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이 고리타분하고 따분하다는 것도 옛말. 최근에는 열정과 실험정신으로 똘똘 뭉친 젊은 국악인들을 중심으로 국악의 세계화에 앞장서기 위한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새 시대를 이끌 국악계의 재목으로 주목받으며, 2009년 강원미래인재 문화예술분야에 선정된 이웅(27)씨를 만나봤다.
고등학교 시절 뒤늦게 ‘거문고’의 매력에 빠져
2008년 국립국악원 주최 ‘온나라 국악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면서 국악계의 재목으로 떠오른 이웅(27)씨. 그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와 누나의 가야금 연주 소리를 듣고 자랐다. 하지만 악기를 배우는 것에 흥미를 갖지 못했던 그는 고등학교 시절 뒤늦게 취미로 시작한 거문고의 매력에 푹 빠지고 말았다. “처음 거문고를 만져보았을 때 다른 악기와는 달랐습니다. 중·저음의 묵직함과 술대로 줄을 쳐낼 때의 둔탁함, 그리고 왼손으로 여음을 정형해내는 섬세한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라며 그는 거문고를 일찍 접하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고 했다.
어머니는 ‘나의 가장 큰 스승’
국악고나 예고생들과 비교해 너무 늦게 시작한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그는 거문고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대신 ‘연습실 귀신’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지독히 연습에 몰두했다. 직접 사혈을 하면서까지 연습에 매달린 그는 손 모양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굳은살이 박혀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그는 악기 외적인 교육은 받기 힘들었고, 지방에서 서울로 레슨을 받으러 가야 하는 상황 역시 열악했다. 그래서였을까. 현재 재학 중인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들어가기까지 결코 쉽지는 길을 걸어야만했다.
특히 재수를 실패한 뒤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었다는 그는 “그 때 어머니가 없었다면 포기 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조금씩 쌓이는 눈에 나무가 휘고 부러진다며 저의 노력을 높이 평가해주셨죠”라고 했다. 이렇게 그에게 어머니는 때로는 힘을 낼 수 있도록 다독여주고 때로는 자극제 역할을 하며 더 정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가장 큰 스승. 지금도 연습을 조금만 게을리 하면 바로 알아차린다는 그는 “어머니가 없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것”이라며 어머니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국악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연주가’가 되고 싶어
이웅씨에게 거문고란 무엇일까. 그는 “묵묵히 제 옆을 지켜주는 가족 같기도 하고, 터울 없이 지내는 오래된 친구 같기도 하고, 또 애인 같기도 합니다”라며 스스로도 이런 질문을 종종 해본다고 했다.
자신이 어렵게 공부했던 만큼 후학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그는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대학원) 과정 입학을 앞두고 있다. 또, 고서적을 공부하기 위해 우선 한자와 외국어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면서 동양권의 여러 음악들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가고 싶다는 의지도 밝혔다.
“폭넓게 공부하고 많은 경험들을 쌓아 그것을 바탕으로 세계 속에 국악을 알리는 연주자가 되고 싶다”는 젊은 연주가 이웅. 언젠가 그의 연주가 세계무대에 울려 퍼지길 기대해본다.
현정희 리포터 imhjh@hanmail.net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