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부부 5쌍의 생생 토크
“부부, 영원한 동지인가 웬수인가”
은퇴 후 철 든 남편과 취미ㆍ운동 함께 하며 맞는 제 2의 신혼기
지역내일
2009-12-04
(수정 2009-12-06 오후 10:28:55)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날아라 펭귄’에서 은퇴한 남편들이 모여 넋두리하는 장면이 나온다. 젖은 낙엽처럼 아내에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남편들. 황혼이혼을 당하지 않으려면 유교사상에 찌든 남편도 앞치마를 매고 설거지를 하며 아내의 쇼핑도우미를 자청해야 한다는 자조 섞인 대화는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다. 우리사회의 주역이었던 베이비붐세대가 은퇴시점을 맞았다. 고도의 산업경제를 일구느라 숨 돌릴 틈, 뒤돌아볼 여유도 없이 살아온 이들이 은퇴를 맞으며 위기를 맞고 있다. 가정이라는 또 다른 세계에 편입해 적응해야 하는 과제가 남겨진 것. 반대로 주부들은 퇴직해 집에 있는 남편 때문에 행동의 자유도, 마음의 여유도 빼앗겼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심지어 남편 얼굴만 봐도 속이 불편하고 목소리나 발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두근거리며 우울증, 불면증을 겪는다고 하소연한다. 일명 ‘은퇴 남편 증후군’이 신조어로 떠오르며 주부 대화의 주요 소재가 되고 있다. 이렇듯 은퇴는 가정의 울타리를 흔들어 재편성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이 과정을 무사히 넘기면 제2의 신혼기를 맞게 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황혼이혼을 겪거나 따로국밥처럼 함께 살되 남보다 못한 부부가 되는 등 고통이 따라온다. 통계청이 집계한 평균 퇴직 연령은 53세인데 비해 평균 수명은 80세에 이르고 있어 남은 시간을 어떻게 준비하고 보내느냐가 노년의 삶의 질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니어 라이프는 은퇴를 맞아 한번 쯤 이런 고민과 갈등으로 크고 작은 고비를 겪었던 시니어 부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한다. 다소 투박하지만 나름의 방식과 해법으로 갈등을 극복하고 제2의 신혼을 맞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는 어쩌면 전문가의 해법보다 더 진솔한 메시지를 전달해주리라 기대한다. 4회에 걸친 ‘부부이야기’ 첫 번째 순서는 시니어 부부 5쌍이 생생하게 전해주는 은퇴 후 달라진 부부 이야기이다.
권미영 리포터 myk31@paran.com
<글 싣는 순서>
Ⅰ 시니어 부부 5쌍의 생생 토크. ‘부부, 영원한 동지인가 웬수인가’
Ⅱ 부부가 함께 하는 취미, 스포츠, 동호회 활동
Ⅲ 크리스마스, 노부부를 위한 특별 이벤트
Ⅳ 부부 공동의 사회 참여 (봉사), 즐거움도 2배
<참가부부>
1. 박동석·김희숙 부부(64·61살, 용인 죽전동)
2. 김정규·전영자 부부(71·67살, 분당 수내동)
3. 이원직·강원동 부부(64·62살, 용인 죽전동)
4. 김광수·홍종희 부부(73·71살, 용인 보정동)
5. 김일식·김정자 부부(70·67살, 분당 정자동)
# 은퇴 후 남편이 달라졌어요.
김정자 - 결혼 후 시어머니 모시고 시동생과 함께 살다보니 아무래도 힘든 점이 많았어요. 그런데 남편은 본인이 좋아하는 취미활동만 열심히 하는 거예요. 테니스다, 음악이다 혼자만 즐기니 은근히 약이 오르더라고요. 옆에서 같이 챙겨주고 도와주면 좋으련만… 그런데 나이 60을 넘기니까 철(?)이 들더니 바뀌더라고요.
김일식 - 맞아요. 퇴직하고 나니까 가족은 염두 없이 너무 혼자만 산 것 같다는 자책이 일더군요. 60넘어 은퇴하고 나니 자식들 출가하고 ‘이 세상이 나 혼자만 사는 곳이 아니구나’를 깨달았어요. 내가 경상도 남잔데 ‘서울 사람인 집 사람이 무던히도 참고 살았겠구나’ 생각하니 불현듯 눈물이 났어요. 요새는 어떻게 도와줄까 생각하며 살고 있지요. 청소, 설거지는 기본이고요. 평소에 밥도 많이 하는 편이에요. 하하. 내가 65살 되었을 때 집사람이 서예 작품 활동으로 바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요즘은 내가 많이 도와줘요.
김정자 - 남편한테 서운한 게 많았죠. 그만큼 기대도 많아 실망도 컸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 ‘나를 찾아야겠구나, 내가 할 수 있는 나만의 것이 있어야 남편한테로 가는 기대와 에너지를 돌릴 수 있겠구나’ 싶어 취미를 갖기 시작했어요. 몰두할 수 있는 취미가 생기니 정신 건강에 좋고 요즘은 그 취미가 작품 활동으로 연계돼 아주 바쁘게 보내고 있답니다.
이원직 - 젊어서 남자들이 가족을 위해 돈도 벌고 모든 짐을 짊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퇴직 후 되돌아보니 집을 지키고 건사해 온 건 집사람의 공이 크더군요. 늦게 깨달은 거죠. 그런데 이제는 집사람이 얼굴 보기 어려울 정도로 바빠요. 그동안 살림하고 아이들 키우느라 정신없어 못해본 것, 다 해본다 생각하면 공평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역할이 바뀌었어요. 설거지, 청소, 밥하기는 아주 기본적으로 내 일이 됐어요. 하하.
김일식 - 맞아요. 은퇴는 남편의 역할을 돌아보는 전환점이 되는 것 같아요.
전영자 - 남편이 은퇴하고 시간이 많으니까 항상 같이 다녀요. 친구들은 남편 떼어놓고 다니라고 하는데 저는 같이 다니니까 좋더라고요. 2004년 유방암에 걸려 수술 받고 얼마 전 5년 완치 판정 받았어요. 완치되기까지 남편이 정성으로 돌봐줬지요. 요즘도 새벽에 토마토 사과 바나나 갈아 마시라고 내놓고, 쌀도 씻어놓고, 일어나면 끊여먹을 수 있게 준비까지 다 해놓고 운동가는 남편이니 안 예뻐해 줄 수가 없지요. 늙으면 부부밖에 남는 게 없더라고요. 남편이 워낙 저한테 해준 게 많아 지금은 죽을 때까지 저도 은혜를 갚고 가는 심정으로 남편과 모든 걸 함께하며 살고 있어요.
김정자 - 결혼해서 참 많이 외로웠어요. 가족들 위해 고생하고 있는데 남편은 음악 듣는 취미에만 빠져있으니 그게 참 미웠는데 지나보니 남편 때문에 음악회 구경은 실컷 했네요. 세종문화회관은 내 집처럼 다녔으니까요. 아침에 눈만 뜨면 음악 듣는 생활을 하다 보니 아이들 정서에도 좋고 음악이 집안을 화목하게 만든 동력이 된 것 같아요.
홍종희 - 우리는 부부 교사에요. 남편이 맏아들도 아닌데 돌아가실 때까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어요. 제가 잘해서라기보다 남편이 워낙 자상해서 많이 도와줬어요. 여자들이 보통 자식 위주로 사는데 저는 남편 위주로 줄곧 살았던 이유가 워낙 자상하고 스킨십도 많이 해주는 좋은 남편이기 때문이에요. 덕분에 남편이 좋아하는 테니스, 음악을 안 되는 몸으로 따라다니며 배우고 익혔지요. 그래서인지 지금도 부부 금슬은 소문이 날 정도로 좋아요. 제가 외출하고 돌아오는 시간에 베란다 창문 열고 손 흔들어 반겨주고 하트 날려주는 남편이에요. TV 광고처럼 아침에 눈 뜨면 그저 행복하답니다.
이원직 - 종교가 갖는 역할도 큰 것 같아요. 언제부턴가 아내가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하기 시작했어요. 하루에 10번 이상 듣다보니 몸에서 저절로 사랑이 뿜어져 나오더군요. 아이들 부를 때도 “사랑하는 아무개야” 하고 꼭 넣어서 불러줘요. 그러면 샘물 솟듯 사랑이 계속 길어져 나오는 것 같아서 아주 좋습니다.
강원동 - 남편이 은퇴하고 나니 30년 이상 가족을 위해 살았던 것이 고맙고 감사하단 마음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해줬어요. 그러다보니 진짜 사랑하는 마음이 커지더라고요. 지금은 남편과 결혼한 게 너무 좋고 행복하단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아요.
전영자 - 남편이 직업군인으로 퇴역하니 연금이 나오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연금카드를 떡하니 손에 쥐여 주더라고요. 얼마나 고맙던지.
김정규 - 내가 퇴직하기 전까지 집안 살림이며 아이들 건사며 혼자 다했잖아요. 그래서 그 보답으로 연금 카드를 줬지요. 나는 집세가 나오는 게 있어서 그걸로 충당이 되고요. 하하. 집사람이 66살에 유방암 판정을 받았는데 그 순간 앞이 캄캄하더라고요. 집사람 죽으면 그 나이에 새 장가를 갈 것도 아니고 막상 수술대에 오르는 것 보니 불쌍해서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집을 팔건 뭐를 팔건 살려줄 테니 걱정 말라”고 안심시켜 수술실로 보냈어요. 다행히 수술이 잘 끝났고 지금은 살아서 내옆에 있으니 그 보답으로 ‘무조건 잘 해줘야겠다’ 생각하며 지내요. 그런데 요즘은 집사람이 너무 제 옆에 달라붙어 있어 조금 귀찮기도 합니다. 하하.
박동석 - 우리 부부는 잘 싸워요. 제가 강원도에서 리조트를 운영하다보니 20년 넘게 아내와 떨어져 살았어요. 어쩌다 집에 가면 견우직녀 만나듯 서로 애틋한 게 아니라 서로 적응하느라 싸움부터 시작했죠. 아내는 아이들하고 힘든 것 풀어내고 싶어 하고 저는 집에 와서 편하게 쉬고 싶은데 그게 안 되니 싸우고 그런 식이었죠. 그래서 만나면 으르렁대고 그러다 차츰 적응될 만하면 또 헤어져 각자 자리로 돌아가야 되고, 그러자니 섭섭해서 헤어지기 전에 또 싸우고. 하하. 아침저녁으로 틈만 나면 싸우니까 아이들도 “지금까지 싸우는 부부는 우리 부모님밖에 없다”고 놀려댈 정도예요. 그래도 싸움도 일종의 사랑의 표현이라 생각하고 늘 티격태격합니다.
김희숙 - 부부가 같이 살면 언제든 대화가 가능한데 우리는 떨어져 있다 보니 갈등이 많았죠. 만나면 싸움부터 하고 헤어질 때도 싸우고 했는데 싸움도 사랑의 한 파트였는지 지금은 아파트에 소문난 잉꼬부부에요. 항상 같이 다니거든요. 남편이 저랑 떨어져 있다 보니 일찍 철(?)이 들어 집안일도 잘 도와주고 하니까 지금은 은퇴하고 같이 있는 시간이 너무 좋아요. 친구들은 은퇴한 남편이 졸졸 따라다녀 귀찮다고 하는데 저는 오히려 남편만 졸졸 따라다녀요. 제가 젖은 낙엽이죠.
박동석 - 맞아요. 어쩔 때는 너무 따라다녀 집사람이 귀찮을 때도 있다니까요. 하하. 김정규 - 컴퓨터 옆에 저와 집사람 일주일 스케줄 표 적어 붙여놓고 서로 확인하고 있어요. 같이 하는 시간을 많이 만들려고 하고 있지요. 김희숙 - 맞아요. 저도 남편이랑 스포츠댄스와 수영 같은 취미활동을 함께해요. 남편하고 떨어져 있다 보니 혼자 있는 시간에 나를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의미 있는 사회참여와 봉사를 해야겠다 싶어 시각장애인 녹음봉사를 하고 있어요. 그게 좋은 건 나이 들면 책을 잘 안 읽게 되는데 이 봉사하면서 책도 읽게 되고 또 누군가를 위해 내가 쓰임이 있겠구나 싶어 아주 좋아요.
김일식 - 제가 아는 지인은 자식들 출가시킬 무렵 이혼하더라고요. 자식보다 본인들의 행복이 더 중요한 것 보고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어요. 저는 이혼 생각은 해 본적이 없는데 혹시 아내가 나 싫다고 이혼하자고 하면 어쩌나 전전긍긍하고 살고 있어요. 주변에 보면 황혼 무렵 이혼당하는 노인이 많잖아요. 그렇게 안 되려면 아내 말 잘 들어야죠. 하하.
#행복하려면 건강 챙겨야, 사별이 제일 무서워.
김일식 - 부부가 행복하게 살려면 첫째가 건강이에요. 예전엔 운동을 그저 취미삼아 했는데 나이 먹고는 살기 위해서라도 운동은 필수예요. 집사람 몸이 안 좋아 어제도 응급실 갔다 왔는데 그럴 때마다 불안해요. 사별은 제일 안 좋은 거예요.
김정규 - 운동도 나이에 맞게 해야 돼요. 그리고 자기 정서에 맞는 운동이 필요하고요. 몸을 치료한다는 개념으로 운동을 해야지, 운동으로 몸을 혹사시켜서는 안돼요.
전영자 - 우리는 중앙공원 배드민턴 부부 동호회 회원이에요. 남편이 회장을 맡을 정도로 열심히 하고 있지요. 시나 구에서 주최하는 각종대회에 나가 금메달, 은메달은 우리 부부가 휩쓸어 온답니다. 그리고 스포츠댄스도 같이 하니까 부부 금슬에 좋아요. 1년 넘게 남편이랑 같이 배웠어요. 아침에 살짝 음악 틀어놓으면 어느 틈에 남편이 나와 같이 춤을 추지요. 그러면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한답니다.
박동석 - 강원도 스키리조트를 20년 넘게 운영해오며 느낀 점이 있어요. 수명이 길어지니까 아프지 않고 오래 사는
것이 삶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관건이더라고요. 저도 은퇴 후 수영도 배우고 아침저녁으로 탄천에 나가 MTB 자전거도 타면서 건강을 유지하고 있지요. 몸이 아프면 정말 아무것도 소용없어요. 요즘은 아내와 매일 수영을 같이하니까 더 좋아요.
김희숙 - 남편이 60 넘어서 수영을 배웠어요. 할머니들 틈에 끼어 수영배우고 지금은 저랑 같이 수영할 정도로 실력이 되니까 같이 다닐 수 있어 좋아요. 탄천에서 94살 어르신이 MTB 타는 걸 봤어요. ‘활기 있게 살기 위해선 운동이 절실하구나’를 느꼈고 특히 부부가 함께 운동하면 없던 정도 다시 생긴답니다.
김일식 - 저도 정년퇴직 후 10년간 헬스장에 다니면서 감기 때문에 누워 본적이 없어요. 자기가 좋아하는 운동 찾아 무조건 해야 해요. 이원직 - 부부 중에 한 사람이라도 아프거나 하면 경제적인 것은 둘째 치고 남은 배우자가 간병하고 묶여 있다 보니 삶 자체가 피폐해져요. 노년이 되면 자기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거동 못하는 배우자 돌보면서 얼마나 삶이 노곤하겠어요. 가족들 모두 힘들어지고. 그런 걸로 봐서는 아프기 전에 운동하고 건강 관리하는 것이 부부 행복의 첫째 조건이에요.
홍종희 - 등산을 좋아해서 교직 은퇴하고는 집 근처 산에 주일만 빼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르내렸어요. 384m 용마산을 그렇게 다니다 보니 어느 날 무릎 파열이 오더라고요. 운동도 나이에 맞게 해야 합니다.
김일식 - 젊어서는 내가 즐거워서 운동했는데 나이 들어선 건강 생각해서 운동을 하는 것으로 관점이 바뀌었어요. 나이에 맞는 운동으로 등산이 걷기로, 테니스가 탁구로 그렇게 바뀌었어요.
# 기나긴 세월, 특별한 선물과 이벤트로 감동양념 필요
홍종희 - 결혼 40년이 지났는데 지금까지 생일, 결혼기념일에는 남편이 꼭 손수 쓴 장문의 러브레터를 줘요. 제가 교직 퇴임하던 그해 생일에는 시계와 통장을 선물로 주더라고요. 남편도 교사로 재직했는데 월급 말고 과외로 받은 수당을 하나도 안 쓰고 모은 돈이었어요. 2000만원 정도였는데 통장 주면서 같이 여행가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남미 일대를 전부 여행하고 왔는데 너무 행복했어요. 그게 부부관계의 촉진제 역할을 톡톡히 해줬답니다.
김희숙 - 저희는 생일이나 기념일은 잊지 않도록 달력에 미리 동그라미 쳐놓고 공지도 해놓아 그냥 넘어가는 일은 없이 잘 챙겨줘요.
박동석 - 사돈부부가 가까이 사는데 우리 생일이나 사돈부부 생일에 같이 여행을 가곤해요. 평소에 얼마씩 갹출해서 돈을 모았다가 기념일에 같이 여행도 가고 평소엔 수영이나 운동도 같이 하니까 자식들도 좋고 우리도 좋더라고요. 뒷간과 사돈은 멀리 떨어져야 좋다고 하는데 우리는 이웃사촌으로 지내니 그것도 좋아요.
강원동 - 저도 얼마 전 결혼기념일에 남편이 백화점에서 비싼 목걸이를 선물해줬는데 너무 좋았어요.
김정자 - 어느 날 제 생일에 며느리가 생일상을 차려준대서 갔는데 남편이 오메가 시계를 근사하게 포장해 가지고 오더라고요. 속으로 며느리가 대견해서 주려나보다 했는데 제 선물로 주더라고요. 얼마나 좋고 감동했는지 사위들 다 보는 앞에서 남편한테 뽀뽀세례를 퍼부었어요. 사위가 물질에 약한 장모라고 흉을 보더라고요. 그래도 뭐 좋은걸 어떡해요. 하하.
취재·사진 권미영 리포터 myk31@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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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미영 리포터 myk31@paran.com
<글 싣는 순서>
Ⅰ 시니어 부부 5쌍의 생생 토크. ‘부부, 영원한 동지인가 웬수인가’
Ⅱ 부부가 함께 하는 취미, 스포츠, 동호회 활동
Ⅲ 크리스마스, 노부부를 위한 특별 이벤트
Ⅳ 부부 공동의 사회 참여 (봉사), 즐거움도 2배
<참가부부>
1. 박동석·김희숙 부부(64·61살, 용인 죽전동)
2. 김정규·전영자 부부(71·67살, 분당 수내동)
3. 이원직·강원동 부부(64·62살, 용인 죽전동)
4. 김광수·홍종희 부부(73·71살, 용인 보정동)
5. 김일식·김정자 부부(70·67살, 분당 정자동)
# 은퇴 후 남편이 달라졌어요.
김정자 - 결혼 후 시어머니 모시고 시동생과 함께 살다보니 아무래도 힘든 점이 많았어요. 그런데 남편은 본인이 좋아하는 취미활동만 열심히 하는 거예요. 테니스다, 음악이다 혼자만 즐기니 은근히 약이 오르더라고요. 옆에서 같이 챙겨주고 도와주면 좋으련만… 그런데 나이 60을 넘기니까 철(?)이 들더니 바뀌더라고요.
김일식 - 맞아요. 퇴직하고 나니까 가족은 염두 없이 너무 혼자만 산 것 같다는 자책이 일더군요. 60넘어 은퇴하고 나니 자식들 출가하고 ‘이 세상이 나 혼자만 사는 곳이 아니구나’를 깨달았어요. 내가 경상도 남잔데 ‘서울 사람인 집 사람이 무던히도 참고 살았겠구나’ 생각하니 불현듯 눈물이 났어요. 요새는 어떻게 도와줄까 생각하며 살고 있지요. 청소, 설거지는 기본이고요. 평소에 밥도 많이 하는 편이에요. 하하. 내가 65살 되었을 때 집사람이 서예 작품 활동으로 바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요즘은 내가 많이 도와줘요.
김정자 - 남편한테 서운한 게 많았죠. 그만큼 기대도 많아 실망도 컸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 ‘나를 찾아야겠구나, 내가 할 수 있는 나만의 것이 있어야 남편한테로 가는 기대와 에너지를 돌릴 수 있겠구나’ 싶어 취미를 갖기 시작했어요. 몰두할 수 있는 취미가 생기니 정신 건강에 좋고 요즘은 그 취미가 작품 활동으로 연계돼 아주 바쁘게 보내고 있답니다.
이원직 - 젊어서 남자들이 가족을 위해 돈도 벌고 모든 짐을 짊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퇴직 후 되돌아보니 집을 지키고 건사해 온 건 집사람의 공이 크더군요. 늦게 깨달은 거죠. 그런데 이제는 집사람이 얼굴 보기 어려울 정도로 바빠요. 그동안 살림하고 아이들 키우느라 정신없어 못해본 것, 다 해본다 생각하면 공평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역할이 바뀌었어요. 설거지, 청소, 밥하기는 아주 기본적으로 내 일이 됐어요. 하하.
김일식 - 맞아요. 은퇴는 남편의 역할을 돌아보는 전환점이 되는 것 같아요.
전영자 - 남편이 은퇴하고 시간이 많으니까 항상 같이 다녀요. 친구들은 남편 떼어놓고 다니라고 하는데 저는 같이 다니니까 좋더라고요. 2004년 유방암에 걸려 수술 받고 얼마 전 5년 완치 판정 받았어요. 완치되기까지 남편이 정성으로 돌봐줬지요. 요즘도 새벽에 토마토 사과 바나나 갈아 마시라고 내놓고, 쌀도 씻어놓고, 일어나면 끊여먹을 수 있게 준비까지 다 해놓고 운동가는 남편이니 안 예뻐해 줄 수가 없지요. 늙으면 부부밖에 남는 게 없더라고요. 남편이 워낙 저한테 해준 게 많아 지금은 죽을 때까지 저도 은혜를 갚고 가는 심정으로 남편과 모든 걸 함께하며 살고 있어요.
김정자 - 결혼해서 참 많이 외로웠어요. 가족들 위해 고생하고 있는데 남편은 음악 듣는 취미에만 빠져있으니 그게 참 미웠는데 지나보니 남편 때문에 음악회 구경은 실컷 했네요. 세종문화회관은 내 집처럼 다녔으니까요. 아침에 눈만 뜨면 음악 듣는 생활을 하다 보니 아이들 정서에도 좋고 음악이 집안을 화목하게 만든 동력이 된 것 같아요.
홍종희 - 우리는 부부 교사에요. 남편이 맏아들도 아닌데 돌아가실 때까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어요. 제가 잘해서라기보다 남편이 워낙 자상해서 많이 도와줬어요. 여자들이 보통 자식 위주로 사는데 저는 남편 위주로 줄곧 살았던 이유가 워낙 자상하고 스킨십도 많이 해주는 좋은 남편이기 때문이에요. 덕분에 남편이 좋아하는 테니스, 음악을 안 되는 몸으로 따라다니며 배우고 익혔지요. 그래서인지 지금도 부부 금슬은 소문이 날 정도로 좋아요. 제가 외출하고 돌아오는 시간에 베란다 창문 열고 손 흔들어 반겨주고 하트 날려주는 남편이에요. TV 광고처럼 아침에 눈 뜨면 그저 행복하답니다.
이원직 - 종교가 갖는 역할도 큰 것 같아요. 언제부턴가 아내가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하기 시작했어요. 하루에 10번 이상 듣다보니 몸에서 저절로 사랑이 뿜어져 나오더군요. 아이들 부를 때도 “사랑하는 아무개야” 하고 꼭 넣어서 불러줘요. 그러면 샘물 솟듯 사랑이 계속 길어져 나오는 것 같아서 아주 좋습니다.
강원동 - 남편이 은퇴하고 나니 30년 이상 가족을 위해 살았던 것이 고맙고 감사하단 마음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해줬어요. 그러다보니 진짜 사랑하는 마음이 커지더라고요. 지금은 남편과 결혼한 게 너무 좋고 행복하단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아요.
전영자 - 남편이 직업군인으로 퇴역하니 연금이 나오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연금카드를 떡하니 손에 쥐여 주더라고요. 얼마나 고맙던지.
김정규 - 내가 퇴직하기 전까지 집안 살림이며 아이들 건사며 혼자 다했잖아요. 그래서 그 보답으로 연금 카드를 줬지요. 나는 집세가 나오는 게 있어서 그걸로 충당이 되고요. 하하. 집사람이 66살에 유방암 판정을 받았는데 그 순간 앞이 캄캄하더라고요. 집사람 죽으면 그 나이에 새 장가를 갈 것도 아니고 막상 수술대에 오르는 것 보니 불쌍해서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집을 팔건 뭐를 팔건 살려줄 테니 걱정 말라”고 안심시켜 수술실로 보냈어요. 다행히 수술이 잘 끝났고 지금은 살아서 내옆에 있으니 그 보답으로 ‘무조건 잘 해줘야겠다’ 생각하며 지내요. 그런데 요즘은 집사람이 너무 제 옆에 달라붙어 있어 조금 귀찮기도 합니다. 하하.
박동석 - 우리 부부는 잘 싸워요. 제가 강원도에서 리조트를 운영하다보니 20년 넘게 아내와 떨어져 살았어요. 어쩌다 집에 가면 견우직녀 만나듯 서로 애틋한 게 아니라 서로 적응하느라 싸움부터 시작했죠. 아내는 아이들하고 힘든 것 풀어내고 싶어 하고 저는 집에 와서 편하게 쉬고 싶은데 그게 안 되니 싸우고 그런 식이었죠. 그래서 만나면 으르렁대고 그러다 차츰 적응될 만하면 또 헤어져 각자 자리로 돌아가야 되고, 그러자니 섭섭해서 헤어지기 전에 또 싸우고. 하하. 아침저녁으로 틈만 나면 싸우니까 아이들도 “지금까지 싸우는 부부는 우리 부모님밖에 없다”고 놀려댈 정도예요. 그래도 싸움도 일종의 사랑의 표현이라 생각하고 늘 티격태격합니다.
김희숙 - 부부가 같이 살면 언제든 대화가 가능한데 우리는 떨어져 있다 보니 갈등이 많았죠. 만나면 싸움부터 하고 헤어질 때도 싸우고 했는데 싸움도 사랑의 한 파트였는지 지금은 아파트에 소문난 잉꼬부부에요. 항상 같이 다니거든요. 남편이 저랑 떨어져 있다 보니 일찍 철(?)이 들어 집안일도 잘 도와주고 하니까 지금은 은퇴하고 같이 있는 시간이 너무 좋아요. 친구들은 은퇴한 남편이 졸졸 따라다녀 귀찮다고 하는데 저는 오히려 남편만 졸졸 따라다녀요. 제가 젖은 낙엽이죠.
박동석 - 맞아요. 어쩔 때는 너무 따라다녀 집사람이 귀찮을 때도 있다니까요. 하하. 김정규 - 컴퓨터 옆에 저와 집사람 일주일 스케줄 표 적어 붙여놓고 서로 확인하고 있어요. 같이 하는 시간을 많이 만들려고 하고 있지요. 김희숙 - 맞아요. 저도 남편이랑 스포츠댄스와 수영 같은 취미활동을 함께해요. 남편하고 떨어져 있다 보니 혼자 있는 시간에 나를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의미 있는 사회참여와 봉사를 해야겠다 싶어 시각장애인 녹음봉사를 하고 있어요. 그게 좋은 건 나이 들면 책을 잘 안 읽게 되는데 이 봉사하면서 책도 읽게 되고 또 누군가를 위해 내가 쓰임이 있겠구나 싶어 아주 좋아요.
김일식 - 제가 아는 지인은 자식들 출가시킬 무렵 이혼하더라고요. 자식보다 본인들의 행복이 더 중요한 것 보고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어요. 저는 이혼 생각은 해 본적이 없는데 혹시 아내가 나 싫다고 이혼하자고 하면 어쩌나 전전긍긍하고 살고 있어요. 주변에 보면 황혼 무렵 이혼당하는 노인이 많잖아요. 그렇게 안 되려면 아내 말 잘 들어야죠. 하하.
#행복하려면 건강 챙겨야, 사별이 제일 무서워.
김일식 - 부부가 행복하게 살려면 첫째가 건강이에요. 예전엔 운동을 그저 취미삼아 했는데 나이 먹고는 살기 위해서라도 운동은 필수예요. 집사람 몸이 안 좋아 어제도 응급실 갔다 왔는데 그럴 때마다 불안해요. 사별은 제일 안 좋은 거예요.
김정규 - 운동도 나이에 맞게 해야 돼요. 그리고 자기 정서에 맞는 운동이 필요하고요. 몸을 치료한다는 개념으로 운동을 해야지, 운동으로 몸을 혹사시켜서는 안돼요.
전영자 - 우리는 중앙공원 배드민턴 부부 동호회 회원이에요. 남편이 회장을 맡을 정도로 열심히 하고 있지요. 시나 구에서 주최하는 각종대회에 나가 금메달, 은메달은 우리 부부가 휩쓸어 온답니다. 그리고 스포츠댄스도 같이 하니까 부부 금슬에 좋아요. 1년 넘게 남편이랑 같이 배웠어요. 아침에 살짝 음악 틀어놓으면 어느 틈에 남편이 나와 같이 춤을 추지요. 그러면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한답니다.
박동석 - 강원도 스키리조트를 20년 넘게 운영해오며 느낀 점이 있어요. 수명이 길어지니까 아프지 않고 오래 사는
것이 삶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관건이더라고요. 저도 은퇴 후 수영도 배우고 아침저녁으로 탄천에 나가 MTB 자전거도 타면서 건강을 유지하고 있지요. 몸이 아프면 정말 아무것도 소용없어요. 요즘은 아내와 매일 수영을 같이하니까 더 좋아요.
김희숙 - 남편이 60 넘어서 수영을 배웠어요. 할머니들 틈에 끼어 수영배우고 지금은 저랑 같이 수영할 정도로 실력이 되니까 같이 다닐 수 있어 좋아요. 탄천에서 94살 어르신이 MTB 타는 걸 봤어요. ‘활기 있게 살기 위해선 운동이 절실하구나’를 느꼈고 특히 부부가 함께 운동하면 없던 정도 다시 생긴답니다.
김일식 - 저도 정년퇴직 후 10년간 헬스장에 다니면서 감기 때문에 누워 본적이 없어요. 자기가 좋아하는 운동 찾아 무조건 해야 해요. 이원직 - 부부 중에 한 사람이라도 아프거나 하면 경제적인 것은 둘째 치고 남은 배우자가 간병하고 묶여 있다 보니 삶 자체가 피폐해져요. 노년이 되면 자기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거동 못하는 배우자 돌보면서 얼마나 삶이 노곤하겠어요. 가족들 모두 힘들어지고. 그런 걸로 봐서는 아프기 전에 운동하고 건강 관리하는 것이 부부 행복의 첫째 조건이에요.
홍종희 - 등산을 좋아해서 교직 은퇴하고는 집 근처 산에 주일만 빼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르내렸어요. 384m 용마산을 그렇게 다니다 보니 어느 날 무릎 파열이 오더라고요. 운동도 나이에 맞게 해야 합니다.
김일식 - 젊어서는 내가 즐거워서 운동했는데 나이 들어선 건강 생각해서 운동을 하는 것으로 관점이 바뀌었어요. 나이에 맞는 운동으로 등산이 걷기로, 테니스가 탁구로 그렇게 바뀌었어요.
# 기나긴 세월, 특별한 선물과 이벤트로 감동양념 필요
홍종희 - 결혼 40년이 지났는데 지금까지 생일, 결혼기념일에는 남편이 꼭 손수 쓴 장문의 러브레터를 줘요. 제가 교직 퇴임하던 그해 생일에는 시계와 통장을 선물로 주더라고요. 남편도 교사로 재직했는데 월급 말고 과외로 받은 수당을 하나도 안 쓰고 모은 돈이었어요. 2000만원 정도였는데 통장 주면서 같이 여행가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남미 일대를 전부 여행하고 왔는데 너무 행복했어요. 그게 부부관계의 촉진제 역할을 톡톡히 해줬답니다.
김희숙 - 저희는 생일이나 기념일은 잊지 않도록 달력에 미리 동그라미 쳐놓고 공지도 해놓아 그냥 넘어가는 일은 없이 잘 챙겨줘요.
박동석 - 사돈부부가 가까이 사는데 우리 생일이나 사돈부부 생일에 같이 여행을 가곤해요. 평소에 얼마씩 갹출해서 돈을 모았다가 기념일에 같이 여행도 가고 평소엔 수영이나 운동도 같이 하니까 자식들도 좋고 우리도 좋더라고요. 뒷간과 사돈은 멀리 떨어져야 좋다고 하는데 우리는 이웃사촌으로 지내니 그것도 좋아요.
강원동 - 저도 얼마 전 결혼기념일에 남편이 백화점에서 비싼 목걸이를 선물해줬는데 너무 좋았어요.
김정자 - 어느 날 제 생일에 며느리가 생일상을 차려준대서 갔는데 남편이 오메가 시계를 근사하게 포장해 가지고 오더라고요. 속으로 며느리가 대견해서 주려나보다 했는데 제 선물로 주더라고요. 얼마나 좋고 감동했는지 사위들 다 보는 앞에서 남편한테 뽀뽀세례를 퍼부었어요. 사위가 물질에 약한 장모라고 흉을 보더라고요. 그래도 뭐 좋은걸 어떡해요. 하하.
취재·사진 권미영 리포터 myk31@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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