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고도를 따라 교역을 하던 상인 조직을 마방이라고 했다.
방(?)이란 중국어로 ‘조직’을 말한다. 현대 중국어에서도 서양식 갱단이나 주먹 조직을 중국어로는 방파(?派)라고 부른다.
수십 마리의 말과 말잡이가 조직이 되어 함께 이동하니 마방(馬?)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이들은 차와 말 교역 이외에도 비싼 약재나 금·은, 버섯류 등을 싣고 다니며 장사를 했다.
최근까지도 활동해오던 마방 조직은 이제 새로운 도로 건설과 자동차의 발달로 대부분 사라져 흔적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
삼대를 이곳에서 살았다는 주어씨는 이곳을 지나가던 몇 십명의 간마런(말잡이)과 수십마리의 말 행렬을 회상하며 봄철에 가장 많았으나 사철 끊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또 ‘차마고도’란 말도 요즘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지 과거에는 이곳 언덕길을 얼타이포(二臺坡), 빵주포(幇助坡), 포로야커우(破落?口)등의 이름으로 부르던 길이라고 알려준다.
옛 지명들은 모두가 혼자는 건너기 어려운 ‘험준한 계곡과 언덕’이라는 의미다.
마방이 조직이 되어 움직여야 하는 이유를 확인하는 셈이 되었다.
과거에 우리의 고갯길도 위험한 도적과 짐승들 때문에 고개 아래 주막에서 사람을 모아 함께 고갯길을 넘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당시 마방들이 값비싼 물건들을 싣고 다니다보니 도적들도 많았단다.
평균 4천m 고도의 험난한 지형과 도적이 들끓던 차마고도는 목숨을 담보로 한 장삿길 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산 속 깊은 마을에서 그래도 목돈을 쥘 수 있는 일은 마방 조직에 끼거나 이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일 이었을 것이다.
주오씨는 자신이 어렸을 때는 소금이 아주 귀했고 당시에는 마방들이 이곳에서 가까운 모헤이(墨黑)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버마에 가져가 팔아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한다.
하산 길에 만난 리(李)씨 아주머니는 등에 망태와 농약 탱크를 지고 있는데 자세히 보니 망태의 걸이가 어깨에 걸린 것이 아니라 머리에 얹혀있다.
목 아프게 왜 머리에 끈을 얹었느냐고 물으니 자신은 한족(漢族)이지만 여기서는 소수민족 방식으로 짐을 메는 것이 편하다고 답을 한다.
한족과 소수민족의 문화가 충돌 없이 한데 섞여 있는 모습이 흥미롭다.
필자가 멀리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왔다고 소개하니 반색을 하며 한사코 차 한 잔을 대접하겠다고 산 속의 작은 집으로 이끈다.
차 농사가 주된 일이다 보니 대접할 것이 차밖에 없다며 수줍어 한다.
그저 한두 마지기 남짓할까? 손바닥만한 천수답을 아래 두고 시골집 마당에는 검은 토종돼지가 반갑게 꼬리를 친다.
이곳에선 돼지를 우리네 시골집의 개처럼 우리에 가두지 않고 밖으로 돌아다니도록 풀어서 키운다.
제가 알아서 주워 먹고 다니고 저녁이면 제 집으로 기어든다. 옥수수가 내 걸린 황토흙벽과 나무판자로 만들어진 고옥(古屋)이 정겹다.
집 옆엔 구재(救災)라 쓰인 파란 텐트가 자리하고 있다. 물어보니 지난 지진 때 동네에 집들이 많이 무너져 정부가 보내준 임시 막사란다.
이곳은 사천성에 가까워 지진이 많은 지역이다. 하지만 근 이백년 동안 지진에 끄떡없는 집이라고 집 자랑을하며 소박한 유리잔에 따뜻한 차 한 잔을 내놓는다.
뽀얀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따뜻한 차 한 잔에는 대대로 차마고도 길가에서 살아왔고 또 살아가는 이들의 구수한 이야기와 훈훈한 인정이 우러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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