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이 만난 사람 - 네잎클로버 아줌마 김상기

“네잎클로버의 행운이요? 건강을 되찾은 것이죠!”

뇌경색으로 잃었던 시력, 네잎클로버 찾으며 녹색치료...탄천서 자전거 타며 건강 관리해

지역내일 2009-11-28 (수정 2009-11-28 오후 11:41:57)
볕이 좋던 날,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 야산에 갔다 돌아오던 길이었다. 언덕길 중턱에서 어떤 아줌마, 아저씨가 풀밭에 쪼그리고 앉아서 뭔가를 열심히 뜯고 계셨다. 철도 아닌데 봄나물을 캐는 것도 아닐 테고, 도대체 뭘 그리 열심히 뜯고 계신지 궁금해진 리포터.
“아줌마, 뭘 그렇게 열심히 뜯고 계세요?”
“네잎클로버 찾아요.”
대답을 하면서도 눈길은 여전히 풀들에 꽂혀 있던 김상기(53·분당 구미동) 씨 손에는 이미 네잎 클로버가 한 움큼 쥐여있었다. 남에게 받아 본 적은 있지만 지금껏 스스로 네잎클로버를 발견해본 적이 없는 리포터에게는 정말 신기한 광경이었다.
“여기에 네잎클로버가 많이 몰려 나있나 봐요.”
“네잎클로버는 어디에나 있어요. 잘못 봐서 그렇지. 대부분 잎 넉 장을 찾지만 그러면 잘 안보여요. 클로버 잎에 있는 무늬가 이루는 모양을 보면 보이죠. 하도 많이 클로버를 뜯다보니 생긴 요령이에요. 네잎클로버 말고도 다섯 잎, 여섯 잎, 아홉 잎 클로버도 있어요.”
“네잎클로버를 그렇게 많이 모으시니 행운이 많이 왔겠어요.”
“행운이요? 제가 옛날에 많이 아팠거든요. 그때부터 네잎클로버를 따러 다니며 이렇게 건강해졌으니 그게 네잎클로버가 가져다준 행운이지요.”

중제 : 7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져 목숨은 건졌으나 시력 잃어
뭔가 사연이 있겠다 싶어 연락처를 받아두고 얼마 후, 아줌마 댁을 방문했다. 7년간 모아둔 네잎클로버가 13만개가 넘는다는 말에 꼭 한번 보여 달라고 약속을 받아놨기 때문이다.
“7년 전에 뇌경색이 왔었어요. 젊은 나이였죠. 저희 친정아버지도 뇌경색으로 51세에 돌아가셨어요. 집안 병력을 제가 물려받은 거예요.”
김씨는 워낙 애완동물을 좋아해 강원도에 집을 짓고 100여 마리의 애완견을 키우며 살았다. 만일 김씨를 그때 만났더라면 ‘네잎클로버 아줌마’가 아니라 ‘강아지 아줌마’로 인터뷰를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2003년 겨울을 넘기고 초봄이 오던 3월, 멀리서 놀러온 친구들과 보리밥을 비벼 먹고 보냈던 날 밤, 구토를 하며 쓰러져 바로 왼쪽에 마비가 왔다. 동네 이장님의 도움으로 홍천중앙병원으로 실려 갔던 김씨. 큰 병원으로 당장 가보라는 말에 분당서울대학병원으로 와 MRI(자기공명단층촬영장치)를 찍었다.
“오른쪽 뇌에 혈관이 터져 피가 고여 왼쪽에 마비가 온 거였어요. 빨리 병원에 온 덕택에 고인 피를 뽑아 목숨은 건졌지만 눈이 잘 안보였죠. 병원에 입원할 당시에는 가까운 사람 이외는 잘 알아보지도 못했어요.”

중제 : 네잎클로버 찾기로 녹색을 가까이 보며 눈을 치료해
4일 만에 깨어나서 기억과 희미한 시력이 돌아오고, 몸도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었을 시점.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3일에 한 번씩 병원에서 외출증을 끊어 홍천 집에 개들에게 밥을 주러 다녔다.
“의사선생님이 그러다가 죽을 수도 있다며 ‘아줌마 목숨이냐 개들이냐’를 선택하라고 하시더군요. 할 수 없이 애견동호회를 통해 150마리를 무상으로 분양해주고, 1마리만 키우면서 제 몸을 추스르기 시작했어요.”
당시 분당서울대병원에서 김씨의 시력을 되돌리기 위해 내린 처방은 ‘녹색을 자주 접하고 보라’는 것. 방 도배를 녹색으로 하기까지도 하면서 회복 의지를 불살랐다. 그러면서 김씨가 고안해낸 것이 풀밭 쳐다보기.
“먼 산 쳐다보는 것보다 우리 발밑에 녹색이 얼마나 가깝고 좋아요. 그런데 아무런 목적 없이 풀밭을 쳐다보는 것이 잘 안돼요. 그래서 네잎클로버를 찾기 시작했어요. 클로버를 찾는 내내 녹색을 집중해서 볼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7년 동안 분당의 탄천에서 자전거를 타고 산에 다니며 네잎클로버를 모았다.

중제 : 정성스레 말린 네잎클로버 파일이 집안에 한가득
김씨가 뜯어온 네잎클로버를 보관하는 데 들이는 공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오래되어 누렇게 변한 팝송모음집에 얼마 전 채집한 네잎클로버가 3~4쪽에 하나씩 들어 있었다. 책을 7번 옮기며 클로버의 습기를 빨아들인다. 그렇게 말려 압축한 클로버를 하얀 A4용지에 한껏 멋을 내어 5개씩 붙인다. 다음에 필요한 도구는 놀랍게도 ‘성남용인 내일신문’이다. 5개씩 네잎클로버가 붙여진 A4 표본이 내일신문 사이사이에 들어가 2차 건조과정을 거친다. 김씨 집의 베란다 빨래건조대에는 옷걸이마다 옷이 아니라 내일신문이 가지런히 널려있다. 신문으로 네잎클로버에서 머금은 습기를 건조하기 위해서다.
“귀하게 만드신 신문을 제가 이렇게 써도 되나 몰라요. 내일신문이 종이 질도 좋고, 튼튼하게 중철 되어 있어서 좋아요. 무엇보다 사이즈가 제 클로버 표본보다 적당히 커서 그만이지요.”
이렇게 얌전하게 만든 클로버 표본을 클리어 파일에 보관한다. 그렇게 모은 클리어 파일이 총 372권이다.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지방간만 약간 있고 다 건강하대요. 네잎클로버 덕택에 이렇게 건강해졌죠. 얼마 전, 장기기증단체에 등록을 했어요. 다시 사는 인생인데 이제 제 몸은 제 것이 아니에요. 잘 사용한 다음 후손에게 물려줘야죠.”
추위도 잘 못 느끼고, 신종플루도 남 얘기 같다는 네잎클로버 아주머니. 앞으로도 계속 행운을 채집하며 건강하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오은정 리포터 ohej0622@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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