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 부는 인문학 열전

지역내일 2010-08-09 (수정 2010-08-09 오후 7:55:34)

존재 이유에 질문 던지고 
… 고전으로 채움을 얻다

바야흐로 찜통 같은 열기가 대지와 하늘, 바람을 뒤덮은 8월의 한복판이다. 피서를 다녀온 이들과 이제 막 떠날 채비를 마친 이들이 휴가철 낭만을 이야기 할 때, ‘논어’ 삼매경에 빠진 이들이 있다.
수지구 동천동, ‘함께 모여 공부하고 묻는다’는 의미의 마을 인문학 공동체 ‘문탁 (問琢)’에서 더위를 벗삼아 향학열로 피서를 보내는 사람들이다. 40~50세, 이들이 다시금 인문학 공부에 빠져든 것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라는 삶에 대한 진지한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광속의 시대, 3초의 경제학이 뜰 정도로 바삐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정작 놓치고 살아가는 것은 무엇인지, 본연의 나를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이제 다시 인문학과 조우하고 있는 것.
앎을 통해 삶의 질문에서 자유로워지려는 이들. 떠밀리듯 살아온 지난날을 돌아보며, 다시금 가야할 길의 좌표를 점검하는 이들. 인문학은 이들에게 새로운 길을 안내하는 나침반이자 고단한 삶의 봇짐을 덜어주는 벗이라 말한다.

인문학 마을 공동체 문탁 네트워크
지난 7월 26일 오전 수지구 동천동에 위치한 아담한 건물 2층, 15명의 주부들이 모여 더위쯤은 아랑곳없이 일본어 수업에 열중하고 있다.
앉은뱅이 서탁에 교재를 펼쳐놓고 문장 해석에 땀을 쏟고 있는 이들은 수지와 죽전, 분당 인근에서 모인 주부들이다.
“그동안 아이 키우고 살림하느라 공부를 한다는 게 새삼 어렵긴 하지만 다 같이 모여 공부하니 재미가 쏠쏠해요. 왕초보로 시작해 지금 6주째 공부를 하고 있는데 어느 정도 어려운 고비를 넘겨 다행입니다.” 분당구 정자동 이애경(44)씨의 일본어 수업 참가 소회다.
9명의 동천동 주민들이 모여 공부를 해보자 의기투합해 만들어진 인문학 공동체 ‘문탁’. (http://moontaknet.com) 이곳은 일본어 수업뿐 아니라 ‘논어’와 ‘의역학’, ‘앎과 삶’, ‘불교세미나’ 등 다양한 인문학 강좌와 세미나가 진행되는 열린 마을 공동체다.
문탁을 열기까지 주축이 되었던 이희경(49·동천동)씨는 “내 삶에 비전을 갖기 위해 공부가 필요하고 그런 공부를 풀어낼 수 있는 곳이 바로 ‘마을’이었다”고 소개한다.
“지리적, 물리적 개념의 마을이 아니라 자율적으로 움직이고 모여서 공부하는 공간이 바로 마을이라고 봤지요. 공부와 삶이 일치되는 공간을 만들고자 마을이라는 열린 커뮤니티가 필요했습니다.”
이곳에서는 공부 뿐 아니라 누구라도 모여 같이 밥을 해먹고 집에 있는 물건들을 가져와 선물하고, 또 그것을 고맙게 받아 회원들과 즐겁게 나누는 열린 공동체다.
“누군가를 위해서, 무엇을 위한 강좌가 아니가 그저 하고 싶은 공부를 해보자는 장(場)이예요. 자칫 공부만 하다보면 머리만 커지게 되는데 삶을 일치시키는 공부를 같이 하려고 텃밭 일구고 밥도 같이 해먹으며 생활을 나누고 있지요.”

인문학으로 자유를 얻다
이곳에서 열리는 강좌나 세미나가 입소문을 타면서 차츰 마을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고등학생과 대학생은 물론 50을 넘긴 중년의 아버지들까지 공부를 하고 싶고, 하려는 이들로 강좌의 빈자리는 매번 찾기 어렵다.
“간혹 논어니, 불교학이니 너무 어려운 공부를 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저희가 지향하는 공부는 단순한 교양 강좌가 아니에요. 공부하는 과정은 수고의 과정입니다.”
공부를 통해 삶을 이해하고 종국에는 바꿔야 하는 임무가 있는데 쉽게 하는 공부로는 삶이 바뀔 수는 없다는 것이 문탁 회원들의 지론이다.
그 중에는 “나이 먹어 새로 하는 공부의 참 맛을 느끼고 있다”는 나선미(50·동천동)씨도 포함된다. “저녁에 의역학과 시경 강좌, 낮엔 일본어 공부와 논어 세미나 등에 참여 하다 보니 그야말로 공부의 연속이에요. 하지만 이 나이에 뭔가에 몰두해 공부를 한다는 것이 새삼 즐겁더라고요.”
나 씨는 40대 이후 자연스레 공부의 필요성과 욕구가 생겼다고 말한다. “단순한 지식, 교양이 아니라 내 삶을 어떻게 바꾸어 볼 것인지, 또 그런 고민을 함께 나눌 사람들이 필요한 거죠. 그래서 시작한 게 ‘앎과 삶’이라는 세미나예요. 나 혼자만의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시야를 조금씩 넓히는 작업, 아무 고민 없이 살 수도 있지만 이것저것 공부하다 보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를 그야말로 알게 되는 거죠. 그래서 조금은 자유로워지는 겁니다.”
논어를 공부하며 문구 하나하나에 담긴 선현들의 지혜와 이치를 새록새록 되새기게 된다는 이들. “단순한 취미 활동이 아니라 공부가 삶으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과제입니다. 사치나 유행처럼 혹은 스펙 갖추듯 교양 수준을 높이는 과정으로 공부하는 것은 경계하고 있습니다. 공부를 통해 나를 바꾸고 삶을 변화시켜 자유로워지는 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한편 인문학 마을 공동체 문탁에서는 토요일 오전 10시 논어 강독이, 일요일 저녁 6시에는 불교 세미나를, 평일엔 시경(수), 종교 인류학(목), 과학과 인문학(금) 강좌가 각각 진행된다. 모든 강좌는 6강에 8만원, 8강에 11만원으로 무척이나 착하다. 월 2만원을 내면 원하는 세미나는 제한 없이 참여 가능하며 누구라도 찾아가 공부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철학아 놀자, 다시 보는 고전 읽기
마르크스, 라캉, 지젝, 데리다, 랑시에르…각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들의 비판적 사유를 살펴보는 인문학 강좌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분당구 야탑동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진행되는 인문학 강좌에는 고전 다시 읽기부터 서양미술사 강좌까지 인문학을 통해 비판적 감수성과 시대를 통찰하는 강좌가 호응을 얻고 있다. 한겨레 문화센터 분당점(031-8018-0906)의 강유미 팀장은 “사회생활이나 직장 생활을 오래 하신 분들 중에 예전에 학교 다닐 때 못한 공부의 즐거움을 새로 발견하고 오시는 분들이 많다”고 전한다. 무엇을 목적으로 하기보다 공부 자체에 즐거움을 발견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
주로는 35~45세 층의 여성들이 인문학 강좌에 참여율이 높은 편이다. 오전에는 주부들이 오후에는 퇴근 후 직장인들의 발길이 인문학 강좌로 모여들고 있다는 것.
이처럼 지역의 인문학 강좌나 세미나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국대학교 교양학부 윤승준 교수는 “기성세대들은 산업시대에 필요한 수단으로 공부를 했고 또 미처 돌아볼 여유도 없이 앞만 보고 내달려왔다”며 “이제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 성장 단계에 접어들어 나를 돌아보고, 삶을 생각하고, 주변을 돌아보려는 갈증과 욕구가 인문학이라는 출구를 통해 열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강유미 팀장도 “어느 정도 연배가 있는 분들이 수강 참여가 높고 연초가 되면 인문학 강좌 등록률이 높아지는 것도 이런 특징과 무관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권미영 리포터 myk31@paran.com

성남아트센터 어린이 인문학 강좌 
엄마 아빠와 함께 듣는 인문학, 즐거움 2배! 

성남문화재단이 여름방학을 맞아 지역 어린이들의 인문학적 사고를 기르고 보다 ‘멋진 나’를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강좌를 진행한다.
오는 8월 완공되는 문화집회시설 ‘큐브 플라자’ 개관을 기념하여 큐브플라자 내 미디어 홀에서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듣는 ‘어린이 인문학특강’을 마련한 것.
8월 17일(화)과 20일(금) 두 차례 진행되는 이번 어린이 인문학특강은 각각 ‘사랑 이야기’와 ‘경제이야기’라는 큰 주제로 진행된다. 17일 ‘사랑이야기’에서는 다른 친구에 대한 감정과 관계를 통해 내 마음속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아보고, 알 수 없는 미래가 주는 희망이 만든 유토피아를 그려보며 꿈을 키워본다.
‘경제이야기’를 다루는 2부에서는 모두가 바라는 부자가 되는 방법을 생각해보고, 학원을 안 가고 놀거나 늦게까지 게임을 하거나 텔레비전을 보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나는 정말 자유롭지 못한 것인지, 진정한 자유는 무엇인지를 부모님과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갖는다.
어린이 인문학 특강 수강신청은 성남아트센터 홈페이지(www.snart.or.kr)에서 선착순으로 접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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