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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리 북한산 자락 라이브 카페 ‘중광어록’
수유리 북한산 자락 라이브 카페 ‘중광어록’
걸레스님 그림 감상하며
라이브 음악에 빠져볼까요~
중광 미공개 그림, 친필 전시... 흥 오르면 손님들도 노래 한가락
수유리의 밤은 바야흐로 망년회 시즌이었다. 유흥가 네온사인이 반짝대고 술집, 나이트 앞에는 연신 사람들이 북적댔다.
우리 일행이 탄 차 역시 망년회 장소를 찾아가는 길. 번화한 밤거리를 지나쳐 북한산 쪽으로 향했다. 4·19 사거리를 조금 지나면 있다고 했는데 목적지는 눈에 띄지 않는다. 결국 주인장에게 전화를 했다. 목소리가 걸쭉하다.
“어, 국립묘지 입구까지 올라가면 안 되는데…. 길가에 나가 있을 테니 내려오세요.”
불법 유턴을 감행해 내려오다 보니 정말 한 사내가 지키고 섰다. 모자를 눌러쓰고 키가 훤칠하다. 뒷골목에 차를 대고 그를 따라 갔다. 오늘의 목적지인 라이브 카페 ‘중광어록’이 자그만 간판을 걸고 감미로운 노래 선율을 거리로 쏟아내고 있다.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니 입구부터 범상치 않다. 사방이 온통 낙서다. 하얀 한지 위에, 광택 나는 벽지 위에도 글씨와 그림이 뒤섞였다. 심지어 문짝에도 빨간 색연필로 마구 휘갈겨 쓴 듯한 세로 낙서가 있다. 그 사이사이에 나름 얌전하게(?) 채색이 된 동양화 액자도 걸려 있다.
‘나는 걸레. 반은 미친 듯 반은 성한 듯 사는 게다’, ‘나를 한국의 피카소라고 했는데 피카소보다 내가 낫다’ 등등 수많은 어록과 기행을 남긴 그 유명한 중광의 작품들이다. 걸레 스님으로 더 알려진 그의 이름은 익히 들은 바 있고 그의 그림이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본 건 처음이라 한참을 신기해 두리번거렸다. 값어치도 만만치 않을 이 귀한 작품들이 왜 이 북한산 골짜기 수유리의 지하 카페에 무더기로 걸려있는 걸까. 분명 굽이굽이 숨은 사연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중광스님이 저희 아버님과 절친했어요. 형님처럼 따랐지요. 중광스님이 2년 동안 양평에 있는 저희 집에 기거하면서 그린 작품들입니다. 얼마 전에 집을 팔면서 스님의 흔적들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세상에 내놓기로 했구요.”
중광어록 사장 조은상 씨의 아버지는 스님이자 시인으로 이름이 높은 조영암 씨. 15세에 출가해 20세 때 동학사 강주 취임, 23세 때 동국대의 전신인 혜화전문 불교 문학과를 졸업했다. 저서로 옛 선사들의 시를 번역한 ‘선시총서’, 자신의 투병일기와 치료 체험을 담은 ‘당뇨 완치 일기’ 등이 있고 말년에는 퇴옹 성철 큰스님으로부터 도를 깨우쳤다는 증명과 인가를 받기도 한 분이다.
“유년 시절 정릉에 살 때 이중섭, 박인환, 오상순 등 당대의 시인, 문인들과 술을 드시고 교류하는 것을 바로 곁에서 보고 자랐어요. 양평 시골 집에 중광스님이 머물 때는 하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우리 집을 ‘걸레 스님 집’이라고 부를 정도였습니다.”
그런 문화적 분위기 속에서 자란 그 역시 예술가 풍모를 풍긴다. 희끗한 머리에 모자를 깊이 눌러쓴 그의 눈빛은 언뜻 소설가 김훈을 연상시킨다. 그는 ‘어리던 사랑’ 등을 작곡하고 음반 취입을 준비 중인 가수 겸 작곡가다. 기타 연주도 수준급이다. 수유리에 가게를 낸 것은 그의 산 사랑 때문이다. 소문난 등산광이라 가게 때문에 피곤해도 매일같이 산을 탄다고.
손님들은 30~50대가 주를 이룬다. 지난 3월 카페 문을 연 뒤 중광의 그림에 관심을 갖은 많은 화가들이 다녀갔고, 우연히 들어왔다 이곳의 정체를 알게 된 사람들은 재미있어 한단다.
출연진들의 노래와 연주를 듣다가 흥이 오르면 누구라도 마이크를 잡고 반주에 맞춰 노래를 멋지게 뽑을 수 있다. 부담 없는 호프집 가격으로 술과 안주를 즐길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지만 주인장이 내뿜는 ''포스''와 중광의 향취는 결코 만만하지 않다.
(그날 밤 우리 일행의 망년회 비는 4만 3천원. 아줌마 셋이서 노래도 부르고 골뱅이 안주에 맥주잔도 기울이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물론 돌아올 때는 대리운전을 불렀다.)
허윤주 리포터 krara@paran.com
중광(重光)은 누구?
승려이자 화가. 1934년 제주도에서 태어나 26세에 경상남도 양산의 통도사로 출가했으나 불교의 계율에 얽매이지 않는 기행 때문에 1979년 승적을 박탈당했다. ''걸레스님'', ''미치광이 중''을 자처하며 파격으로 일관된 삶을 살았다. 독보적인 선화의 세계를 구축해 명성을 얻었으며 말년에는 달마도 그리기에 열중했다. 미국 뉴욕 록펠러재단, 샌프란시스코 동양박물관, 영국 대영박물관 등에 그림이 소장되어 있다. 2000년 ‘중광 달마전-괜히 왔다 간다''를 마지막으로 2002년 3월 9일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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