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앞두고 물가가 심상치 않다. 특히 태풍으로 인한 피해는 농민 뿐 아니라 한가위 차례 상 준비를 앞둔 며느리들 마음도 고단하게 만든다.
화려한 쇼윈도에 편리한 쇼핑, 번쩍이는 선물 코너들,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에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올해는 유독 크게 느껴지는 이유다. 이럴 땐 심란한 심정 헤아리며 바구니 가득 덤을 얹어 줄 수 있는 재래시장엘 들러보자. 화려하거나 편리 함에선 뒤떨어져도 우리네 사는 인심을 제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 더불어 하늘 높이 치솟은 물가 걱정과 부담을 나누기에도 좋다. 재래시장상품권과 원산지 표시제 확립 등 변화를 꿈꾸는 재래시장의 변신도 여기에 발걸음을 재촉해준다. 추석을 앞 둔 성남ㆍ용인 재래시장의 풍경을 미리 담아 보았다.
60년 이어온 전통시장, 용인 중앙 시장으로 오세요
총 760여개 점포 2000여 명의 상인들이 종사하는 용인 중앙시장은 역사만도 60년이 넘는 전국 몇 안 되는 중대형 규모의 전통 시장이다. 재래시장의 진화를 엿볼 수 있는 살아있는 교과서인 이곳을 첫 방문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분된 리포터. 15년차 주부에게도 이곳은 별천지처럼 다가왔다.
골목마다 진을 치고 물건들을 다듬고 씻고, 음식들을 만드는 상인들의 천연덕스러운 몸짓에는 오랜 세월 습관처럼 굳어진 일상의 성실함이 묻어 있다.
용인 중앙시장은 상설장과 5일장이 결합된 재래시장이다. 매 5일마다 장이 들어서면 상설장의 2~3배에 이르는 규모의 장이 서서 구경 거리는 더욱 풍부해진다.
하지만 굳이 5일장이 아니더라도 상설장 상품 구색도 잘 갖춰져 있어 장을 보는 데 어려움이 없다. 상인회의 조면희 부회장(슈즈 뱅크 운영)은 “용인에 있긴 하지만 전국 각지에서 오시는 단골손님들로 전국구의 재래시장”이라며 “가깝게는 광주나 이천, 성남 등지와 멀리는 서울에서도 손님들이 찾아 오는 곳”이라고 소개한다.
특히 젊은 층부터 나이 드신 분들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 층은 이곳이 재래시장으로의 명성을 아직은 잘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아 자부심을 느낀다고. 근래에 와서는 재래시장 활성화 사업으로 차 없는 거리와 각종 편의 조형물 설치, 주차장과 카트시설, 재래시장 상품권 등으로 대표되는 노력들로 찾는 손님들의 발길이 확실히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추석 물가 4인 기준 20만원 잡아야
리포터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제수 용품을 판매하는 AD농산(031-335-3554)이다. 30년 넘게 제수 용품만 모아 판매해 온 이곳은 전국 각지의 호텔과 골프 장에도 물건을 보내 줄 만큼 유명한 곳이다.
“올해는 태풍 영향으로 예년에 비해 30% 정도 물가가 올랐다고 보시면 됩니다. 4인 가족 기준 제수 비용은 20만원 정도 들 것 같습니다.” 넉넉한 외모의 사장님은 과일 고르는 안목도 상인들 교육용 교재에 실릴 정도라니 두말하면 잔소리.
사과와 배는 큰 걸로 5개가 각각 15000원, 찹쌀 약과는 9개 들이가 3500원이다. 15일경부터는 차례상 준비 손님들로 붐 빌 거라고 예상하는 사장님은 일주일에 서너 번씩 가락동, 외발산동, 영등포 시장에서 과일을 직접 골라 오신단다. 그만큼 신선하고 맛있는 과일로 승부를 거는 중앙 시장의 대표 매장이다.
떡골목 등 365일 잔치집 같은 시장
명절이면 생각나는 떡집. 물론 이곳 시장에도 떡 골목이 성행하고 있다. 10년 넘게 떡 골목을 지키고 있는 ‘민속떡집’(031-337-2829)의 사장님은 쉴 새 없는 손길로 떡을 만들면서도 경기가 예전만은 못하다고 성화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떡들을 안 맞춰요. 그저 만들어 논 떡만 조금 사갈까? 그러니 경기가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명절에는 이래나 저래나 바빠요.”
각양각색 송편과 꿀떡, 팥떡들이 켜켜이 쌓여 있는 떡집의 풍경을 보니 명절 분위기가 제대로 느껴진다.
나물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강원상회(031-321-1771)에서는 국산 도라지가 400g에 5000원, 중국산 고사리는 400g에 4000원에 판매하고 있다. 원산지 표시제를 정확히 지키고 가격 표시도 잘 해놓아 구매하기가 쉽다.
중앙 시장의 대표 골목인 순대골목에는 16군데의 순대집이 있다.
평원집(031-332-1014)은 이곳에서만 23년 된 터줏대감이다. 직접 순대와 족발을 만들어 파는데 야채와 돼지고기를 넉넉히 넣어 만든 순대는 단골 임산부들이 와서 먹고는 죄다 아들을 낳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올 정도다.
권미영 리포터 myk31@paran.com
용인 중앙 시장 이용 Tip
위치 용인 행정타운에서 구시청쪽 좌회전 1.2km 직진후 좌회전.
주차장 구 용인 경찰서 주차장과 시장 내 공영 주차장 이용. (카트 있음)
상품권 용인 신협에서 발행, 5000원, 10000원 권 이용가능.
휴무 정해진 휴무는 없고 점포 별 휴무 있음
문의 중앙 시장 상인회 031-336-1110
시장에서 만난사람- 2대째 그릇 가게 운영 ‘현대 리빙’ 금창현 사장
정직하게 장사하면 손님이 더 알아주시더라고요
“86, 88년도만 해도 아주 돈을 쓸어다 담았죠. 당시엔 대형마트도 없었고 오로지 재래시장엘 가야 물건을 살 수 있었으니까요. 여북해야 공무원 월급 80만원 할 때 400만원씩 벌곤 했으니 말 다했죠.”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 그릇 소매점을 잇게 된 이유도 이처럼 호황을 맞았던 재래시장의 경기 때문이었다는 ‘현대 리빙(031-333-5559)’의 금창현 사장. 횟수로 따지면 60년을 시장과 함께 맥을 이어왔지만 아직도 그때 만큼의 호황은 다시 경험하기 어렵다는 게 금 사장이 생각이다.
“과도기죠. 젊은 손님들이 많아야 시장이 활기가 도는데 상인들과 손님들이 같이 연로해 지니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가라앉았어요. 이럴 때일수록 달라진 분위기에 맞춰 변화를 꾀하고 적극적으로 손님 유치를 유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 역시 막주발과 사기, 도자기 그릇부터 스텐, 멜라민에 이어 다시 도자기로 변하는 그릇 선호도의 변천사를 지켜오며 상호명도 현대식으로 짓고 변화를 꾀하고 있다.
“다만 70대 단골손님이 딸 혼수 장만준비를 위해 방문하셔서 ‘너도 이집에 다녀라. 나도 20년 다녔는데 아저씨 믿을 만하고 좋은 물건 파니까’라고 말씀해 주실 땐 적어도 허투루 살지는 않았구나 싶죠.”
시대의 흐름이 변하면서 재래시장도 변하지만 손님을 귀하게 여기고 정직하게 장사하는 마음은 지켜야 할 덕목이라는 금창현 사장의 우직한 뚝심이 오늘도 중앙시장 한편을 오롯이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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