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36호 입사장 '최교준'

지역내일 2010-07-19 (수정 2010-07-19 오전 9:33:19)

9만 번 인고의 망치질로 차가운 금속에 꽃을 피우다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나지막한 야산 밑,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36호 입사장 최교준 선생(60세)의 작업장이 있다. 입사장(入絲匠)이란 2000년 전부터 차가운 금속에 꽃을 피워온 우리 전통 금속공예의 장인을 일컫는 호칭. 입사란 금속기물이나 장신구의 표면에 가느다란 실처럼 뽑아낸 금사(金絲)나 은사(銀絲), 혹은 동사(銅絲)를 다양한 문양으로 입히는 작업. 작품 하나를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대략 9만 번의 망치질을 해야 하고, 은사 금사를 뽑아내는 단순작업을 수없이 반복해야 하는 인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덤벙대고 흘리고 실수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으며 배운 입사장의 길, 하나의 작품을 탄생시키기까지 누구와의 말 섞음도 허용치 않고 正心으로 수없이 반복적으로 망치질을 하는 작업에 익숙해서일까.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단답형, 과묵하기 그지없는 선생과의 인터뷰는 난항(?)이었다.


무형문화재 78호 고 이학응 선생에게서 입사기법 배워
40여 년이 넘는 긴 세월, 수행과도 같은 반복적인 망치질 끝에 차가운 금속에 생명을 불어넣는 인고의 작업. 힘들지 않느냐는 말에 “그렇죠. 뭐. 재미있어요.” 역시 느릿느릿 단답형의 답이 돌아온다. 하지만 재미있기만 했었을까. 선생도 전통을 이어온 수많은 장인들처럼 어렵고 힘든 길을 걸어오기는 마찬가지. 경남 의령이 고향인 선생은 1967년 17세에 어머니의 권유로 이웃에 살던 윤희복 선생에게서 금속공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윤희복 선생은 자물통, 담배합 등 고미술품 수리하는 일을 하던 이. 스승 밑에서 금속공예품의 제작기법이나 입사기법에 관한 간접경험을 쌓았던 선생은 군 제대 후, 무형문화재 78호 고 이학응 선생으로부터 6개월간 입사기법에 대해 사사받았다. “기술이 있으면 먹고 살 수는 있다.”는 어른의 생각을 따라 들어선 금속공예의 길, 20살 무렵 부모를 모두 여윈 선생은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막내 동생까지 여러 명의 형제를 부양해야 하는 가장이 됐다. 막내 장인의 빠듯한 수입으로 근근이 살기도 힘들었던 시절.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손재주는 좀 있었던 것 같다.”는 선생은 이학응 선생으로부터 입사기법을 사사받은 후 전통전승공예대전에 ‘담배함’등을 출품, 입상하면서 본격적으로 입사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입사기법은 끼움입사와 쪼음입사로 크게 나눌 수 잇는데 선생이 주로 활용하는 기술은 ‘쪼음입사’. 입사하고자 하는 바탕 금속의 표면에 정을 사용해 일정한 질감을 쪼아 홈을 만든 후 그 위에 금사 또는 은사를 눌러 붙여 문양을 표현하는 쪼음기법은 끼움입사보다 더 섬세하고 정교한 문양표현이 가능하다고 한다.


멈추고 휠 부분을 정확히 알아야 하는 입사과정, 침묵수행과도 같은 외길을 걸어오다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기까지 9만 번의 망치질이 필요하다는 압사, 전통금속공예가로서 그동안 많은 작품을 제작해 온 선생은 1984년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고 1987년과 1993년에 문화재위원장상, 문화재 관리국장상을 수상하는 등 일찍이 주변으로부터 인정받아 왔으며, 1989년과 1994년 2번의 개인전을 통해 입사장으로서의 입지를 굳혀 왔다. “덤벙대거나 실수를 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금이나 은 동 같은 귀한 소재를 쓰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침착하고 끈기 있게 덤벼들어야만 차분하게 원하는 문양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입사과정은 작업이라기보다 수행에 가깝다. 우선 금사나 은사 등 문양을 새겨 넣게 위한 금속 사를 만드는 작업도 문양을 쪼아넣는 작업 못지않다. 수없는 망치질로 금속을 두드려 가늘게 만든 금속 사는 40개의 구멍이 뚫린 판을 통해 원하는 굵기로 늘리는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 최소 0.27mm굵기의 금속사를 빼낼 수 있는 구멍에 끼워 당기는 작업만 30~40번, 다음은 감탕작업이 이어진다. 만들고자 하는 기물에 속을 채울 감탕은 송진과 황토, 그리고 윤활유 역할을 하는 들기름을 섞어 만든다. 이렇게 감탕작업을 해야 수많은 망치질에도 기물이 찌그러지거나 상하는 일이 없단다. 이렇게 감탕작업을 끝낸 기물과 금속사는 이제 본격적으로 지난한 접합과정에 들어간다. 기물에 너무 세제도 여리지도 않은 적당한 세기의 망치질로 홈을 낸 후 여기에 가느다란 금속 사를 쪼아 넣어 무늬를 새겨 넣는 입사 작업. 세지도 여리지도 않은 적당한 세기의 망치질이나 멈추고 휠 부분을 정확히 알아야 하는 날선 감각 등 입사 작업은 고도의 기술과 경험이 필요한 작업이다. “마음이 흐트러지면 망치질도 흐트러진다.”는 스승의 가르침을 지켜온 최교준 선생, 그는 전통의 향기와 품격을 지켜내기 위해 장인의 자존심 하나로 묵묵히 40여 년 외길을 걸어왔다.


말 안장의 발걸이 ‘호등, 통일신라시대의 문양 재현 등 입사공예에 큰 획을 긋다
선생이 입사작업 중 각별히 애정을 느끼는 것은 말안장의 발걸이 ‘호등, 통일신라시대의 문양이다. 세상으로부터 큰 관심을 받지도 못하고 수요도 극히 제한되어 있어 생계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선생은 전통문양의 재현을 위해 수없이 박물관을 찾아 연구하고 복원하는 일에 매진해왔다. 우리 전통 입사기법을 지금까지 어어 온 선생이 유일하게 기계의 利器로 이용하는 것은 완성된 작품에 옻칠을 하고 숯가루로 연마과정을 거친 후 건조하는 과정을 담당하는 건조기가 유일하다. 그렇게 입사과정은 긴 인고의 작업도 작업이지만 동시에 창의성과 예술적 감각 또한 필수. 묵언수행이라 할 정도로 반복적인 9만 번의 망치질과 뛰어난 창의성과 디자인 감각을 요구하는 작업, 힘든 작업임에도 경제적인 대가도 크지 않은 고단한 작업에 오랫동안 몰두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선생의 옆에서 30여 년 인생의 동반자로 살아온 부인은 “평소 과묵하기만한 남편이 완성된 작품 앞에서만큼은 뿌듯해하고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고 할 정도로 대단한 희열, 한 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보람 때문이다. 1984년 9월 국가 지정 문화재 보수 기능자 지정 701호로 지정, 2006년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36호 입사장으로 지정된 최교준 장인. 이제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작품을 하면서 살고 싶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은 끈기가 필요하고 어려운 일이라 배우려는 이들이 많지 않다는 것. 현재 용미리 노반(?盤)금속입사공방에서 10년 째 일하고 있는 제자가 유일한 후계자다. 그동안 갈고 닦은 모든 기술을 제자에게 전수하고 있는 선생의 꿈은 “사라져가는 우리 고유의 기술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입사에 관한 모든 것을 기록한 책을 남기는 것”. 입사공예가 소수의 장인들에게만 한정된 전통이 아니라 현대금속공예가들을 위한 살아있는 전통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한다. 
이난숙 리포터 success6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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