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남 1녀의 자식을 두고 있습니다. 그 중 첫째가 아들이고, 그 아들 녀석이 지난 2월 8일, 공부 때문에 ‘조금 늦은’ 군대를 갔습니다. 아들과 함께 가고 싶은 엄마의 애틋한 마음을 접고 이른 새벽 시외버스를 태워서 논산훈련소로 보냈습니다. 때문에 요즘은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젊은 군인들만 보아도 아들을 보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서늘하답니다.
지난주에는 국립춘천박물관에서 기획전시하고 있는 <차마고도의 삶과 예술> 전시회를 다녀왔습니다. 그때 춘천박물관에서 아들 또래의 군인들을 만났습니다. 군인들은 부대장님의 배려로 국립춘천박물관 관람을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들 생각이 나서 이제 갓 훈련소에서 퇴소한 것 같은 군기가 바짝 든 이등병들을 붙잡고 주책바가지 엄마처럼 이런저런 물음을 이어갔습니다.
군대 간 아들을 둔 엄마의 당연한 궁금증 중에 한 가지를 무리지어 있는 이등병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군대에 들어와서 무엇이 제일 생각나느냐, 무엇을 가장 하고 싶으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잠시 망설임도 없이 앳되어 보이는 키가 큰 신병이,
“<1박 2일>과 <무한도전>을 못 보는 것이 제일 안타깝죠.”
라고 했습니다. 옆에 있던 다른 이등병들도 동의한다는 얼굴 표정들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의아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놀랍기도 하였습니다. 저도 ‘1박 2일’과 ‘무한도전’을 어쩌다 가끔씩 보곤 했지만 프로그램의 가치를 솔직히 제대로 평가해주는 편이 아니었습니다. 도대체 누가 시간을 낭비하면서 저걸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우리 방송의 수준을 폄하시키는 프로그램쯤으로 여기기도 하였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아마도 이 프로그램 시청의 주 대상자는 초·중학생이거나 기껏해야 고등학교 1, 2학년 정도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상 연령대의 사람들에겐 눈높이가 안 맞을 것으로 판단한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대학생이면서 군입대한 연령대의 젊은이들이 한결같이 ‘1박 2일’과 ‘무한도전’의 열렬한 시청자라는 것에 많이 놀랐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1박 2일’과 ‘무한도전’의 인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를 고민도 해보았습니다. 기성세대인 저의 고정관념으로 보면 ‘1박 2일’과 ‘무한도전’을 시청하며 희희낙락하는 젊은이가 한심해 보였다는 표현이 맞을 것입니다. 한참 공부하고 세상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젊은 나이에 ‘텔레비전의 귀중한 전파를 낭비하며 말장난만 해대는 나이든 청년들의 교양 없는 소동’에 환호하는 젊은이가 좋아 보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1박 2일’과 ‘무한도전’에 빠져 있는 젊은 세대를 저와 같은 기성세대는 불안하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들이 과연 우리의 대를 이어 이 험난한 세상을 잘 이끌어 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고서 말입니다.
하지만 제가 지니고 있는 젊은이들을 향한 이런 의구심의 밑바닥에는 젊은 세대를 마치 기성세대를 위한 ‘후계자’쯤으로 이해하려는 기본 시각이 깔려 있었다고 봅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기성세대가 가장 만족해하는 젊은 세대의 바람직한 모습은 ‘믿음직한 후계자’입니다. 학교가 학생에게, 부모가 자식에게, 스승이 제자에게 바라는 것이 바로 이러한 것이라고 봅니다.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을 믿음직하고 성실한 후계자가 될 가능성을 평가의 잣대로 삼음으로써, 이 기준에 미흡하다고 생각될 때에는 불안하고 실망감을 표시합니다. ‘1박 2일’과 ‘무한도전’에 심취하는 젊은 세대를 보는 저의 반응도 이런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처럼 이렇게 고리타분하게 젊은 세대를 바라보는 시각과는 확연히 다른 새로운 관점이 있습니다. 이른바 젊은이들이 기성세대에 적응되어야 하고 길들여져야 하는 세대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독자적인 스타일로 새로운 기성세대를 창출하고 조성해 가야 할 세대라고 보는 것이 그러한 관점입니다.
이미 이 방향으로 청소년 세대, 즉 젊은이들의 문화와 의식은 바뀌고 있는 것임이 확실합니다. 최근 한국의 저력을 세계만방에 떨치고 있는 젊은이들의 동계올림픽 소식도 그렇고, 젊은 연예인들이 한류열풍을 일으키며 동아시아를 석권하고 있는 10대의 패션, 가요, 영상 등의 문화가 그러한 증거입니다.
그것이야 말로 젊은이들 속에서 자라고 있는 새로운 기성세대의 전조입니다. 그것은 기성세대를 무비판적으로 답습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모양이 결코 아닙니다. 어쩌면 저와 같은 기성세대들만이 이 흐름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을 따름이라고 봅니다. 신세대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의 고집스런 명령을 받는 세대가 아니라, 현재의 기성세대와는 다른 대안적 삶을 준비하는 급변하는 세계 속에 살고 있는 존재입니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고 개인적 성취감보다 조국과 민족을 앞세우던 기성세대의 맹목적인 국가우선주의보다, 당당히 자기 자신의 성취감을 먼저 밝히는 지금의 젊은이들이 더 인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에 군대에 와서도 ‘1박 2일’과 ‘무한도전’에 열광하는 젊은 세대를 우리는 이런 시대정신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요.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