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정동에서 가장 소박한 음식점 한 곳을 나는 안다. ‘왕큰잔치국수’집. 그 집에 처음 갔을 때 한옥을 그대로 이용해 천장 서까래가 보이는 것이 좋았다. 처마 쪽을 이어만든 공간까지 포함해 손님 서른 명만 넘으면 꽉 차는 집이다.
간판이 ‘왕큰잔치국수’라 잔치국수가 주 메뉴 같지만, 실제 이 집에 와서 ‘잔치국수’를 주문하는 사람은 눈 씻고 봐도 안 보인다. 이 집에 자주 오는 손님들은 대부분 들어오자마자 자리를 잡아놓고 집 중앙에 있는 전기밥솥으로 향한다. 밥솥 옆에 쌓아둔 양은그릇에 보리쌀이 반쯤 섞인 밥을 한 두 주걱 담고 다시 그 이웃에 있는 반찬코너에 가서 갖가지 반찬을 고루 담는다. 밥 위에 얹어오기도 하고 칸칸이 구분된 멜라민 찬기에 듬뿍 담아오기도 하고.... 이 집에서는 음식남기지 않는 사람을 좋아하니까 밥과 찬은 딱 먹을 수 있을 만큼만 떠 올 것. 밥과 찬을 상에 갖다놓은 뒤 다시 밥솥 옆 국솥에 가서 국을 떠오면 된다.
보리밥에 호박볶음 생미역무침 무채 시래기무침 버섯볶음 열무겉절이 등등 10여가지나 되는 나물을 넣고 고추장을 넣고 슥슥 비비면 마치 새벽부터 들에서 일하고 온 일군처럼 허기가 진다. 보리밥에 각종 나물, 재래식의 구수한 된장국, 이 지극히 소박한 메뉴의 이름은 ‘왕큰보리밥세트’다.
보리밥을 먹다보면 주인아주머니가 자리마다 와서 ‘솔’톤의 상냥한 목소리로 “국수는 잔치국수 할 건지 비빔국수로 할 건지” 묻는다. 보리밥에 국수까지? 추가비용은 걱정할 것 없다. 보리밥세트가 아닌가. 국수의 양은 한 두세 젓가락 정도니까 겁내지 말고 시킬것. 더 먹고 싶으면 더 달라고 하면 된다.
며칠 전, 두 번째로 이 집에 갔던 날은 아욱국이 일품이었다. 집에서 직접 담근 된장으로 만든 장 특유의 구수하고 시골스러우면서도 깔끔한 맛에 아욱의 향기가 듬뿍 배인 그 아욱국이라니!
‘왕큰잔치국수’는 어릴 적 살던 시골 고향집이나, 초여름날 마루에 앉아 양은그릇에 보리밥과 열무김치 넣고 비벼먹던 추억의 메뉴가 생각날 때 가고싶어지는 집이다. 그래서일까,좀 이른 점심시간에 갔는데도 벌써 밥솥앞이며 반찬대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집안이 좁아 대여섯명만 줄을 서있어도 복작거린다. 그래도 그런 과정이 재미있고, 소박한 메뉴지만 푸짐하게 잘 먹은 기분이 든다. 메뉴는 왕큰보리밥세트 6천원, 왕큰국수 5천원, 왕큰 만두한판 4천원이다. 나는 아직 이집 만두는 먹어보지 못했다. 갈 때마다 푸짐한 나물과 보리밥이 유혹하기 때문이다. 꽃우물길로 들어가다가 첫번째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앞쪽에 간판이 보인다. 일요일은 쉰다.
문의 031-405-8684
박순태 리포터 atasi2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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