가요들을 좋아하고 조금 젊은 사람들은 발라드, 가곡도 좋아해요. 아코디언으로 클래식도 연주할 수 있다는 건 아마 모를 거예요. 우리가 들려주는 다양한 레퍼토리를 어디서나 환대해 주니 그게 우리를 기쁘게 해서 자꾸만 더 다니게 되는 거예요.”(홍병호·63·금곡동)
손풍금 같은 정겨운 소리에 어디든 메고 이동할 수 있어 회원들은 날씨가 좋은 날이면 공원으로, 야외로 아코디언 소리를 전파하고 있다.
“앞으로 실력을 조금 더 보강해서 성남아트센터에서 정식으로 공연을 하고 싶어요. 그것이 지금 우리들이 이루고 싶은 가장 큰 열망입니다.”(이종대)
시니어에게 최상의 취미 활동
악기를 배우려는 후배들에게 선배로써 해줄 조언을 묻자, 하나같이 지금 당장 시작하라고 권하는 회원들.
“정신적 육체적으로 취미 활동으로 삼기에 참 좋아요. 되도록 일찍 시작하면 머리가 굳지 않아 쉽게 배우겠지만 언제 시작해도 좋은 악기예요.”(길희석·70·서현동)
“노인들이 하기에는 이만한 악기가 없지요. 양손을 다 움직여야 하니 치매에 좋고 눈으로 건반을 보고 하는 게 아니라 건반 자리를 모두 익혀서 연주하니 뇌가 한시도 쉴 새가 없어요. 풍성한 음악을 연주하고 들으며 회원들끼리 친목도 도모하니 완전 따봉입니다. 허허허.”
권미영 리포터 myk31@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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