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탬프는 마음이 둥글둥글한 친구 같아요
기억도 아련한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찍어주시던 ‘참 잘 했어요’ 도장. 그저 글자 모양 조각에 잉크를 묻힌 것뿐인데 공책 한켠에 찍혀있는 날이면 어찌나 뿌듯하던지. 이처럼 글귀와 그림이 주는 작은 행복을 마음속에 간직하며 사는 사람, 아트 스탬프를 모으는 강순희 씨를 만났다.
꾸미는 것이 좋아 모으기 시작한 아트 스탬프
아트 스탬프. 말 그대로 예술 도장이다. 이름 도장은 이름 새기는 데 쓰듯 예술 도장은 아름다운 작품을 만드는 데 쓴다. 선물 포장, 편지지, 인테리어 소품, 액자 꾸미기, 스크랩 북 만들기 등 쓰임새는 무궁무진하다. 손수 만든 물건에 자신의 마음을 담고 싶어 하는 DIY족이 늘어나면서 아트 스탬프도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한다.
7년째 스탬프를 모으는 강순희 씨. 처음에는 아트 펀치를 이용해 꾸밀 요량으로 스탬프를 함께 써보았다가 매력을 느껴 방향을 바꾸었다. 리포터를 위해 꺼낸 스탬프와 펀치는 김치 통 만큼이나 커다란 상자에 가득 가득 담은 것이 무려 열여섯 개! 스탬프를 이용한 엽서와 스크랩 북, 소품들도 손에 다 꼽을 수 없을 정도. 언뜻 보아서는 돈을 주고 산 것으로 착각할 만큼 세련돼 보였다.
“스탬프 아트는 초보와 고수의 차이가 아주 미묘한 분야예요. 전혀 손재주 없는 사람도 성취감을 금방 느낄 수 있어요. 스탬프의 힘에 얹혀 가니까요.”
그는 미술을 전공하지도, 평소에 미적 감각이 뛰어난 편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저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을 뿐이라고. 그만큼 아트 스탬프로 근사하게 꾸미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미 꾸며진 스탬프에 잉크를 묻혀 찍기만 하면 되니까.
세상에서 단 하나, 내 마음을 표현한 물건을 보면 뿌듯
스탬프를 이용한 예술은 이미 공예의 한 분야로 외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비싼 돈을 주고 산 것이라야 인정하는 우리나라 분위기가 서서히 바뀐 것은 최근 1~2년 무렵. 외국에서 먼저 발전한 분야라 스탬프도 수입 제품이 대부분이다. 스탬프를 사 모으느라 화장품이나 옷에는 돈을 쓰기 힘들다는 강순희 씨.
“가끔 생각해요. 분에 넘치는 게 아닌가 하고. 하지만 ‘나 자신을 위해 이 정도의 사치는 괜찮아’라고 위로해요.”
수요가 늘면서 국내 생산 업체들이 늘어나고 자체 캐릭터도 개발되고 있어 기쁘다는 강 씨. 스탬프를 사는 것이 비싸서 그렇지, 스탬프로 작품을 만드는 데는 많은 돈이 들지 않는다.
“좀 궁상맞아 진다고 할까? 단추 하나, 전단지 한 장도 다 모아요.”
쓰지 않는 가죽 허리끈으로 만든 소품, 다 쓰고 난 테이프 심을 활용한 탁상시계, 가지치기 하고 난 나뭇가지로 꾸민 액자, 안 입는 청바지에 염색용 잉크를 찍어 만든 파우치 같은 소품들이 그의 말을 뒷받침 하고 있었다. 남편은 ‘다 갖다 버리라’고 하지만 아이들은 좋아한단다. 딸아이 친구의 생일날, 천 원짜리 수첩에 아트 스탬프 하나로 근사한 선물을 만들어 주었더니 ‘아까워서 못 쓰겠다’는 말이 돌아왔단다. 마음을 담아 만든, 세상에 단 하나 뿐인 물건. 그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날 때면 기분이 좋아진다.
파워블로거로 자선단체에 스탬프 작품 기부도
스탬프로 삶을 꾸미는 강 씨를 보고 사람들은 ‘세상 걱정 없어 보인다’고 말한단다. 그렇게 보인다면 그것도 스탬프 덕분이라는데.
“스탬프를 하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몰두하게 되거든요. 연예인 자살소식이 들리면 스탬퍼들은 ‘스탬프만 알았더라도 달랐을 텐데’라고 말해요. 정신 건강에도 좋아요.”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 하는 100% 아날로그 작업 스탬프 아트. 강순희 씨는 치매에도 좋은 스탬프를 오래 오래 하고 싶단다. 외국처럼 할머니가 되어 손자, 손녀에게 가르쳐주기도 하고 봉사 활동도 하고 싶다고. 그는 ‘스탬프 마마’라는 사이트의 일산 홈 클래스를 운영하며 네이버 블로그(blog.naver.com/lethe65)를 운영하는 파워 블로거 이기도 하다. 병원을 예쁘게 꾸미고 싶은 간호사, 다양한 수업을 시도하려는 교사, 태교를 하려는 임산부 등 다양한 사람이 그의 손을 거쳐 스탬프를 만났다. 블로그를 통해 만난 스탬퍼들과 비정기적으로 유니세프와 같은 자선 단체에 스탬프로 꾸민 엽서를 기부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스탬프를 만나 생긴 일들이다.
“스탬프는 어디에도 잘 어울려요. 어디나 잘 섞이고 둥글둥글한 사람 같아요.”
스탬프에 마음을 실어 세상 사람들을 두루 두루 만나고 있는 강순희 씨야 말로 그렇게 보였다. 스탬프처럼.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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