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나도 우울증?
마음의 감기라기엔 너무도 아픈 ‘우울증’
성인여성 30% 이상이 앓는다는 우울증의 다양한 대처법
하늘은 푸르고 단풍은 붉어가는 가을이다. 그러나 아침 저녁 쌀쌀한 날씨에 몸도 마음도 움츠러진다. 일조량이 줄고 기온차가 심해 조금은 무기력해지기 쉬운 계절. 스트레스와 피곤에 찌든 현대인들이 우울해지기 가장 쉬운 때다. 계절에 따라 정서적인 불안은 누구나 겪을 수 있다. 그러나 혼자 앓는 마음의 감기 우울증은 생각보다 무서운 질병이다. 감기는 저절로 치유되거나 면역성을 키워주기도 하지만 마음의 감기 우울증은 그렇지 않다. 가볍게 또는 깊게 우울증을 겪고 있는 주부들을 만나 그들의 고백을 들어본다.
열심히 살았는데 남은 것이 없다는 생각에
투덜대는 아이들과 무심한 남편 뒷바라지로 허둥대다 문득 돌아서면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만큼이나 우울한 일상이 기다리고 있다. 20대의 모습은 저 멀리 떠나간 그 시절의 꿈보다 더 멀리 사라지고 온전한 아줌마로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마음이 ‘뚝’ 하고 바닥을 치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한없이 무기력하다. 열심히 살아왔는데 뭐 하나 제대로 남은 것도 없다. 가족들조차 멀게 느껴진다. 식욕도 없고 불면증에 시달린다.
두 아이를 둔 주부 김정민(40·좌동)씨의 이야기다. 첫 아이를 낳고도 5년 동안 맞벌이를 하다 둘째 출산 후 일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5년 넘게 두 아이 교육에 올인 해왔다. 월급만 가져다주고 살림이나 아이 교육은 신경 쓰지 않는 남편이 한때는 편했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이유도 모르게 무기력해지기 시작하니 가장 원망스러운 사람이 남편이라고 하소연 한다.
“남편도 사회생활 하느라 힘들겠죠. 그러나 크고 작은 집안일을 혼자 다 해결해 오다보니 지쳤나 봐요. 다른 집들은 그렇게 사는 것 같지도 않고. 아이들도 뜻대로 되지 않은 채 이제 제 품을 조금씩 떠나는 것이 느껴져요.”
결혼하고 10년 맞벌이 하고 5년 전업주부로 살아온 김씨는 이제 몸도 예전 같지 않단다. 그러나 김씨를 가장 허전하게 만든 것은 10년 동안 정말 힘들게 맞벌이 했는데 실질적으로 자기에게 남은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직장을 그만 두면서 남편 앞으로 집을 사고 수중에 여윳돈이 없었던 것이 공허감의 시작이었다. 20대에 우울증 경험이 있었던 김씨는 40대에 또 다시 고개를 드는 우울증에 덜컥 겁부터 났다고 한다. 얼마 전 아무도 모르게 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받다 의사 앞에서 1시간 내내 울다 왔다고 한다.
남부럽지 않게 살아도 헛헛한 마음이 들어
해운대에 사는 김미정(42·재송동)씨 시댁은 상당한 재력가다. 형제들이 모두 부모의 사업체를 각각 물려받아 잘 살고 있다. 김씨 역시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딸과 번듯한 아파트에 외제차를 타고 다녀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인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별 이유 없이 헛헛한 마음이 들어 이러다가 우울증으로 발전하는 게 아닐까 남모르게 고민하고 있다.
“주변에서는 걱정이 되는지 취미 생활을 가져봐라, 봉사는 어떠냐, 다시 공부를 해봐라 등 조언을 많이 해줘요. 운동도 하면서 바쁘게 살아야 잡생각이 안 나는 건 알겠는데 이 나이에 새로운 거 배워서 뭐할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자꾸만 냉소적으로 되어 가네요. 남들이 들으면 배부른 소리라고 하겠지만 저는 힘들어요.”
완벽해 보이는 조건과는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우울감. 이대로 무기력하게 지낼 수 없었던 김씨는 새로운 공부에 도전해 볼 생각이란다. 배워서 뭐하나 하는 생각을 완전히 떨쳐 버린 것은 아니지만 뭐든 시도하다보면 또 새로운 길이 열리지 않겠냐며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 보려고 애쓴다고 말한다.
재봉틀에서 또 다른 즐거움 찾아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주부 허은주(38·남천동)씨는 갑자기 찾아온 우울증으로 한동안 고생을 했다. 첫째와 터울이 좀 있는 둘째 아이가 두 살이 될 무렵부터 아이 때문에 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슴이 답답하고 무기력해졌다.
아이를 맡아서 키워줄 사람도 없었고, 남편은 항상 바쁘게 일 하느라 늦게 들어왔다. 그래서 아이와 둘이 있는 시간에는 멍 하니 무기력하게 있는 날이 많았다. 점점 집안 살림은 엉망이 되었다. 남편이나 아이들은 마냥 귀찮았다. 그러다 보니 가족들에게 짜증을 내는 일이 많아졌다고 한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던 허씨. 평소에 하고 싶었던 것을 하면서 자신에게 투자를 하기로 결심했다. 재봉틀을 한 대 사서 아이가 잠든 밤에 옷을 만들어보기로 하였다.
처음에는 어디서 배운 것이 아니라 서툴고 어려웠다. 그러나 하면 할수록 재미가 있었다고 한다. 한 벌 두 벌 만든 옷을 입혀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제는 아이가 자는 시간만이 기다려진다고 한다.
“창조적인 일을 하는 것이 우울증에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림이나, 수공에, 킬트 같은 작품을 만들다 보면 나름의 의미가 생긴다고요.”
우울증을 이기는 3가지 실천법
여자의 25% 남자의 10%가 겪는 우울증
예전에는 “우울증은 마음이 약해서 생기는 병이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우울증은 의지나 마음만의 문제가 아니다. 외부환경이 개선되어도 계속 우울증이 느껴지고 2주 이상 계속 된다면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여자의 경우 25%, 남자의 경우 10%가 우울증 경험이 있다고 한다. 우울증 증상은 20대에 시작해 40대에 가장 많다. 요즘은 청소년·어린이까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여자는 생리나 임심, 출산 폐경 등 호르몬의 급작스러운 변화를 자주 경험해 더 잘 걸릴 수 있다.
유전, 호르몬의 변화, 술·약물에 의한 뇌의 구조 변화, 사회환경적인 요인까지 다양한 이유가 있다.
식생활, 걷기운동 등 생활개선이 필수
우울증이 현대인들에게 흔한 질병이 되어 버린 것은 현대인의 삶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과도한 스트레스와 잘못된 식습관, 그리고 생활환경 때문이다.
반복되는 심각한 우울증은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약물과 상담으로 생각보다 쉽게 치료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생활 개선도 필수이다.
첫째, 식생활이다. 가공식품 위주의 생활이 우울증을 증가시키고 있다고 한다. 오메가3가 많은 생선과 신선한 야채를 충분히 먹는 것이 좋다. 우울증 환자 중 탄수화물 중독이 많다. 그리고 카페인도 우울증의 적이라고 한다.
둘째, 햇빛 아래 많이 걸어야 한다. 5분만 걸어도 자연적인 항우울제 엔드로핀이 분비된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걷는 습관을 키워보자. 스트레스 해소는 물론 잡념까지 사라져 몸과 마음이 개운하다.
셋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우울증을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인간적인 소통의 길이 막혀가는 현대인의 삶에 가장 중요한 문제인지도 모른다. 병원을 찾아 의사와 상담을 받는 것은 마음의 문을 가장 잘 열 수 있는 묘책이다.
생각보다 우리 주위에 많은 사람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누군가도 나처럼 힘든 순간을 혼자 이겨내고 있는지 모른다.
지금 우울하다면 깍지 낀 손을 풀고 전화기를 들어 친구에게 전화를 하자. 그리고 누구라도 만나기 위해 외출준비를 해야 한다. 가을 햇살이 쓸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더없이 화창할지도 모른다. 인생의 친구, 작지만 나만의 즐거운 일이 있다면 가을은 더없이 아름다운 계절이다.
김부경 리포터 thebluemai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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