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함께 하는 가족봉사 … 주변을 도울 수 있는 행복한 어른으로 자라는 길
본격적인 여름방학이 시작되면서 여름 휴가 준비로 몸과 마음이 들뜨는 계절이다. 몇 박 몇 일 숙소를 예약하고 멀리 떠나야만 휴가가 아니다.
모름지기 휴가란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포함되어 있어야 하는 법. 그런 의미에서 휴가기간을 이용한 봉사활동은 더욱 뜻 깊다.
각 지역 자원봉사센터에는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자원봉사를 문의하는 청소년들의 전화가 몰려온다고 한다. 자발적인 순순한 동기에서 시작하는 경우도 있지만 열의 아홉은 봉사점수를 따기 위한 것이라고 하니 씁쓸함을 감출 길 없다.
생각해보면 봉사가 시작되는 가장 작은 울타리는 역시 가족이다. 부모가 착한 선례를 남기기 시작하면 자녀들이 그 영향을 받고 자연스레 도미노 현상이 시작된다. 올 여름, 해변의 낭만이나 계곡의 물놀이 대신 이웃을 챙기고 살피는 가족봉사를 선택한 이들이 있다. 그들의 따뜻하고 행복한 나눔의 이야기 속으로 출발해보자.
홍정아 리포터 tojounga@hanmail.net
성남시가족봉사단 구성근 씨 가족
“아이들과 이야기꺼리가 많아 행복합니다”
지금으로부터 35년 전,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던 한 중학생이 시골길에서 보따리를 이고 가는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생각 없이 무거운 짐을 실어준 그 학생은 고맙다며 인사하는 할머니 모습에 저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는 걸 느꼈고 남을 돕는 게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건 어렸을때부터 제게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굳이 결정적인 계기를 찾자면 그날 그 할머니와의 만남을 꼽을 수 있겠네요.”
분당구 야탑동에 사는 구성근(48) 씨는 지난 24일 아내 남궁현주(44) 씨와 병주(이매고 2) 병희(야탑중 3) 형제와 함께 성남 상대원동 장애우시설인 우리공동체에 도배 봉사를 다녀왔다. 성남가족봉사단의 단장으로도 활약 중인 그는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진 만큼 대화 기회도 늘고 아이들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어지는 것 같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중학생 되기 전까지만 해도 가족나들이를 자주 다녔어요. 처음엔 다른 집 부모들은 공부만 잘 하면 된다고 하는데 왜 우리는 봉사를 가야 하냐며 불만들이 많았죠. 하지만지금은 빠지지 않고 함께 하는 아이들이 고맙고 대견합니다.”
구 씨의 말처럼 아이들이 봉사 현장에서 느끼는 경험은 늘 새롭고 신기하다. 지난번 태안 기름유출사고 현장에 갔을땐 TV에서 보던 것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에 놀라기도 했고, 강원도 사랑의 집짓기 봉사에서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땡볕에서 일하는 아빠를 거들기도 했다.
이처럼 변화하는 아이들 모습에 구 씨 역시 적잖이 마음이 놓인다고.
“내가 괜한 고집을 피우고 있는 게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다행스럽기도 합니다. 학교 봉사시간이 부족해 애를 먹는 친구들을 보면서 어깨 으쓱해하는 모습을 볼 땐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죠.”
용인미르가족봉사단 조의현 씨 가족
“놀러가는 기분으로 늘 즐거움 넘쳐요”
2006년 용인시자원봉사센터에서 가족봉사단을 처음 모집하던 때부터 활동을 시작한 조의현(45 기흥구 중동) 씨 가족. 한 달에 한 두 번씩 장애인과 한 가족 생활하기, 요리 만들기, 공원 산책하기, 손발톱 깎아주기 등의 봉사를 펼치고 있다. 조 씨는 아내 김동숙(44) 씨와 함께 사회복지사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할 만큼 이론까지 겸비한 자원봉사가다. 두 살 터울의 아들 정문(어정초 6), 정근(어정초 4) 형제 역시 부모님을 따라 봉사를 다닌다.
“봉사라는 이름을 붙이니 거창하게 들리지만 막상 시설 등 기관에 갈 땐 늘 놀러가는 기분이에요. 저희 아이들 역시 그곳에서 만나는 또래 친구들과 즐겁게 놀다 왔다고 얘기하구요.”
조 씨는 “아직 아이들이 어려 봉사의 참의미를 알지는 못하지만 그저 생활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아빠 뜻을 따라주니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한다. 특히 학교에서 소외당하는 친구 얘기를 하면서 마음이 아팠다는 아들의 대견한 모습에 마음에 흐뭇했다고.
홀수달 넷째 토요일이면 가족들은 함께 활동하고 있는 용인미르가족봉사단 회원들과 함께 정신지체장애시설인 용인 생수사랑의 집을 방문한다.
조 씨 가족을 포함해 16가족이 함께 모여 활동하고 있는 용인미르가족봉사단은 사랑팀, 자람팀, 상생팀, 새싹팀, 미소가득팀, 우리누림팀 등 가족단위로 팀을 구성해 매주 또는 격주 토요일마다 요양원 등을 방문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용인이동샘골봉사단 김현영 씨 가족
“가족을 행복의 마력 속으로 빠져들게 해요”
“오늘도 아빠, 엄마가 봉사 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고 서로 싸우지 않고 즐겁게 지내줘서 정말 고마워.”
가족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기창(45 용인 처인구 이동면) 김현영(42)씨 부부가 희정(용인이동초6), 원준(용인이동초 3) 현준(7) 삼남매에게 늘 하는 말이다.
“아이들에게 ‘작은 것에도 감사해라, 남을 배려해라’ 말로 하는 것보다는 직접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에 가족봉사를 시작했어요. 활동을 하면서 아이들 스스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건 엄마인 제게도 큰 기쁨이죠.”
첫 봉사활동으로 무료급식을 하던 날 할머니 한분께 식판을 가져다 드리며 수줍은 목소리로 ‘맛있게 드세요’ 인사하며 환하게 웃던 아이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고구마 심기와 수확 봉사를 통해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고 신기한 듯 조심스레 호미질을 배우던 아이들의 모습 역시 엄마 현영 씨에겐 소중한 추억이다.
용인이동초등학교에는 현영 씨 가족을 포함한 14가족 총 48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는 이동샘골봉사단이 있다. 주로 생수사랑회, 성신양로원, 아리실복지원, 수원남문무료급식소 등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장애우 목욕과 놀아주기, 고구마농사, 급식활동 등을 진행한다.
“아직도 봉사하기를 망설이는 분이 있다면 일단 꼭 한번 경험해보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특히 온 가족이 함께 하는 가족봉사는 그 뿌듯함과 행복의 마력에 중독되지 않을 수 없을 거에요.”
성남시가족봉사단 민소영 씨 가족
“삶의 긍정적 모델을 심어주세요”
“지금 주말 봉사 나갈 때 챙겨 갈 감자 사러 시장에 나와 있어요. 그날 간식으로 감자 삶아 먹으려구요.”
주말에 있을 장애우시설 도배봉사를 앞두고 준비물 준비에 한창인 민소영(46 분당구 정자동) 씨. 북적이는 시장통 속에서도 밝고 명랑한 음성으로 전화를 받는다.
남편 임정규(49) 씨와 종욱(낙생고 2) 종선(분당중 2) 형제와 함께 가족봉사를 시작한지 올해로 4년째. 해외출장이 잦아 불가피하게 봉사에 빠지게 되는 아빠의 빈 자리는 큰 아들 종욱 군이 부족함 없이 채우고 있다. 이번 주말에도 같이 봉사 못 가는 아빠 몫까지 일하고 오겠다면서 스스로 학원 스케줄까지 조정해놓는 등 의젓한 모습을 보였다고. 아프리카 같은 오지에 해외봉사를 가는 것이 꿈인 종욱 군은 월드비전 기부는 물론 해마다 기아체험행사 등에도 참여하고 있다.
“헤비타트 봉사에 아빠와 함께 다녀와서는 땀 흘리는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게 많았다고 하더라구요. 부모로써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모델이 되어주고 있는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 들었어요.”
소영 씨 가족은 매달 넷째주 토요일에 성남시가족봉사단 40가족과 함께 독거노인들과 나들이, 장애아 친구들과 쇼핑과 영화보기, 태백 춘천 경기북부지역 헤비타트 활동, 성남시사회복지시설 리모델링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집안 맏며느리라 챙겨야 할 경조사가 많긴 하지만 성남가족봉사단 토요팀장을 맡고부터는 집안일보다는 봉사단 일이 먼저가 됐어요. 이런 제 상황을 이해해주시는 시댁 어른들께도 감사한 마음이죠.”
용인어우름가족봉사단 김영란 씨 가족
“둘이 만나 하나로 어우러지는 일”
용인어우름가족봉사단(둘째줄 오른쪽 첫번째가 김영란 씨, 세번째가 연우 군, 첫줄 두 번째가 연아 양, 맨 뒷줄 5번째가 연학 군)
“흔히 어울린다는 말을 많이 쓰는데요, 저희는 그 어울림이 가능하도록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하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단체이름이 담고 있는 의미도 사람과 사람, 장애인과 비장애인, 남과 여, 가족과 가족이 함께 어우러진다는 뜻입니다.”
용인어우름가족봉사단을 이끌고 있는 김영란(46 처인구 포곡읍) 씨는 대한간호노인요양원을 찾아 치매노인 등 침상에서 생활하는 노인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봉사를 하고 있다.
봉사를 떠날땐 남편 추재호(49)씨와 조카 연학(포곡고 1)군, 연우(포곡중 3), 연아(포곡중 1) 남매가 늘 함께 한다.
가족봉사 모임을 만드는데 준비기간만 꼬박 2년이 걸려 지난해 12월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치매노인 등 어르신들을 대하는 일에는 사전교육이 필수죠.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연령대가 다양한 아이들도 할아버지 할머니를 대하는 태도부터 치매에 대한 질병 이해까지 꼼꼼히 교육받았어요.”
아이들이 불안하고 불편한 눈빛을 보이게 되면 노인들 역시 덩달아 불안해할 수 있으므로 봉사 초기엔 세심하고 각별한 노력이 필요했다. 지금은 침대 머리 맡에 앉아 친손자 손녀처럼 살갑게 노인들을 대할 만큼 아이들의 모습이 달라졌다고.
“저희 아이가 식물인간처럼 의사표현을 전혀 하지 못하는 할머니 한분을 휠체어에 모시고 산책나간 적이 있어요.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니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이가 두 손으로 할머니 얼굴에 그늘을 만들어 드리더라구요. ‘바로 저게 어우름의 힘이구나’ 하고 느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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