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년이 시작되고 한 달이 훌쩍 넘었다. 꽃샘추위도 저만치 물러나고 지천으로 꽃이 피는 4월. 봄바람이 불어야 할 엄마들의 마음이 뒤숭숭하다. 학기가 시작되고 새로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 엄마까지 적응되지 않는 일이 한 둘이 아니다.
아이가 학교에 다니는 건지 엄마가 학교에 다니는 건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는 엄마도 있다. 들리는 무성한 소문들,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도 걱정이다. 아이만 믿고 내버려 두기엔 말 많고 탈 많은 학교생활, 모르는 게 약이던 시절은 지났다.
세상은 많이 변했는데 학교는 어디까지 변했을까? 공교육이 우뚝 서는 그 중심에 과연 누가 있어야 할지 의문이다. 구심점 없이 편의와 이기심으로 출렁이는 요즘의 세태에 우리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
학교에 대한 즐거운 기억, 따뜻한 추억이 평생의 대인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과연 요즘 학교 풍경은 따뜻한가? 자기 자식만 생각하는 학부모, 도덕성과 효율성보다 관례를 앞세우는 학교행정, 어른들을 신뢰하지 못 하는 학생들.
불만이다 못해 황당한 이야기 속에서 우리 교육의 현주소를 찾아본다.
김부경·김영희·박성진·이수정 리포터 thebluemail@hanmail.net
식당 만들고 이동배식대 교체하면 될 텐데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을 둔 이 모(40)씨는 2년째 아들 학급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말이 임원이지 한 반의 80% 정도의 학부모가 임원이라 그 이름이 무색하다.
그러다보니 급식도 봉사활동이라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싶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학부모들의 급식당번을 자제해 달라는데 실상 담임선생님은 부탁하는 형편이라 마음이 불편하단다. 아예 오지를 말게 하든가. 선생님은 오라고 눈치주고. 사정상 참여 못하는 엄마들은 그 또한 심한 눈치 속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학교에 식당도 없고 또 이동배식대는 무겁고 높아 아이들 스스로 하기엔 무리죠. 말로만 엄마들의 학교 출입을 자제할 것이 아니라 식당을 만들든지 이동배식대라도 아이들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눈높이에 맞춰서 교체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도둑봉사를 하는 학부모의 애매한 처지를 학교는 아는지 모르는지?
봉사활동 참여 하는 문제로, 엄마들끼리 서로 스트레스 받는 걸 아세요?
학교 참관수업에 갔다가 얼떨결에 대표 엄마가 된 임 모(38)씨는 요즘 머리가 아프다. 아이가 학교에 다니는 건지 자신이 다니는 건지 모르겠다고 하소연이다.
“요즘은 엄마들이 학교에서 할 일이 너무 많아요. 누가 이렇게 법을 만들어 놓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실상 봉사활동을 자청하던 엄마들이 등교 교통정리는 은근히 이리 빼고 저리 빼는 모습에 화가 난 임씨. 내 아이 중심의 묘한 엄마들의 심리가 고스란히 보였다고 한다.
“엄마들끼리 서로 스트레스 받을 필요 있나요? 학교에서 활동을 할 땐 엄마가 일하는 아이들을 고려해서 조심해야 하죠. 가능하면 엄마들은 빠지고 학교와 선생님, 아이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학교가 돼야하지 않을까요?”
학교에 돈이 그렇게 없나?
딸아이가 중학교 1학년이 된 강 모(44)씨는 학교에 탈의실이 없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요즘 중학교도 거의 남녀공학으로 바뀌고 있는데, 사춘기 아이들이 남녀 구분 없이 교실에서 체육복을 갈아입도록 방치하는 학교의 태도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고 한다.
선생님 휴게실엔 침대까지 두면서 아이들 탈의실 하나 만들지 못 할 만큼 학교에 돈이 없나?
“탈의실까지 아니라도 교실 뒤에 커튼 설치만 해줘도 좋을 것 같아요. 학생들의 편의를 위해 쉽게 개선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요?”
엄마 오지 못 한 아이에겐 상처만 주는 참관수업
초등 3학년과 1년생 자녀를 둔 박 모(38·)씨는 학교 행사와 엄마들 모임에 참석하느라 최근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3월 한 달 동안 수업참관, 학부모 대상 강연, 임원엄마들 모임 등 한 주에 두 번 정도는 아이 학교 일로 바빴어요. 특히 1학년 아이는 엄마 손 갈 일이 많아 학교에서 오라는 경우도 많고 엄마들 모임도 잦아 특히 직장 다니는 엄마들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혹시 아이가 기죽거나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는 거죠. 사정이 있어 참관 수업에 못 간 어느 엄마는 그날 저녁 다른 엄마들 다 왔는데 엄마는 왜 안 왔냐고 따지며 울어대는 딸 아이를 보며 마음이 무척 아팠다고 하더군요.”
참관수업 날은 결국 임원, 대표 뽑는 날이라는 박씨. 인터넷 세상인데, 동영상으로 촬영해서 학교게시판에 올려주는 것을 고려하는 것은 어떨까?
“정말 어이없다~” 본보기가 되어야 할 학교가···
얼마 전 딸아이가 다니는 해운대의 모 초등학교 학생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은 정 모(39)씨. 그날 학교 학부모 총회가 있어 평소에 즐기던 밝은색 옷을 입지 않고 검은 옷을 챙겨 입고 갔다고 한다. 그런데 어처구니없는 풍경에 할 말을 잃었다고 한다.
“사망소식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학부모 총회에 밴드연주에 트로트까지 열창하는 모습에 정말 마음이 아프더군요.”
미리 준비되었겠지만 당연히 취소해야 할 행사를 강행하는 학교의 태도! 학교의 주인은 과연 누구인지? 아이들이 그 풍경에서 무엇을 배울 지 걱정이라는 정씨는 긴 한숨을 쉰다.
“정말 서글프다~” 유모차까지 밀고 가야하는 급식당번
초등학교 2학년과 2세 아이를 둔 김 모(36)씨는 둘째가 어려 당번에서 빼주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했다. 하지만 학교 분위기는 냉정했다. 유모차에 태워올 정도가 되면 충분히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엄마도 있기 때문에 빠지기에 심한 눈치가 보였다고. 그나마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연락에 고마워(?)했단다.
물론 아이의 학교생활이 궁금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엄마들은 당번 일에 크게 부담을 갖지 않는다. 내 아이가 먹을 밥이고 내 아이가 쓰는 교실에 봉사하는 일인데 기꺼운 마음으로 참여하는 엄마들도 많다.
하지만 모든 엄마들이 같은 마음은 아니다. 사람들이 모이면 좋은 얘기도 오고가지만 의견 차이로 사이가 소원해지는 경우도 종종 있어 불편함을 호소하는 엄마들도 나온다. 또 본인의 일보다 학교 일을 우선해야 할 때도 있어 아이가 1학년이면 엄마도 1학년이라며 불만 섞인 목소리도 들린다. 아이를 맡겼다는 이유로 엄마까지 학교에 매이는 현실이 씁쓸하다.
무슨 준비물이 이렇게 많아?
지난 겨울방학 서울에서 이사 온 서 모(41)씨는 초등학교 3학년 딸 아이 학교 준비물을 보고 깜짝 놀랐다. 교과서와 관련된 학습물품은 학교에서 제공하는 것으로 알고 있던 서씨는 도화지부터 풀까지 거의 매일 잔잔한 수업준비물에 의아했다고 한다.
“교육청에서 제공되는 물품이 뭔지 궁금하네요. 아이들이 공평하고 편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학부모를 초대하던 학교운동회는 사라져
지난 해 첫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고 운동회에 참석한 이 모(40)씨는 예전의 운동회와 다른 모습에 놀랐다고 한다.
“예전에는 선생님과 학생들이 만든 운동회를 학부모들이 구경했죠. 그런데 요즘은 학부모들이 도우미가 되어 행사를 하고 교실마다 엄마들로 넘치더군요. 그런 분위기에서 엄마가 오지 않는 아이들, 그냥 구경 간 부모까지 소외되는 기분이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 현실에서 학부모가 없으면 학교 운영이 불가능한지 의문이라는 이씨. 다른 선진국에서도 학교 운영을 그렇게 하는지 궁금하다고 한다.
이씨는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고 말한다. 가장 빛나야 할 사람은 학생이고 그 뒤에 선생님이 밀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내가 청소부야~” 엄마들 학교 출입금지 확실히 해야
올해 초등생이 된 둘째아이를 둔 박 모(40)씨는 학기 초부터 걱정이 앞섰단다. 첫째아이 1학년 때 임원을 하면서 여러 가지 느낀 점이 많기 때문이다.
1학년 때는 임원을 하는 게 좋다는 주위 선배 엄마들의 조언에 따라 하긴 했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청소하러 학교에 가보면 자신의 아이는 좋아하지만 직장 때문에 엄마가 못 오는 다른 아이를 대할 땐 미안하기도 했다고. 그렇다고 안 가자니 다른 엄마들이 가니까 우리 아이가 기죽을 것 같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박씨처럼 아예 학교에서 엄마들을 못 오게 하면 좋겠다는 학부모가 태반인 걸 학교는 모르는 걸까?
그리고 학교 대청소 하는 날이라고 당연히 엄마들 몫으로 돌리고 청소부 대하듯 하는 학교의 태도도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학교도 변하고 엄마들도 변해야
초등 2학년 딸을 둔 최 모(37)씨는 우리나라 엄마들의 문제점을 꼬집는다.
아이가 입학을 하자마자 그 다음 날부터 청소하러 학교에 가는 엄마, 아이에 대해 뭐가 그렇게도 궁금한 게 많은 지 수시로 학교에 상담하러 가는 엄마, 아이가 선생님께 혼나고 온 날이나 친구와 다툼이나 문제가 있었던 날은 당장 학교에 전화하는 엄마들이 있다. 학교 일에 너무 나서거나 자신의 아이만 생각하는 우리나라 엄마들에게 문제가 많다는 의견이다.
“엄마들이 변하지 않는 한 학교와 학부모의 관계는 개선되지 않는다고 봐요. 엄마들 모임 또한 아이의 학교생활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자신의 아이 자랑 하기 바쁘고 다른 아이나 엄마를 험담하는 경우가 많은데 엄마들이 한 번 더 생각하고 행동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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