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지상파 방송의 ‘옥수수의 습격’ 이라는 다큐멘터리는 가축의 과도한 옥수수 섭취가 낳은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시청자들은 하나 같이 먹을거리 안전성이 위협당하고 있는 현실에 적지 않게 놀랐다고 한다. 이와 같은 먹을거리에 대한 불안이 확산되는 현 상황에서 부천지역도 생산자와 소비자가 신뢰하는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소비하자는 움직임이 활발히 이뤄진다. 대표적으로 주목 받는 것이 생활협동조합(이하 생협)이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공동 신뢰’는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부천 내일신문은 3회에 걸쳐 축산물을 납품하는 농가와 부천지역 생협 두 곳을 찾아 친환경 축산물 생산과 소비과정의 취재를 통해 ‘신뢰의 시작’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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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농장 임용현 농장주
“무항생제 키운 화산한우, 소비자에 대한 보답입니다”
행복농장을 찾는 길은 험난했다. 굽은 길을 돌아 여러 개의 산을 넘었다. 간혹 나타나는 이정표마저 없었다면 이곳이 강원도인지 전북 완주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외진 곳에 위치한 만큼 공기와 물, 환경만큼은 소를 키우기에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곳이 바로 행복농장이 있는 전북 완주군 화산면이었다.
“화산면은 산이 높고 평지가 드물어 농산물 생산은 어렵지요. 하지만 소에게는 좋은 환경입니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니 산의 시원한 기운이 많아요. 한우농가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통풍 등 자연환경입니다. 그런데 이곳은 물도 깨끗하고 공기도 맑으니 소에게 좋겠죠. 화산 한우를 만나신 분은 화산 한우는 뭔가 다르다는 말합니다.”
행복농장 농장주 임용현 씨(42)는 이 곳에서 9년째 소를 기른다. 그는 화산 한우의 첫 번째 비밀을 깨끗한 환경에서 찾았다. 그는 현재 200마리의 무항생제 한우를 키운다. 별명은 ‘무항생제 한우 전도사’이다.
논 밭 작물을 키우기 어려운 화산면은 자연스레 한우 농가들이 늘었다. 현재 화산면에는 약 3천여 명의 주민이 산다. 그 가운데 약 500농가가 1만4천 마리를 기른다. 완주군에서 키우는 한우가 약 3만 마리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규모. 완주한우협회 관계자에 따르면 면단위에서는 전국 최고 수준의 규모라고 한다.
분뇨는 퇴비가 되고, 퇴는 조사료가 된다
한우농가가 늘어나면서 아무리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화산면도 가축분뇨를 처리하는데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인근 경작지를 소유한 농가에게 퇴비를 나눠주는데도 한계가 왔다.
“분뇨가 농가들의 골칫거리였습니다. 결국 지역에서 자연순환농법을 통해 청보리 경종농가와 축산농가가 ‘윈윈(win-win)’하는 길을 모색했습니다. 축산농가에서 나온 분뇨를 한우의 조사료로 쓰이는 청보리 재배농가에 퇴비로 지원하고 생산된 청보리를 다시 한우의 먹이로 쓰자는 계획이었죠. 완주군에서도 경종농가에 청보리 재배시 kg당 60원을 지원했고 축산농가도 농지 100평당 10포대의 퇴비를 지원했습니다.”
지방자치단체와 농가가 문제를 해결하고 연대를 통한 상생의 힘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자연순환농법을 통해 청보리 농가와 연대하면서 청보리 재배시 농약살포도 줄였다. 과도한 농약 살포로 문제가 되는 외국산 조사료를 먹이지 않으면서 친환경 축산에 조금 더 가까이 간 셈이었다.
완주 한우의 33%가 무항생제 축산물
비교적 안전한 조사료가 확보되면서 임 씨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바로 무항생제 한우를 생산해 아이쿱생협연합회(이하 생협)에 납품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처음에는 농가만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것 같아 망설였다. 하지만 먹어야 하는 음식인 만큼 누구보다 깨끗하고 믿을 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 무항생제 축산물은 친환경 축산물 인증의 하나로 항생제·합성 향균제 및 호르몬 등이 첨가된 동물의 약품을 투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증과정에서 경영관리, 축사 및 사육조건, 분뇨의 처리 등의 심사를 거쳐 소비자에게 안전한 축산물을 공급한다.
“병에 걸려도 주사 한 번 마음대로 못쓰고 사료도 조심스레 먹이지 않으면 인증은커녕 주변 농가의 놀림거리가 됩니다. 그래서 더욱 이를 악물고 노력했습니다. 지하수를 그냥 먹이지 않고 이온수기를 거쳐 정제된 물을 먹였습니다.”
그렇게 2006년 무항생제 축산물 자격요건을 갖춘데 이어 2008년 농협중앙회로부터 무항생제축산물 인증을 받게 됐다. 현재는 HACCP 인증 신청을 해둔 상황이다. 무항생제 한우를 생협에 납품하면서 농가의 수익도 늘었다. 수익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면서 농가는 보다 엄격한 사양관리가 가능하다.
그의 노력과 성과가 알려지면서 지역에서 무항생제 인증을 받는 농가도 늘었다. 비록 작은 시작이었지만 인근의 농가들도 고품질의 한우를 요구하는 소비자의 요구에 발맞춰 가는 중이다. 화산한우를 명품반열에 올리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배움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농한기엔 3~4개월씩 고산농협 연계된 한우 아카데미를 열어 화산 한우가 갈 방향을 토론했다. 한우협회도 만들어 보다 체계적인 관리에 나섰다. 이러한 노력 끝에 현재 완주군에서 키우는 한우 3만 마리 가운데 1만 마리가 무항생제 한우 인증을 받았다. 이는 전체 농가의 33%에 달하는 수치이다. 이렇게 생산된 무항생제 한우는 생협 공급량의 50%를 차지한다.
관리가 깐깐하면 신뢰는 높아진다. 생협의 꾸준한 관리도 무항생제 한우 생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생협은 불시에 농가방문은 물론 NON-GMO, 무항생제, 무성장호르몬, 지역순환 축산농법을 지향, 광우병 검사 등 깐깐한 기준에 맞춰 농가를 관리한다. 이러한 조건을 맞추려면 농가 역시 쉴 틈이 없다. 계속 연구하고 작은 부분 하나하나 체크하고 관리해야 한다.
“농가 입장에서 보면 생협이 가끔 귀찮습니다. 하지만 소비자 조합원과 약속을 지킨다는 생협의 정신에 생산자 입장에서도 보람을 느낍니다. 생협도 생산자와 소비자의 중간자 역할을 해야 하는 만큼 깐깐할 수밖에 없는 것이겠죠.”
임 씨의 도전은 계속된다. 최근 자신의 농장 인근에 (가칭)두레농장을 짓는데 열중이다. 완주군의 지원을 일부 받았다. 이 농장은 인근의 어르신 인력을 활용해 한우를 마을에서 공동으로 키우고 수익을 분배하는 구조로 운영된다. 한우를 키우는데 관심이 있고 한우를 사랑하는 도시인에게 한우펀드를 유치하는 방향도 고려중이다. 한우가 단순한 먹을거리가 아니라 도시와 농촌을 잇는 매개체 역할을 할 가능성도 높다.
무항생제 돼지농장 한사랑농장 김정호 농장주
“항생제 0%, 식탁에 올리면 가족들이 웃습니다“
2007년 한 유명 가공업체의 닭고기에서 허용 기준치의 12배가 넘는 항생제가 검출됐다. 큰 사회적 문제였다. 같은 해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이 국내산 육류에 대해 항생제 잔류검사를 실시한 결과, 허용 기준치 초가 비율이 일본의 11배, 미국의 3배에 달했다. 이렇게 항생제가 남아 있는 고기를 사람이 장기간 섭취하게 되면 항생제 내성이 커져 어지간한 병균이 항생제를 견디게 된다. .
정부 역시 이러한 사정을 잘 알기에 지난 44종에 이르던 사료 첨가용 항생제 사용을 오는 2011년 7월까지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축산 농가에게는 적지 않은 타격이 될 전망이다. 축산물을 사육하는 농가에게 있어 항생제는 계륵이다. 항생제를 장기간 투여하면 잔류물이 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항생제 투여를 중단하면 면역력이 약한 가축은 폐사율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2008년부터 무항생제 돼지 생산에 전념
충남 예산군 덕산면 복당리에 위치한 한사랑농장 김정호 씨(50)는 농림수산식품부의 조치에 큰 걱정을 하지 않는다. 2년여의 전환기를 거쳐 올해 1월부터 무항생제 돼지를 생산하는 그에게 항생제 부담은 사라진지 오래다.
무항생제 돼지는 말 그대로 항생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돼지를 사육하는 것이다. 일반 돼지는 질병에 걸렸을 때 인위적으로 항생제나 호르몬을 투여해 치료하고 상당량의 항생제가 함유된 사료를 먹여 사육하는 게 현실이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사육되는 돼지에 투여되는 항생제 량은 연간 1500t 규모이다. 이는 미국의 3배, 유럽의 20배에 달하는 양이라고 한다.
“양돈농가 가운데 항생제를 장기간 투여하지 않아야 소비자에게 좋은 고기를 공급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으면 면역력이 약한 어린 돼지의 폐사율이 높아져 선뜻 무항생제 돼지를 키워볼 엄두를 못 냅니다. 그때 지역의 한 농장에서 무항생제 돼지를 키워 수익도 안정적으로 이루고 소비자들의 마음도 사로잡았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이거다 싶었죠.”
지난 25년간 돼지농장을 운영해 왔지만 무항생제 돼지농장으로 바꾸는 것이 그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인근 농장을 찾아 기술자문을 구하고 사료부터 질병 의약품까지 하나하나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하지만 항생제 사용의 중단으로 젖먹이 아기돼지들의 폐사율이 높아지는 등 초반에는 어려움도 겪어야 했다.
“돼지는 크게 모돈(어미돼지), 자돈(아기돼지), 비육돈(출하용 돼지)로 나눠 키우게 되는데 자돈에서 비육돈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폐사가 많아 처음에는 어려움을 겪었어요. 비육돈이 줄어든다는 것은 농가입장에서 수익이 줄어든다는 의미거든요.”
항생제 잔류 0% 돼지고기 생산에 성공하다
힘든 시기였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무분별한 항생제 투여가 오히려 돼지가 자체 면역력을 상실시키고 폐사율을 증가시키는 원인이라는 연구결과도 작은 위안이었다. 또한 항생제가 식단을 오염시켜 소비자의 건강을 위협하고 국산 돼지고기 기피현상을 초래해 가격이 폭락하는 최악의 사태를 만들 수도 있다고도 생각했다.
결국 선택은 무항생제 돼지였다. 그렇게 무항생제로 키운 자돈이 모돈이 되고, 모돈이 자돈을 낳아 비육돈이 되는데 몇 해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2008년 그는 마침내 무항생제축산물 생산농장 인증을 받기에 이른다.
“이제 저희 농장에서 사육되는 2천500여 마리의 돼지 가운데 항생제에 노출된 돼지는 단 한 마리도 없습니다. 지난 몇 년간 항생제를 투여하지 않아 면역력을 갖춘 돼지가 새끼를 생산하고, 새끼돼지는 엄마돼지의 초유를 먹여 항체를 이어받습니다.”
김 씨는 사료에서도 항생제를 뺐다. 사료 샘플에 대한 무작위추출 검사가 불시에 이뤄지는 만큼 사료도 100% 안심할 수 있다. 무항생제 사료를 먹고 자란 돼지가 생산한 분뇨는 액체비료로 처리돼 인근 경종농가로 보내진다. 양돈농가의 고질적인 문제인 분뇨처리 역시 자연순환농법으로 해결하는 이유는 향후 100% 친환경 양돈농장으로 되기 위한 작은 발걸음이다. 똥도 자원이 되는 세상이다.
김 씨의 무항생제 돼지는 100% 생협으로 납품된다. 그가 1년 동안 생협에 납품한 돼지는 3천900마리다. 무항생제 돼지고기를 생산하며 고기의 등급이 좋아지고 지육중량이 높으면 인센티브도 받으면서 농가 수익도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특히 무항생제 돼지고기는 특유의 냄새가 없고 육질이 쫄깃해 일반돼지와 다르다. 생협 조합원으로부터 사랑받는 이유이다.
이제는 무항생제에 이어 고품질이다
생협과 거래하면서 농장에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다. 농장 주변에 나무를 심어 불필요한 소음에 돼지를 보호하고 최근에는 품종개량 작업도 시작했다.
“일본에서도 IMF(근간내 지방 함유량)가 우수하기로 정평이 난 후지노조 종모돈을 도입해 농장 내에 품종을 바꾸는 중입니다. 현재 후지노조는 평균 마블링 스코어 5이상이 될 정도로 기존의 돼지고기와는 다른 육질과 맛을 보입니다. 종돈의 가격이 기존의 종돈보다 비싸지만 소비자에게 좋은 고기를 보내기로 약속한 만큼 최고의 육질과 맛을 지닌 돼지고기를 소비자에게 납품하고 싶어요.”
현재 농장의 후지노조 교체율은 60% 정도이다. 오는 2011년에 100% 품종 개량이 이뤄진다. 최근에는 무항생제축산물 인증획득에 이어 HACCP(식품위해요소중점관리제도) 인증도 신청해 놓은 상태이다.
“이제 항생제 돼지를 키우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소비자로부터 신뢰받고 양돈농가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무항생제 돼지입니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유기농 돼지농장이 꼭 필요합니다. 시간은 더디게 걸리겠지만 소비자와 생산자가 신뢰할 수 있는 농장을 만들기 위해 더 노력해야죠.”
소비자가 믿고 소비하는 축산물이 농가와 소비자의 식탁이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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