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이 만난 사람-청건축토목한원·청건축설계사무소 정선주 건축사
건축인로서의 삶, 만족스럽고 보람
건축토목학원 90% 합격률 자랑, 집고쳐주기 봉사활동
“건축사는 건축의 꽃이라고도 불리기도 하지만 반면에 야근이 많아 우스갯소리로 3D 업종이라고도 하죠. 하지만 내가 그린 도면이 입체화 되었을 때 그 희열과 성취감은 직접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 없어요. 출산의 고통이 있어도 또 아이를 낳는 산모의 마음이라고 할까요? 건물을 설계한 건축사에게는 건물이 아니라 하나의 작품으로 가슴에 남아요.”
문정중학교(삼천동)를 설계한 건축사이자 대전권 건축사 합격자 90% 이상 배출(2009년 수강생 126명 중 94명 합격, 최종합격 32명)한 청건축토목학원 원장, 여성봉사단체 소롭티미스트 회원 등 1역 3역을 야무지고도 똑부러지게 해 내고 있 청건축설계사무소 정선주(42) 소장의 말이다.
중간제목-어려운 이웃에게 집 지어주고 싶어 선택한 건축사의 길
그에게 뭇 사람들이 남성들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건축사의 길을 걷게 된 이유를 물었다.
“고등학교 시절 고아원, 장애인 시설 등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어려운 환경속에서 지내는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됐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어린 마음에 막연히 어려운 이웃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건축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고 3시기에 들어서면서 건축사를 목표로 정하고 공부를 하게 됐어요. 또 많은 분들이 건축사는 보통 남성들의 영역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지만 건축의 다양한 분야 중 설계부분은 여성들의 섬세하고 꼼꼼한 성격이 장점으로 작용해 여성들이 도전하기에 적합한 분야라고 생각해요. 요즘 육아문제로 인해 다니던 직장을 퇴직할 지 많은 고민하게 되는데 건축사는 재택근무도 가능해 육아기간 동안에도 근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이 후 사회복귀에 공백이 없다는 장점도 있죠.”
정 소장이 건축사로 진로를 정하고 그 길을 가는데 가장 큰 힘이 되어 주신 분이 바로 그의 정신적 지주이자 든든한 버팀목인 아버지였다.
“아버지께서는 재촉하기보다 느긋하게 기다려 주시고 제 미래가능성에 대해 높이 평가해 주셨어요. 대학입시에서 한 번의 실패가 있었지만 아버지께서는 실망한 표정보다는 넌 잘 할 수 있을 거라며 믿고 격려해 주셨어요.”
그가 내미는 20여년이 지난 빛바랜 일기장 속에서 제도에 필요한 T자와 도면을 가지고 있는 그의 미래의 모습과 실패를 딛고 와신상담하며 반드시 해 낼 수 있을 거라는 자기암시 글 등을 통해 어린 나이지만 건축사로의 꿈이 얼마나 확고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그 다음해 정 소장은 그가 원하는 건축학과에 입학 할 수 있었고 졸업할 때는 장학금까지 받을 정도로 우수한 성적표와 과에서 10명 남짓 합격한 건축기사 자격증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중간제목-2009년 현재 대전시험장의 합격자 90% 배출 or 제가 곁은 어려움, 학원 수강생들은 겪지 말아야죠.(둘 중 하나로 중간제목)
대학을 졸업하고 그가 원하는 건축사 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설계사무소에서 5년간의 실무경험이 필요했다. 실무경험을 쌓는 기간에 육아문제와 IMF 등으로 인해 그의 꿈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기도 했지만 학창시절 희망했던 그의 꿈과 목표를 생각하며 공부의지를 다시금 다질 수 있었다고.
어려운 상황들을 이겨내며 어렵게 실무경험을 쌓고 2003년 건축사 시험에 도전하게 된다.
“당시 대전에는 건축사 시험을 대비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진 학원이 없어 서울을 오르내리며 공부를 했어요. 첫 차를 타고 서울에 올라가 밤 8~9시까지 공부를 하고 집에 도착하면 밤 12시가 되곤 했죠. 시간이 없으니 학원 강의 듣기에 급급했고 수강생들이 모여 진행하는 스터디에도 참여할 수 없었어요. 자연히 정보교환도 어렵고 자꾸만 뒤처지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2년여의 시간을 보내면서 1교시와 2교시 시험에 합격한 정 소장은 2006년 3교시 합격을 앞두고 대전에 서울과 같은 교육시스템으로 ‘청건축토목학원’을 개원하게 된다.
“제가 서울을 오가며 공부를 해보니 시간이 없어 수강생들과 정보교류를 할 수 없었던 점이 큰 어려움으로 지목됐어요. 그래서 서울과 지방의 우수학원과 연계, 전국 유명강사 초빙 및 최신장비와 운영시스템을 갖추고 학원을 개원했죠. 강의 내용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홈페이지에 올려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언제든지 무료로 들을 수 있도록 했고, 주중에는 개인 또는 수강생들끼리 스터디 할 수 있도록 교실을 개방했어요. 지방시스템으로는 비효율적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제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되밟게 하고 싶지 않았고 건축사 합격의 지름길을 알고 주고 싶어 과감히 투자했어요.”
정 소장의 선택은 옳았다. 다음 해 청건축학원의 학습방법으로 그는 3교시 최종합격의 기쁨을 누렸고, 학원설립 3년 만에 2009년 현재 대전시험장의 합격자 90% 배출, 인원대비 전국 최고의 합격률을 자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 소장은 “대전에서의 높은 합격률에 만족하고 싶지 않다. 앞으로 청건축토목학원이 중부권 최고의 학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중간제목-“사랑의 집고치기 통해 희망을 선물하고 싶어요”
1인 다역을 해가며 바쁜 일정을 소화해 내고 있지만 정 소장의 마음 한 구석은 왠지 허전했다고.
“제가 건축사가 되고자 했던 첫 번째 이유가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었는데 그 꿈을 실현하지 못해서 그런지 늘 허전하더라고요. 그래서 소롭티미스티(뉴대전클럽)란 봉사단체에 가입해 봉사를 시작했고 제 직업의 전문성을 살려 어려운 이웃들에게 희망을 선물할 수 있는 ‘사랑의 집고치기’분야를 담당하게 됐어요.”
사랑의 집 고치기는 건전한 직업을 가지고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며 꿋꿋하게 살아가는 여성가장이 수혜 대상이 된다.
“복지관이나 주민센터를 통해 추천을 받아 현장조사를 나가면 수혜자가 도움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아요. 대개 월세나 전세로 거주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대적인 수리를 하게 되면 살기는 편하지만 머지않아 집주인이 월세나 전세금을 올리거나 집을 비워달라는 소리를 들을까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죠.”
이렇듯 어렵게 수혜대상자 선정해 2009년에는 모두 네 가정이 집수리의 기쁨을 누렸다.
세 가정은 가장 시급해 하는 부분만 수리하고, 한 가정은 병석에 있는 남편과 4자녀를 위해 식당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의 집으로 구조물만 남기고 리모델링 수준으로 집수리를 했다.
“집수리를 통해 그 가정에 편안하고 안락한 주거환경 뿐 아니라 희망을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또한 도움을 받은 가정의 아이가 성장해 누군가에게 받은 사랑을 다시 나누어 줄 줄 아는 ‘나눔전도사’가 되면 더 이상 바랄게 없죠.”
사랑의 집고치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뉴대전 소롭티미스트 회원이 개최하는 바자회(2년에 1회)를 통해 마련한다. 바자회에서 회원들이 직접 만든 천연비누와 집에 다려 만든 양념간장과 양념고추장, 생활에 필요한 각종 물품을 저렴하게 구매해 판매하며 기금을 조성했다. 그 기금으로 2009년 한 해 사랑의 집고치기 봉사와 대동 무지개 마을 나눔 봉사(벽화그리기), 파랑새 아동지역센터 도서기증(2500권), 노숙자 식사 봉사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쳤다.
정 소장은 “앞으로도 더 많은 어려운 이웃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그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며 “소롭티미스트 봉사활동에 비회원들의 도움도 많았다. 앞으로 그 비회원들도 봉사에 같이 참여할 수 있도록 중간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싶다”고 전했다.
문의 : 471-5554
김진숙 리포터 kjs997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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