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이 만난 사람 - 시인 신경희 씨
어느 날 내게로 시가 왔다
24년간 함께 한 어머니는 시의 자산, 안산여성문학회 회장 역임
지난 2일, 안산 문예당 전시실에서는 제24회 별망성예술제 축제 행사의 하나로 시화전이 열리고 있었다. 전시회에는 관람객들의 발길이 유난히 많이 머무는 작품이 있었다. 시골에서 가져 온 ‘파’를 나눠주기 위해 온 이웃집 소녀를 난초로 표현 한 신경희(48) 시인의 동시(童詩)가 바로 그것. 푸릇푸릇한 파를 한 아름 들고 있는 소녀와 따뜻한 시인의 마음이 그림처럼 연상되는 시는 짧지만 여운을 주는 작품으로 관람객들에게 시 읽기의 즐거움을 주었다. 그녀의 작품을 본 한 평론가는 ‘행복한 마음을 갖게 해 주는 시’라고 평을 해 주었다.
꽃 같은 시인
아파트 긴 복도 끝에 있는 시인의 집을 찾아갔다. 시인의 집을 방문하기는 처음인지라 약간의 설레임이 생겼다. 그녀의 집 앞에 서자 현관문 아래 꽃 화분 무리의 은은한 향기가 방문자를 반긴다. 아파트에 살면서 실내가 아닌 곳에 이렇게 정성스럽게 꽃을 내놓은 집은 처음이다. 복도 난간에는 주홍빛 속살의 호박이 가을 햇살에 빛나고 있다. “시 쓰는 어르신들이 많은데 제가 나 올 자격이 있나요?“ 자신을 닮은 차 잔에 찻물이 가득 담기자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어릴 적 그녀는 몸이 약했다. 몸을 쓰는 것은 뭐든지 힘들었다. 그런 그녀를 위해 부모님은 학교 앞으로 이사를 갈 정도였다고 한다. 대신 그녀는 조용히 앉아 시를 썼다. 시를 쓰면서 상상의 나래를 펴고 꿈을 가꾸었다. 그렇지만 진학은 ‘앉아서 일 할 수 있어 너에게 좋겠다’는 부모님의 의견에 따라 임상병리를 전공했다. 병원의 검사실 실장을 하면서도 시에 대한 간절함은 놓치지 않았다. 결국 국문학과에 들어가 시와 즐거운 연애를 하면서 시인의 꿈이 영글어 갔다. 그녀의 시 공부 소식을 가장 즐거워 한 사람은 고교시절 문예부 선생님. 그녀의 문학적 소양을 일찌감치 감지하고 각종 ‘백일장’을 데리고 다녔던 스승은 ‘결국 네가 길을 잘 찾았구나’ 하며 기뻐해 주었다. 2004년 안산여성문학회 회장이 됐을 때도 힘찬 격려를 해 주셨다.
내 시의 8할은 시어머니 이야기
결혼은 그녀에게 또 다른 시의 세계를 안내한다. 결혼은 습작 시간을 절대적으로 감소하게 하는 불청객(?)이었지만 삶의 내용을 풍부하고 다양하게 만들어 주었다. 특히 결혼과 함께 20년을 넘게 산 시어머니는 그의 시의 중요한 소재이고 주제가 되었다. “어머니는 나의 시 중 8할”이라는 그녀. 예전 시에서는 어머니를 힘들어하는 부분도 많이 등장하나 지금은 삶에서나 시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어느 날 아침, 어머니의 이불과 요를 정리하다가 발견 한 비늘. 가슴 한 켠이 아려지는 아픔과 연민을 그녀는 ‘비늘꽃’이라고 제목으로 시를 썼다. ......거친 물살을 가르며 돌아 와 누운/ 생의 자리에/ 피워 올린 비늘 꽃..
그녀는 이불을 탁탁 털면서 홀씨가 되어 날아가는 민들레를 생각했다고 한다.
2002년은 시인에게 특별한 해이다. 월드컵으로 축제 분위기였던 그해, 그녀는 문예지를 통해 정식 등단을 한다. ‘등단을 했다는 자체보다 오랜 습작기간의 결실이 느껴져 좋았다’고 시인은 말한다. 수많은 불면의 밤을 보내고 나온 첫 번째 시집 ‘바다를 끓인다’는 동료 시인들과 독자들의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시집은 받아 든 시어머니는 ‘내 이야기도 많이 썼냐?’물어 보았고 시인은 ‘어머니 예쁘다, 좋다’ 많이 썼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언어를 남기는 건 중요하지 않다. 시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을 시인이 되고 나서 알게 되었다’는 그녀는 생활의 순간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려 한다. 자신이 심어 놓은 도라지를 캐 가는 할머니를 예쁜 ‘꽃도둑’이라 부르고, 이웃집 소녀가 들고 온 파가 난초로, 소녀에게는 난의 향기를 맡는 그녀를 보며 칠레 태생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어느 날 내게로 시가 왔다‘는 말이 떠오른다. 생활이 시(詩)인 시인(詩人)! 자신의 시가 고스란히 담긴 동인지를 보여주는 시인의 얼굴을 보며 리포터도 시인이 된 것 같다.
남양숙 리포터 rightnam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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