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으로의 여행은 언제나 특별한 느낌을 동반한다. 오래전 기억의 흔적들을 찾아가는 내게 윈난으로 가는 비행기는 공간이동과 함께 시간을 날아가는 타임머신이다. 그저 몇 시간 앉아 있으면 구름의 남쪽(운남) 땅, 당현종과 양귀비의 애끓는 사랑의 땅, 제갈공명이 바람과 구름을 부르던 과거의 땅에 내린다. 물론 이천칠백 살을 먹은 신비의 차나무와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길이라는 차마고도 옛길이 남아있는 땅이다. 필자의 이번 중국행은 ‘차의 고향을 찾아가는’ 과거로의 여행이지만 중국 비행기는 한국 비행기에서도 체험해 보지 못한 최신 좌석으로 채워져 있다. 공상과학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우주선 내부에서 보일 듯한 첨단 좌석이다. 좌석마다 액정 텔레비전이 있고 좌석 손잡이의 버튼을 누르니 서서히 움직여 완전히 일자로 젖혀진다. 중국 국적의 비행기라고 해서 불안에 떨었건만 의외가 아닐 수 없다. 정말로 중국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새벽에 도착한 쿤밍 비행장은 지방 도시의 비행장답게 아담하다. 국제선이 뜨고 내리기는 하지만 중국 내륙 깊숙한 곳에 위치한 도시고 보니 외국인의 발길이 많지 않은 듯싶다. 비행기는 벌써 착륙 했지만 예정보다 도착시간이 일렀는지 출입국 직원이 도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내에서 한참을 대기한다. 트랙을 내려 들어간 출입국장에는 졸린 얼굴 떡진 머리의 무뚝뚝한 중국인들이 퉁명스레 여권에 도장을 쾅쾅 찍어댄다.
쿤밍 시내는 생각보다 공항에서 매우 가깝다. 택시로 10분정도 달리니 중심가다. 하지만 쿤밍은 위난성의 성도로 6백만 인구의 대도시다. 쿤밍의 아침은 그 이름만큼이나 밝고 활기차다. 쿤밍은 춘성(春城)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다. 위도 상으로는 남쪽이지만 해발 1850m의 고도 덕에 일 년 사시사철이 봄 날씨다. 아열대 기후지역이어서 먹거리도 풍부하다. 현대적 건물의 쿤밍역 앞에는 활기가 넘친다. 버스 뿐 아니라 자전거와 오토바이의 행렬이 분주한 아침을 맞는다. 차의 고장답게 길가엔 차 도매상점들이 한 집 건너 한집으로 줄을 이어 있다.
예전에 이곳에 타이 족의 나라 남조국(南詔國)과 대리국(大理國)이 있었다 한다. 13세기부터 중국 중앙 정부의 지배가 시작됐고, 청나라 때인 17세기 말 윈난성으로 편입되었다. 이모작의 벼농사와 다양한 과일과 곡물, 열대작물이 재배된다. 물론 윈난은 차와 담배 유명한 지역이다. 중국 사람치고 윈난에서 나는 차를 맛보지 않은 사람이 없고 애연가라면 윈남 담배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 없다. 새로 정비된 듯 정리된 시장은 풍요롭다. 옥수수, 토마토, 고추, 버섯, 피망, 생강, 땅콩, 가지, 부추, 샹차이(고소)등 채소는 싱싱하고 탐스럽다. 이름 모를 아열대성 야채들도 보이지만 마늘, 오이, 호박, 배추, 갓 등 익숙한 작물들은 잠시 한국의 시장에 온 듯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물건들은 막대 저울에 달아서 판다. 추가 달린 막대저울에 근을 달며 실랑이를 하는 상인과 손님의 대화가 정겹다. 이곳의 한 근은 고기나 야채나 똑같이 500그램이다.
번화한 시내를 대충 둘러보고는 서둘러 보이차로 잘 알려진 푸얼시행 버스에 오른다. 이번 여행의 주 목적지는 푸얼이다. 푸얼은 보이의 중국 발음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곳의 차가 유명하다보니 지명이 아예 차 이름이 된 것이다. 일곱 시간 걸리는 침대 버스다. 말이 침대차지 내부는 그야말로 닭장이다. 앉으면 머리가 천정에 닿고 옆으로는 철제 난간이 올라와 있어 관 속에 누워있는 느낌이다. 꼼짝달싹하기 어려운 좁은 공간에서 어떻게 일곱 시간을 버틸 지 걱정이 태산인데 중국인 승객들은 즐겁기만 하다. 숨이 탁탁 막히는 좁은 공간에 반듯하게 누워 땅거미 깔리는 윈난의 들녘을 한없이 바라보다보니 걱정했던 마음은 어디가고 내 몸도 어느덧 버스와 하나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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