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쑤~노래로 풀어내는 희로애락의 한마당’
“이팔청춘에~소년 몸 되어서 문명의 학문을 닦아를 봅시다. 청춘 홍안을 네 자랑 말어라~덧없는 세월에 백발이 되노나~~”
성남여성문화회관을 쩌렁쩌렁 울리며 ‘민요사랑’ 동아리 회원들이 들려주는 ‘청춘가’의 한 대목이다.
평균연령 50대 후반, 12명의 여성 회원으로 구성된 민요사랑 동아리는 지난 5년간 갈고 닦은 소리공부를 통해 지역 노인들을 위한 봉사공연으로 이어오고 있다.
젊어서는 귀에 들어오지 않던 가락이 나이가 들면서부터 자연스럽게 들어와 민요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회원들은 얼마 후 있을 지역 바자회 초청 공연을 앞두고 소리 연습에 여념이 없다.
장구 하나만 걸머쥐면 어디에서든 소리판이 벌어진다는 ‘민요사랑’ 회원들의 구성진 소리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소리에 담긴 인생을 배우다
96년부터 성남여성문화회관에서 민요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권영숙(63·태평동) 단장은 우연한 기회에 민요와 만나 사랑에 빠진 경우다.
“나도 이젠 노인이지만 민요는 노인들이 참 좋아해요. 노랫말 하나하나가 인생의 고단함을 위로하고 달래주는 말들이잖아요. 아이들 키우고 살림하면서 겪었던 우리네 인생사가 노래속에 담겨 있으니, 속에 담아둘게 없이 노래로 푸는 거지.”
백순덕(58·태평동)씨도 처음엔 노래방을 좋아하던 평범한 주부였다.
“정말 신기하게도 옛날엔 고리타분해 들어오지 않던 민요가 어느 날부터 새롭게 들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입맛도 나이가 들면 나물이나 옛날 것들이 당기는 것처럼 저도 그렇게 민요가 끌려 시작하게 됐어요.”
아이들 키워 놓고 시간적 여유가 생겨 배우기 시작했다는 서재순(57·신흥동)씨도 길을 지나치다 현수막에 걸린 ‘민요’라는 말에 등록을 하게 됐다고 말한다.
회원들은 청춘 남녀가 서로 끌리듯 소리가 가진 매력에 자연스럽게 이끌렸음을 고백한다.
그렇게 배운 소리의 가짓수만 해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고 노랫말을 적은 책이 너널너덜해질 정도로 부르고, 또 불러도 매번 감정과 느낌이 달라지는 게 민요의 맛이란다.
봉사도 할 수 있으니 좋지 아니한가
그렇게 좋아하는 취미 활동이 스스로를 만족시키는 데 그치는 건 뭔가 아쉬웠던 회원들.
어느 정도 소리의 맛을 전할 줄 아는 사람들을 엄선(?)해 동아리를 꾸리고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6년 넘게 소리를 가르쳐온 이현정 강사가 소리꾼을 발굴하는 역을 맡아 주었다.
“우리가 한 달에 한 번씩 노인정을 방문 하는데 그때마다 어르신들이 얼마나 반겨주는지 시집간 딸이 친정 온 것 마냥 환대 해주신다니까요.”
고운한복 차려입고 민요 메들리를 들려드리고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한오백년’ 등을 같이 부르면 장구소리가 흥을 돋우기도 전에 어느새 잔치 한마당이 벌어지기가 다반사. 흥에 겨운 어르신들이 어깨춤을 추며 나오면 너도나도 할 것 없는 소리판이 벌어지고 이때부터는 오히려 어르신들을 따라 즐겁게 놀다오면 된다니 짐작 만으로도 흥겨운 분위기가 전달된다. 이런 매력이 있으니 변변한 후원 하나 없이 자비로 한복을 맞추고 봉사를 다녀도 힘이 저절로 난다는 회원들.
“청춘가, 태평가, 잦은 뱃노래 등을 좋아하세요. 갈 때마다 레퍼토리는 조금씩 바뀌지만 자꾸 들어 귀에 익숙해지고 또 민요를 어릴 때부터 듣던 분들이니 때때옷 입고 나와 노래하는 우리들이 마냥 이쁘겠지요. 하하하” 민요를 부르고부터는 속병도 없어졌다는 이협례(61·성남동)씨의 애교 섞인 자랑이다.
민요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민요사랑 동아리 회원들의 평균 소리 공부는 3~4년. 지금이야 봉사공연을 나갈 정도로 구수한 소리의 묘미를 살려내지만 처음엔 입조차 떼기 힘든 것이 민요라고 한다.
“대중가요처럼 악보가 있고 음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것을 입말로 적어놓은 책이 전부예요. 그러다 보니 처음엔 귀에 익숙해 질 때까지 반복해 들어야 해요. 그래서 우리끼리는 귀 명창이 되어야 소리명창이 될 수 있다고 말하죠.”(서재순)
대중가요는 유행을 타지만 자꾸만 들어도 진력 나지 않는 게 민요의 매력. 부를 때마다, 들을 때마다 새로운 감흥을 주어 깊이를 더 해준단다.
“노랫말 한 구절 한 구절에 담긴 내용이 젊어서는 모를 인생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어 비로소 나도 나이를 먹었구나 실감하죠.”(이협례)
그래서 처음엔 입 한번 벙긋하기 어려워도 민요에 한번 맛을 들이면 쉽게 빠져나오지 못 할 만큼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고. 요즘은 지하철 역에서도 민요가 나오면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고 좋다고 회원들마다 이구동성이다.
“민요는 정답이 없는 노래예요. 부르는 사람마다 자신의 마음에 담긴 구구절절 이야기를 담아내기 때문에 계속 배우는 과정이지요. 마치 인생을 배우 듯 말이에요.”(권영숙)
소리를 하는 순간엔 근심 걱정, 스트레스는 죄다 풀리고 마음속 응어리를 한껏 풀어 헤치고 온다는 민요사랑 회원들의 구수한 노래 가락은 인터뷰가 끝난 뒤에도 한참이나 이어졌다.
권미영 리포터 myk31@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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