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향기로 시작하는 하루, 부자가 따로 있나요?"
장난감 블럭처럼 꼭꼭 짜 맞추어진 아파트와 빌라촌. 이곳에서 하루하루 아둥바둥 살아가는 우리들은 언제나 초록빛 기운을 늘 그리워하며 지낸다. 청량한 공기, 케케하면서도 시원한 흙 향기는 늘 우리를 기분좋게 만드는 것들. 하지만 교외로 나가지 않고서는 이 모든 것들을 제대로 누려보기 힘든 게 사실이다. 하지만 김용근(62), 김경애(59) 부부의 일상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 소소하지만 손수 흙을 만지며 작은 농부로 살아가는 이들 부부의 텃밭에 초대되었다.
"풍성한 식탁, 텃밭이 마련해줘요"
기둥을 타고 3~4가량 높이 자란 능수화, 꼬불꼬불 서로 얽히고 성켜 제법 근사한 그늘을 마련해주는 등나무, 키 자랑을 하듯 쑥쑥 커가는 대파와 부추, 풍성한 잎사귀 사이사이로 부끄러운듯 고개를 내미는 파란 고추. 이들 부부의 텃밭에서 볼 수 있는 나무와 작물들이다.
"고양시로 15년 전에 이사오면서 옥상을 갖게 됐어요. 이렇게 크게 가꿀 욕심이 아니었지만 하나를 심으면 또 하나를 심어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되고, 자꾸 키우다보니 시간을 지나갔지만 지금의 텃밭을 가꾸게 됐어요" 라며 옥상과 함께한 지난 십여년을 김경애씨는 돌이켜본다.
이들 부부는 농사나 작물에 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심심풀이 취미 생활로 시작한 일이기에 별다른 지식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기특하게 잘 커가는 녀석들을 보며 관련 책도 뒤지기 시작했고, 주위 사람들의 조언도 구하다보니 이젠 웬만한 작물에 관해선 척척박사가 되었단다.
김경애씨는 "부추는 아무리 따도 저절로 풍성하게 자라주니 식탁에 늘 빠지지 않는 요리 재료가 되구요. 원래 병충해가 많다는 케일은 원래 약을 뿌려줘야 한다는데 이렇게 잘 자라주네요."라고 말한다.
원칙은 있다. 절대 화학 비료는 쓰지 않는 것. 고양YWCA 청솔민들레 모임 회원으로 평소 환경 정화 활동에 관심이 많은 김경애씨. "공부로 배운 EM 발효액을 거름으로 써봤더니 효과가 좋더라구요. 요새 ''친환경'' ''유기농''이 트렌드이지만 우리 손으로 직접 믿고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복이 많은 건지 몰라요" 파프리카, 호박, 피망, 토마토, 상추, 쑥갓, 양파, 고구마 등 웬만한 야채들은 모두 다 자신들의 텃밭에서 나오니 그야말로 유기농 식탁을 이 부부는 늘 만나볼 수 있다고 한다. 남편은 아침마다 야채를 손수 따오고, 부인은 이 재료들로 구수한 된장찌개와 반찬을 만들며 시작하는 아침. 옥상 텃밭은 부부금실을 더욱 좋게 만든다. 특히 갓 따온 야채와 새콤달콤한 초장으로 비빔밥을 만들어 먹을 때가 제일 맛있다며 웃음짓는 이 부부의 모습이 정겨워 보인다.
지렁이도 저절로 나올만큼 자생력 강한 흙의 매력
비바람이 불때면 끈으로 잘 묶어줘야 하고, 메마르지 않게 늘 물도 뿌려줘야 하고, 해가 되는 것은 없는지 꼼꼼히 살펴봐야 하는게 농사일이다. 옥상 텃밭이라고는 하나 늘 부지런해야 하는 것은 매한가지일 터. 그 부지런함의 원동력을 김용근.김경애 부부는 ''흙''이라고 꼽는다.
"이것 보세요~ 처음엔 그저 흙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파보는 곳마다 지렁이가 나올만큼 좋은 흙이 됐어요. 흙이 숨을 쉬고 있다는 거죠."(김용근 씨)
"요즘을 삭막한 사회라고들 하지요. 하지만 여기 옥상에 올라오면 늘 고향에 온 것처럼 평안한 마음을 가지게 돼요. 부자가 따로 있나요? 마음의 부자가 된 것 같은 충만한 느낌이랍니다"(김경애씨)
흙을 만지며 생명의 소중함 그리고 작은 것에서 오는 소소한 행복이 얼마나 감사한지 느끼며 산다고 한다. 그리고 흙처럼 거짓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일생을 살아가고 싶다고 이들 부부는 덧붙인다.
부추와 대파, 케일을 한아름 뽑아주는 이들 부부의 인심처럼 그들의 텃밭도 언제나 풍요로웠으면 한다.
남지연리포터 lamanu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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