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영화에서 길을 찾다 - 기담(2007)

죽어서도 놓을 수 없는 사람이 당신 옆에 머문다면…

지역내일 2010-08-14
일찍이 송도3절로 불리던 명기 황진이는 “동짓달 기나긴 밤 한 허리를 베어다가 어른님 오신날 밤 굽이굽이 펴겠다”고 했다지. 그 시조 듣고 동짓달만 기나긴 줄 알았는데 올해, 여름밤도 그에 못지않다는 걸 처음 알았다. 태양은 한껏 게으름 피우며 느지막이 그 위세 가라앉히건만 더위에 시달려 잠 못 드는 밤은 왜 이리도 길기만 한 겐지….
이럴 때 굳이 잠을 청하면 그마저도 스트레스니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곱게 잠들기 글러 먹은 밤에는 기이한 혹은 무서운 이야기로 간담이나 서늘하게 해야겠다. 이때 유독 떠오르는 영화 한 편이 있다. 바로 ‘기담’. 공포영화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애처롭고 멜로영화라고 하기에는 심각하게 섬뜩해 오래오래 기억 속에 머무는 영화다.
영화는 1979년 한 대학강의실에서 뇌수술 장면 촬영본을 학생들에게 보여주며 시작된다. 그 안에서 전개되는 또 다른 이야기의 배경은 1942년 2월 경성의 안생병원, 폐원하기 전 마지막 나흘 간 벌어진 세 가지 이야기를 차곡차곡 전개한다. 그리고 그 기이한 이야기는 모두 하나로 귀결된다. 바로 죽어서도 놓을 수 없는 독한 사랑…. 그러함에도 함께 하지 못하는 쓸쓸함의 공포 그리고 외로움. 그 속에서 때로는 애처롭게, 때로는 가슴 저미게 을러댔다가 갑자기 심장 내리찍어 후들거리게도 만들며 여름밤의 심난한 공포를 만든다.
일반적인 공포영화가 화끈한 장면으로, 기괴한 사운드로 공포를 전달한다면 ‘기담’은 서사로, 묘한 분위기로 공포를 전달한다. 피칠갑 프레디와 간 빼 먹는 구미호는 아닐 지라도 그 공포는 가히 수준급이다. 그 속에서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사랑하는 사이여도 절대로 넘나들 수 없는 외로움을 슬쩍슬쩍 전달한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 여주인공이 죽어가며 내뱉는 나직한 읊조림은 가슴 미어지는 극한의 슬픔으로 공포를 준다. “쓸쓸…하구나….”
그렇다면 이 여름밤 못지않게 견딜 수 없는 공포는 과연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생의 경계로 사랑하는 이들을 다시는 보지 못하는 것일 듯 싶다. 그 심장 메어지는 공포를 겪느니 요즘 한참 활약 중인 구미호에게 간 내주는 쪽이 훨씬 낫겠다. 언제나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을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된다면…. 그야말로 생각도 하기 싫은 끔찍한 공포다. 그래서일까. ‘기담’의 슬픈 공포가 이 여름 밤 더욱 애처롭다.
김나영 리포터 naym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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