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으로 열리는 또 다른 세상, 시작해 보실래요?
“아셨죠? 파일목록에서 뉴 타이틀을 열어주세요. ‘아도브프리미어’를 실행해 주시고요, 툴박스에서 사각형을 만드세요.”
컴퓨터를 사이에 두고 강사의 지시에 맞춰 모니터 화면과 마우스를 움직이는 손길이 예사롭지 않은 사람들.
언뜻언뜻 보이는 흰머리와 돋보기안경이 없었다면 대학 강의라고 착각할 만큼 전문적인 수업내용이 펼쳐지는 이곳은 용인시노인복지관 UCC동아리 회원들이 매주 모이고 있는 컴퓨터 강의실이다.
젊은이들의 전유물로 알았던 컴퓨터와 인터넷, 그리고 UCC.
‘사용자 손수제작 콘텐츠’라는 이름의 UCC는 네티즌들이 인터넷에서 놀 때 필요한 동영상을 만들고 사진을 합성하거나 패러디하며, 그림을 그리는 등의 모든 활동을 말한다.
“뭐야 그런 복잡하고 어려운 활동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가당키나 한 거야?”
다소의 의구심에서 출발한 반문을 말끔하게 해소시켜 준 오늘의 주인공, 시니어 파워 유저들을 만나보았다.
우리는 인터넷에서 논다
동아리 회원들이 수업에 열중하고 있는 8월의 어느 월요일. 강사는 교재에서 큼직한 글씨로 발췌한 프린트를 들고 빔 프로젝트의 화상 내용을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남녀 25명으로 구성된 회원들은 강사의 설명에 따라 하나하나 마우스를 클릭하며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간다. 다소 이해가 더딘 회원은 옆 자리에 앉은 짝꿍에게 묻기도 하고 더러는 ‘강사님 여기요’를 외친다.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회원들의 열정에서 복지관을 대표하는 중심 동아리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를 알 것만 같다.
“2008년 8월에 결성해 꼬박 2년이 됐으니 여기 모인 회원 중 컴맹, 넷맹은 없어요. 초보 딱지는 일치 감치 떼고 중급 이상의 실력을 가진 분들이 모인 동아리죠. 처음엔 인터넷 회사에서 봉사차원으로 강의를 진행해줘서 배우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회사 사정으로 봉사가 중단됐어요. 그 후부터는 우리 회원들끼리 자체적으로 공부하고 또 실력이 좋은 회원 세분이 강의를 교대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동아리 회장이자 오늘 수업의 강의 소 임을 맡은 서재봉(67·상갈동)씨의 설명이다.
복지관에서 운영되는 32개 동아리 중 가입을 원하는 회원이 많아 대기자 명단까지 갖추고 있는 곳은 흔치 않다며 자부심을 드러내는 회원들.
수업에 쓰이는 교재도 ‘프리미어’, ‘매직1’, ‘스위시맥스’ 등 전문가들이나 씀직한 내용이라니 이들의 자긍심에 저절로 수긍이 간다.
“여름, 겨울 동아리 발표회에 우리가 만든 작품을 전시하면 복지관 회원들 입이 딱 벌어져요. 그리고 너도나도 가입하고 싶다고 문의를 해와요. 하지만 어느 정도 컴퓨터와 인터넷을 다룰 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초보들은 쉽게 들어오기 어려운 동아리이죠.”
총무를 맡고 있는 김옥경(69·용인 동백동)씨도 동아리 자랑에 보태기 한판이다.
사진, 음악, 동영상 …안되는 게 어딨니?
언뜻 보기에도 어려워 보이는 수업에 한 눈도 팔지 않고 열심히 참여하는 이유는 UCC가 가진 매력 때문이라고 입을 모으는 회원들. 이렇게 배운 내용들은 인터넷과 블로그, 온라인 카페에서 저마다 아름다운 꽃처럼 피어난다.
“여행 갔다 온 후 사진 찍어 동영상 만들고, 이메일을 보내거나 카페에 올리면 친구나 며느리, 손자들이 깜짝 놀라면서 좋아해요. ‘어떻게 우리도 못하는 걸 할아버지가 하시냐고’ 그런 재미에 자꾸만 새로운 것들을 배우려고 하는 거지요.” 웃음. (서재봉)
뿐만 아니다. 지역의 맛 집을 찾아 음식이 나올 때마다 하나하나 사진으로 찍고 카페에 올려 품평을 하는 것도 이들의 즐거운 활동 중 하나.
그도 그럴 것이 25명 회원 대부분이 각자의 블로그나 온라인 카페를 운영하고 동호회 카페에서 솜씨들을 뽐내고 있으니 이들에게 인터넷과 UCC는 즐거운 놀이의 다름 아닌 것.
실제 회원들의 UCC 놀이는 여기저기에서 빛난다.
30년 공무원 생활 퇴직 후 인생 2막의 전원생활을 잔잔히 담아내고 있는 조관희(70·포곡읍)회원의 블로그 ‘영골농막(http://blog.daum.net/jokh1123)’에는 멋스런 사진과 그림, 지역 행사를 담은 동영상이 가득해 방문객의 발길이 꾸준히 모아지고 있다.
시니어 기자들이 만드는 ‘실버넷 뉴스’에서 기자로 활약하고 있는 이순모(65·동백)회원도 지역의 열혈 시니어와 이색 현장들을 UCC로 소개해 좋은 호응을 얻고 있다.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을 가진 회원 중에는 여든을 앞둔 고령 회원도 다수 참여하고 있어 열정은 나이와 무관함을 보여주고 있는 이들.
“교재 보면서 동영상 만들고 글쓰고 사진 작업하니 치매 예방에도 좋고, 자식 며느리한태 최고라는 칭송도 들으니 보람도 있고, 함께 모여 맛난 음식점 탐방도 다니니 즐거움 가득이지요. UCC는 이제 젊은 사람들보다 우리같이 나이든 사람들에게 오히려 활용도가 높습니다. 취미나 여가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많으니까요. 저마다 멋스럽게 꾸며놓은 회원들의 블로그에 놀러오세요. 솜씨가 데끼리입니다. 하하하.”
권미영 리포터 myk31@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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