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이 꽃보다 곱다고 느껴지는 가을입니다. 우리네 삶이 계절만큼만 아름답고 정직하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얼마 전 입에 담기조차 싫은 어린이 성폭력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 사건의 극악함에 우리는 또 한 번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실 우리가 사는 고양시에서도 성폭력 사건은 있어왔고, 일선에서 그 부당함과 사회적 편견에 맞서 저항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성폭력 없는 평등한 사회를 위해 활동하는 ‘고양여성민우회’의 이여로 대표를 만나 보았습니다.
폭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감수성이 문제다
“지난해에도 고양시에서 어린이 성폭력 사건이 있었어요. 사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아주 일상적인데, 큰 사건이 터졌을 때만 여론이 들끓고 이슈가 됩니다.” 조00 어린이 성폭력 사건에 대한 이여로 대표의 견해는 단호했다.
“이번 사건은 가부장적인 남성의 성문화, 접대문화, 음주문화가 그 배경이에요. 우리사회는 ‘남자가 술 한 잔 먹고 실수할 수도 있지~’ 이런 식으로 관대하잖아요. 그러니 가해자가 술을 마신 사실이 감형의 이유가 될 수 있는 거죠.”
우리나라는 성폭력특별법이 만들어진 지 15년이 넘었고, 성매매방지법도 있다. 그러나 남성들이 유흥업소에서 여성을 노리개 삼는 것은 다반사고, 고 장자연씨 사건, 청와대 행정관 성접대 사건 등 유야무야 덮어지는 게 현실이다. 이 대표는 “이렇게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만 보는 한 어린이 성폭력 사건은 계속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물론 어린이 성폭력은 가중 처벌 되어야 합니다. 어린이 성폭력과 성인여성의 성폭력에는 우리가 느끼는 온도차가 있어요. 그러나 가정폭력이 일어나는 집에서 성폭력이 일어나고, 그런 가정의 아이들이 커서 가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니까 근본적으로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져야 어린이 성폭력도 줄어들 거라고 봅니다.”
이 대표는 또 “가해자 재범 방지 교육과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문화도 우선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업주부가 여성단체 대표가 되기까지
이 대표는 올해 44살이다. 26살에 결혼을 했는데 그 전까지 여성운동이 뭔지, 시민단체가 있는지도 몰랐단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가정에 묶이고 늦게 들어오는 남편만 기다리는 제 모습이 보였어요. ‘이여로’는 없고, 엄마와 아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더라고요. 명절 때도 늘 시댁 우선이고 남자, 여자의 일이 확연히 구분되어 있고….”
1995년에 고양시로 이사를 오고, 97년 우연히 ‘고양여성민우회’를 알게 되어 자발적으로 회원가입을 하면서 여성학을 접하기 시작했다. 막연하게 느끼던 불만과 불안, 우울함의 원인을 알았고, 정체성을 찾아가는 소중한 과정이 되었다.
“4살짜리 큰 아이 보육원에 보내고, 돌쟁이 둘째를 들쳐 업고서 매일 사무실에 나갔어요. 자원봉사 하고, 여성학 소모임 하고, 회의 하고. 진짜 재밌었어요. 삶이 달라졌거든요.”
열심히 하니까 운영위원도 맡고, 상임집행위원도 하면서 점점 활동의 폭이 넓어졌다. 2002년 성폭력 상담원 교육을 받은 후 고양시에 성폭력상담소를 만들었고 2004년에는 소장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성폭력 발생 후 고소율이 10%도 안 돼요. 그나마 어렵게 고소를 해도 경찰, 검찰, 법원의 지난한 과정이 남아있죠. 과정마다 ‘합의 볼 생각 없냐?’는 질문을 받아요.” 피해여성은 심신이 지친 상태에서 가해자에게 계속 합의해달라는 시달림을 당한다. 그리고 끝까지 합의를 안 해주면 ‘젊은 남자 인생을 볼모로’, ‘네가 눈 한번 감아주면 있는데’ 등 여성을 옥죄는 레퍼토리가 나오면서 ‘불쌍한 남자, 모진 여자’의 구도가 된다고. 만약 합의를 해주면 돈을 목적으로 한 ‘꽃뱀’으로 몰리기도 한다. “여자는 이래도 저래도 욕을 먹어요. 남성의 시각에 의한 전형적인 이중잣대죠. 또한 법원에서는 피해자인 여성이 죽을 만큼 저항해야만 저항으로 인정이 돼요.”
성폭력 상담소에서 ‘한부모 모임’을 하면서 느낀 점도 이야기한다. “그들이 단지 이혼했다는 이유로 ‘쉬쉬~’ 하면서 사는 게 너무 속상했어요. 남자들이 우습게 보고, 함부로 접근할까봐 의기소침해지고 숨기게 된대요. 결혼이 선택이듯 이혼도 선택이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를 꿈꿔요
여성단체 대표라는 정체성이 너무 강한 것 아니냐는 리포터의 말에 이 대표는 자신을 “사실 개인적으로는 갈등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1997년 IMF때 남편의 부도로 아직까지 경제적인 회복이 되지 않았고, 여성주의적 가치관에 따르면 경제적으로 함께 책임을 나눠서 져야 하는데 그 역할을 못하고 있어 미안하단다. 활동하다보니 아이들에게도 시간을 많이 내주지 못한다고. ‘나 혼자 좋자고 활동을 하는 건가, 정말 사회적 변화를 가져오는 건가’에 대한 고민이 늘 깔려있다고 한다.
수많은 사회적 편견과 싸우는 과정에서 저절로 체득된 이 대표의 철학은 ‘다양성의 존중, 소수자 배려, 소외 없는 세상’이다. “노인이라서, 어린이라서, 장애인이라서, 여성이라서, 성적소수자라서 차별을 받잖아요. 차이가 차별로 드러나는 사회는 후진적입니다. 동성애자도 직접 만나보면 일상에서 부딪치는 여성들과 다를 게 없어요. 성적 취향이 다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주눅 들고 소외 받아야 하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해요.”
여성들에게 힘나는 한마디를 부탁했다.
“여성에게는 조화로움, 상생, 배려 등 장점이 많아요. 자신감과 리더십을 갖출 수 있도록 자기에게 당당하게 투자하세요. 내 삶을 가꾸고 디자인하는 여성은 행복해요. 그 모습을 보는 아이들과 남편도 행복할 거예요.”
고양여성민우회 사무실 벽에는 ‘네 모습 그대로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글귀가 씌여 있다. 글 귀 앞에 앉은 이여로 대표의 모습과 참 잘 어울린다.
정경화 리포터 71khjung@hanmail.net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사실 우리가 사는 고양시에서도 성폭력 사건은 있어왔고, 일선에서 그 부당함과 사회적 편견에 맞서 저항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성폭력 없는 평등한 사회를 위해 활동하는 ‘고양여성민우회’의 이여로 대표를 만나 보았습니다.
폭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감수성이 문제다
“지난해에도 고양시에서 어린이 성폭력 사건이 있었어요. 사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아주 일상적인데, 큰 사건이 터졌을 때만 여론이 들끓고 이슈가 됩니다.” 조00 어린이 성폭력 사건에 대한 이여로 대표의 견해는 단호했다.
“이번 사건은 가부장적인 남성의 성문화, 접대문화, 음주문화가 그 배경이에요. 우리사회는 ‘남자가 술 한 잔 먹고 실수할 수도 있지~’ 이런 식으로 관대하잖아요. 그러니 가해자가 술을 마신 사실이 감형의 이유가 될 수 있는 거죠.”
우리나라는 성폭력특별법이 만들어진 지 15년이 넘었고, 성매매방지법도 있다. 그러나 남성들이 유흥업소에서 여성을 노리개 삼는 것은 다반사고, 고 장자연씨 사건, 청와대 행정관 성접대 사건 등 유야무야 덮어지는 게 현실이다. 이 대표는 “이렇게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만 보는 한 어린이 성폭력 사건은 계속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물론 어린이 성폭력은 가중 처벌 되어야 합니다. 어린이 성폭력과 성인여성의 성폭력에는 우리가 느끼는 온도차가 있어요. 그러나 가정폭력이 일어나는 집에서 성폭력이 일어나고, 그런 가정의 아이들이 커서 가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니까 근본적으로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져야 어린이 성폭력도 줄어들 거라고 봅니다.”
이 대표는 또 “가해자 재범 방지 교육과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문화도 우선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업주부가 여성단체 대표가 되기까지
이 대표는 올해 44살이다. 26살에 결혼을 했는데 그 전까지 여성운동이 뭔지, 시민단체가 있는지도 몰랐단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가정에 묶이고 늦게 들어오는 남편만 기다리는 제 모습이 보였어요. ‘이여로’는 없고, 엄마와 아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더라고요. 명절 때도 늘 시댁 우선이고 남자, 여자의 일이 확연히 구분되어 있고….”
1995년에 고양시로 이사를 오고, 97년 우연히 ‘고양여성민우회’를 알게 되어 자발적으로 회원가입을 하면서 여성학을 접하기 시작했다. 막연하게 느끼던 불만과 불안, 우울함의 원인을 알았고, 정체성을 찾아가는 소중한 과정이 되었다.
“4살짜리 큰 아이 보육원에 보내고, 돌쟁이 둘째를 들쳐 업고서 매일 사무실에 나갔어요. 자원봉사 하고, 여성학 소모임 하고, 회의 하고. 진짜 재밌었어요. 삶이 달라졌거든요.”
열심히 하니까 운영위원도 맡고, 상임집행위원도 하면서 점점 활동의 폭이 넓어졌다. 2002년 성폭력 상담원 교육을 받은 후 고양시에 성폭력상담소를 만들었고 2004년에는 소장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성폭력 발생 후 고소율이 10%도 안 돼요. 그나마 어렵게 고소를 해도 경찰, 검찰, 법원의 지난한 과정이 남아있죠. 과정마다 ‘합의 볼 생각 없냐?’는 질문을 받아요.” 피해여성은 심신이 지친 상태에서 가해자에게 계속 합의해달라는 시달림을 당한다. 그리고 끝까지 합의를 안 해주면 ‘젊은 남자 인생을 볼모로’, ‘네가 눈 한번 감아주면 있는데’ 등 여성을 옥죄는 레퍼토리가 나오면서 ‘불쌍한 남자, 모진 여자’의 구도가 된다고. 만약 합의를 해주면 돈을 목적으로 한 ‘꽃뱀’으로 몰리기도 한다. “여자는 이래도 저래도 욕을 먹어요. 남성의 시각에 의한 전형적인 이중잣대죠. 또한 법원에서는 피해자인 여성이 죽을 만큼 저항해야만 저항으로 인정이 돼요.”
성폭력 상담소에서 ‘한부모 모임’을 하면서 느낀 점도 이야기한다. “그들이 단지 이혼했다는 이유로 ‘쉬쉬~’ 하면서 사는 게 너무 속상했어요. 남자들이 우습게 보고, 함부로 접근할까봐 의기소침해지고 숨기게 된대요. 결혼이 선택이듯 이혼도 선택이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를 꿈꿔요
여성단체 대표라는 정체성이 너무 강한 것 아니냐는 리포터의 말에 이 대표는 자신을 “사실 개인적으로는 갈등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1997년 IMF때 남편의 부도로 아직까지 경제적인 회복이 되지 않았고, 여성주의적 가치관에 따르면 경제적으로 함께 책임을 나눠서 져야 하는데 그 역할을 못하고 있어 미안하단다. 활동하다보니 아이들에게도 시간을 많이 내주지 못한다고. ‘나 혼자 좋자고 활동을 하는 건가, 정말 사회적 변화를 가져오는 건가’에 대한 고민이 늘 깔려있다고 한다.
수많은 사회적 편견과 싸우는 과정에서 저절로 체득된 이 대표의 철학은 ‘다양성의 존중, 소수자 배려, 소외 없는 세상’이다. “노인이라서, 어린이라서, 장애인이라서, 여성이라서, 성적소수자라서 차별을 받잖아요. 차이가 차별로 드러나는 사회는 후진적입니다. 동성애자도 직접 만나보면 일상에서 부딪치는 여성들과 다를 게 없어요. 성적 취향이 다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주눅 들고 소외 받아야 하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해요.”
여성들에게 힘나는 한마디를 부탁했다.
“여성에게는 조화로움, 상생, 배려 등 장점이 많아요. 자신감과 리더십을 갖출 수 있도록 자기에게 당당하게 투자하세요. 내 삶을 가꾸고 디자인하는 여성은 행복해요. 그 모습을 보는 아이들과 남편도 행복할 거예요.”
고양여성민우회 사무실 벽에는 ‘네 모습 그대로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글귀가 씌여 있다. 글 귀 앞에 앉은 이여로 대표의 모습과 참 잘 어울린다.
정경화 리포터 71khj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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