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가 고민이세요? 언제든 불러만 주세요
등록회원 1만 3천 명에 달하는 시니어들의 문화 여가 공간이자 용인시 노인복지의 허브로 자리 잡은 용인시노인복지관.
얼마 전 이곳에 이색적인 시니어 봉사활동기관이 문을 열었다. 해마다 방문이 늘고 있는 외국인들에게 용인의 문화유산과 관광지를 알리고 전달할 목적으로 문을 열게 된 실버 통역센터가 그곳.
영어, 일어, 중국어를 구사하는 40여명의 시니어들이 통역을 위한 전반적인 업무를 배웠고 수료를 끝낸 후 본격적인 활동을 눈앞에 두고 있다. 면면을 따져보자면 화려하고 지난한 인생의 파노라마를 거쳐 왔을 이들 봉사자들 중, 유독 남다른 관심을 모으는 이들이 있다.
중국어 통역 봉사자로 활동 중인 조철태(71·마평동), 이명(71·삼가동)씨가 그 주인공. 중국에서 60평생을 살다 조국으로 건너온 후, 귀화 한지 채 10년이 안된 따끈한 한국인이다.
일제시대 중국으로 건너가 60년을 살았지만 마음은 늘 고향에 있어
“고향은 경남 밀양이에요. 누님이 5명이 있는데 아들이 없어 부모님이 만주로 건너가 저를 낳으셨지요. 그곳에서 오랜 세월 거주했고 한국에 있는 친척들하고 왕래하다가 안사람과 딸을 데리고 2001년에 한국에 오게 됐어요. 어려서 한인 마을에 모여 살아서 한국어, 중국어 모두 같이 써왔지요.”(조철태)
그런가 하면 이명씨는 경북 성주가 고향, 첫돌을 막 지나 부모님 등에 업혀 중국으로 건너간 경우다.
“당시만 해도 일제 탄압시기였거든. 부친께서 독립 운동가들의 뒷바라지를 하다 쫓기는 신세가 되자 가족들을 데리고 중국으로 건너간 거지. 아버님 평생 유언이 ‘좋은 때가 되면 고향에 가서 살아라’였거든. 그렇게 65년을 중국 땅에서 살다가 2005년, 아버님 유지를 받들기 위해 그리고 뿌리를 찾기 위해 안사람과 같이 고국으로 돌아왔지요.”(이명)
60여 년을 중국 땅에 거주하면서도 마음은 조국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했다는 이명·조철태씨. 가장 안타까운 기억은 6,25전쟁이 일어나 조국의 산하가 폐허가 됐을 때라고.
조국으로 건너와 힘겨운 뿌리 찾기
“중국은 사회주의 사회고 한국은 자본주의 사회니 체제가 다르잖아요. 양국이 수교를 맺은 지가 얼마 안돼요. 그전까지는 부친께서 조국에 누님들이 있다는 말씀을 안 하셨어요. 당시만 해도 냉전 논리가 적용되던 시기라 제가 고초를 당할까 염려되셨던 거죠. 임종을 앞두고 겨우 누님들이 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름도, 나이도, 어디에 사는지도 끝내 말씀을 못하고 가셨죠.”(조철태)
이후 고국으로 건너와 뿌리 찾기를 시작한 이 씨는 방송국 ‘사람 찾기 프로그램’으로도 찾을 수 없었던 누님들을 석 달 동안 대한민국 방방곳곳을 누벼 결국 찾아내게 된다. 그렇게 누님들과 한국 국적을 다시 찾은 이 씨는 조국에 와서 남은여생을 보낼 수 있음에 아직도 가슴이 벅차다.
“65살이 되어 조국으로 건너왔으니 남들은 다 늙어서 조국을 찾은 이유가 뭐냐고 묻지만 어려서부터 내 고향은 한국이라는 생각이 강했어요. 그렇게 다시 찾은 한국은 중국에 비해 여러모로 살기가 좋아요.” 지금 다시 중국에 돌아가 살라 하면 도저히 못 살 정도로 이제는 한국 땅과 문화에 푹 빠져 있다는 이명씨.
남은여생은 조국을 위해 봉사하며 살고파
그렇게 60평생을 돌아와 고국에 뿌리를 내린 이명·조철태씨는 용인시민으로서의 자긍심 또한 남다르다. 그중 두 사람이 단연 으뜸으로 꼽는 것은 용인시노인복지관. 가히 노인들의 천국이라 말할 수 있을 만큼 여가활동과 편의 시설이 갖춰져 있다고.
“복지관 통역 센터에 중국어 수료자는 10명인데 아마 우리만큼 중국어에 능통한 사람은 없을 걸. 60평생을 중국에서 살아왔으니 오죽하겠나. 이제 우리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봉사하는 즐거움으로 살아야죠.”
그렇게 경찰서에 구금된 중국인 피의자 통역을 맡기도 하고, 더러는 용인시 평생 학습센터 중국어 강사로 활동하면서 지역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두 사람.
하반기에는 통역 센터의 활동이 더욱 많아질 거란 기대감으로 공부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특히 문학적 감수성과 의욕이 높은 이명씨는 시, 자서전 쓰기 등 다양한 문예 활동과 인문학 공부에 열의를 높이고 있다. 앞으로의 활동계획을 묻자 나직한 미소로 화답하는 초로의 두 사람.
“조선 족으로 살아서 한국말은 잘 하지만 외래어 활용이 높은 한국말을 100% 이해하기는 아직 어려워요. 또 문학적 언어가 주는 다양한 표현도 공부를 해보니 재미가 있더라구. 이제 남은여생은 공부하고 봉사하며 조국을 위해 살아야지. 늙은 우리들에게 삶의 터전을 제공해 준 조국에 바칠 수 있는 건 모두 꺼내 좋고 가야지. 하하하”
권미영 리포터 myk31@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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