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영화에서 길을 찾다 - 마이 라이프(1994)

줄 수 있는 게 이 마음밖에는 없다

지역내일 2010-10-11
이 집이나 저 집이나 자식(사실은 부모?)이 사달이다. 윗집은 삼 대째 세습으로 전 세계 눈길 휘어잡고 아랫집, 그러니까 리포터 사는 집은 부모덕에 직장 꿰찬 애들에게 눈총 요란하다. 몇 백 년 전 음서제도가 아직까지 유효한 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한반도 정세를 좌지우할 얼굴 처음 공개된 날,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외교부 특채 비리도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얼마 후 특혜뿐 아니라 친인척 교차 취업 소식까지 들려왔다. 이 집, 참 털수록 먼지투성이다.
어느 집 하나 조용할 날 없네. 윗집이야 그 집 사정(임에도 심하게 신경이 쓰)이니 알아서 할 노릇이지만 이 집 일은 에효…. 주말에도 학원 전전하고 스펙 쌓기 공들이는 아이들에게 괜히 미안해졌다. 씁쓸함에 그저 조용히 맥주만 마셨다.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평범해지기란 참 어렵다. 내 아이가 세상의 중심인 듯 여겨지는 순간 한 두 번이 아니고 새끼를 위해 못할 게 무엇이랴 싶은 전능함도 불쑥 솟는다. 그런데 환상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확신이 될 때가 문제다. 험한 세상 구할 자 내 아이밖에 없는 것 같고 누군들 솜털 하나 못 건드리게 하고 싶어지면 볼 장 다 본 거다.
그래서 만족하십니까. 우리나라 누리꾼 솜씨가 어느 정돈데 사진 공개 안 되는 걸 보면 지금도 자식들만은 지키시나 보다. 그 자식들 앞으로 어떻게 얼굴 들고 살까 걱정이다. 아니지. 걱정은 무슨. 이제라도 지들 일 지들이 알아서 해야지. 영화 <마이 라이프>에서 아내(니콜 키드먼)의 임신과 신장암으로 얼마 살지 못한다는 소식을 동시에 들은 밥(마이클 키튼)은 이 꼬락서니를 보면 뭐라 할까. 아이와 함께 할 단 하루만이라도 바라는 그가 아이에게 남긴 것은 부귀영화 보장된 앞날이 아니다. 아주 소소한, 어른이 되어가며 알아야 할 몇 가지 것들이었다. 하지만 먼 훗날 그를 지켜보는 아들은 느낀다. 아버지의 존재와 가치를.
냅뒀어도 잘 났을 자식들이건만 사랑이 넘쳐 문신을 새기게 된 그들이다. 주고 싶어도 줄 것 없(고 생각도 없)는 리포터는 줄 수 있는 게 이 마음밖에는 없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어른이 되어 “왜 엄마는 나에게 아무것도 안 줘”라고 하지 않을 정신 상태는 남겨주고 싶다. 물론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마냥 엄마 치맛자락만 잡고 사는 게 수치스럽다는 것쯤은 알아야 한다. 나잇값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나이는 그저 숫자가 아니다.
김나영 리포터 naym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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