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라도 여기저기 학원 다니느라 방학이 방학 같지 않은 것이 현실. 공부에 지친 아이들이 야외에 나가 머리도 식히고 역사 체험도 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닐까? 멀지 않은 곳, 한강 주변에는 우리 선조들의 삶의 흔적이 녹아있다. 전철을 이용해 하루 만에 신석기 시대 주거지와 초기 백제의 유적지들을 꼼꼼하게 돌아봤다.
신석기 시대의 흔적, 암사동 선사 주거지
약 6천여 년 전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집터 유적인 암사동 선사 주거지. 국내에서는 최대 규모로 알려져 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여러 채의 움집이 보인다. 짚으로 만든 고깔 모양의 집은 아파트에 익숙한 아이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땅을 약 50~100㎝정도 파서 단단한 나무로는 기둥과 서까래를 세우고 풀이나 짚으로 지붕을 덮었다. 4~5명이 살기에 적당한 크기로 가운데는 불을 피우는 화덕이, 그 옆에는 곡식을 저장해 두었을 작은 구멍도 있었다. ‘원시인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살았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저절로 해결되는 순간이다.
원시생활전시관의 제1전시관 중앙에는 실제 움집터가 자리 잡고 있다. 그 주위로 빗살무늬토기, 돌로 만든 도끼, 화살촉, 그물추, 돌낫 등의 출토유물들과 신석기시대 원시인의 생활을 담은 입체 모형 전시관을 볼 수 있다. 정정자 문화유산 해설사는 ‘암사동 유적지를 방문하기 전 선사와 역사의 구분 정도는 꼭 하고 오길 바란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통로로 연결된 제2전시관은 영상물로 당시의 주거환경과 생활상을 알게 하는 곳. 수렵, 어로, 농경, 채집생활을 축소모형으로 전시하고 도구를 이용해 불을 붙여보는 체험코너도 마련돼 있어 아이들의 발길로 북적댄다. 움집 모형이나 빗살무늬토기, 도자 만들기 체험코너도 있어 아이들은 원 없이 신석기인이 되어볼 수 있다.
*가는길 지하철 8호선 암사역 1번 출구
입장료 어른 500원/어린이 300원
관람시간 오전 9시30분~오후6시
한성시기의 백제를 찾아 몽촌토성으로
몽촌토성은 풍납토성과 함께 백제 최초의 왕궁으로 추측되고 있는 곳으로 지금은 올림픽공원 내에 있다. 당시의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성안에 곰말(꿈말) 곧 몽촌이라는 마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이름이 생겼다고. 위에서 내려다보면 성모양이 마름모꼴을 닮아 있다. 자연 그대로의 언덕을 이용하여 흙을 6~7m높이로 쌓아 올리거나 경사면을 급하게 깎는 등 필요에 따라 인공을 가해 놓은 토성이다.
공원길을 따라 걸으면 나무를 땅에 박아 만든 나무울타리인 목책과 성 밖으로 둘러서 땅을 파고 물을 댄 연못인 해자를 볼 수 있다. 목책과 해자는 성의 방어 수단이었음을 꼭 알려주자. 몽촌역사관까지 가는 길, 낮은 구릉성을 보면서는 완만하고 소박한 백제의 선과 숨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좋을 듯. 역사관에는 몽촌토성에서 발굴된 세발토기, 잔, 철제 무기류, 뼈로 만든 갑옷 등의 유물의 일부와 축소 복원된 움집터, 저장 구덩이들이 전시되어 있다. 대표적인 백제의 유적과 유물들을 소개하고 있어 백제문화 이해에 도움을 준다. 역사관을 나와 성벽위로 난 길을 걸으면 움집터전시관도 볼 수 있다. 군사들의 숙소였던 것으로 짐작되는 백제의 전형적인 육각형 모양 움집터이다.
*가는길 지하철 8호선 몽촌토성역 1번 출구, 5호선 올림픽공원 3번 출구
입장료 없음
몽촌토성역사관, 움집터 전시관 관람시간 평일 오전10시~오후8시/
주말·공휴일 오전10시~오후6시
백제 문화를 알려주는 석촌동·방이동 고분군
석촌동 고분군 정문에 들어서면 백제의 옛무덤들이 빙 두른 돌담 안으로 한 눈에 들어온다. 왕릉이나 일반 관리, 서민의 묘로 쓰였던 돌무지무덤, 널무덤, 독무덤 등 다양한 형태의 무덤이 섞여 있었다.
돌무지무덤 2,3,4호는 층단을 차츰 좁혀가며 쌓아올린 모양으로 남한에서는 이곳에서만 볼 수 있다. 기원전 전후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고구려양식의 무덤이며 이 무덤의 주인이 고구려계임을 뜻한다는 것은 꼭 알아야 할 사실. 3호분은 광개토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장군총과 비교된다. “한 변이 30m에 7단인 장군총과 달리 3호분은 하단은 50m에 높이는 3단으로 되어있죠.” 문화유적 해설사 배성현 씨의 설명이다. 웅장하기보다는 늠름하고 안정감이 두드러진 자태에서 어딘지 모를 단아한 백제의 기품이 느껴진다. 4호분은 기존의 흙무덤을 깎아내고 그 주변에 석축을 쌓음으로써 흙무덤이 돌무지무덤으로 바뀐 것으로 해석된다. 겉모습은 하나의 커다란 흙무덤으로 보이나 무덤의 주인이 여럿인 5호분도 볼 수 있다. 큰 무덤 사이에 외톨이처럼 끼어있는 널무덤은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평범한 인물의 것임을 짐작케 한다.
백성현 씨는 “석촌동은 예전에 돌마리 또는 돌마을이라고 불릴 만큼 돌이 흔해서 마을 사람들이 고분의 돌을 가져다가 집을 짓기도 했다”며 고분의 보존에 소홀했던 것을 아쉬워했다. 지금의 돌담도 이곳의 돌로 만든 것이라고. 아이와 함께 유물과 유적의 가치에 대해 되새겨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듯하다.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방이동 고분분에도 들러 보자. 구릉의 경사진 부분을 파고 돌로 방을 만든 뒤 입구에 널길을 설치한 굴식돌방무덤을 볼 수 있다. 한성시대 백제인들의 돌무지무덤인 석촌동고분군에서 방이동고분군을 거쳐, 웅진·사비시대로 변화했음을 보여주는 주요한 유적이다.
*가는길 석촌동고분군 지하철 8호선 석촌역 5번 출구
방이동고분군 지하철 5호선 방이역 3번 출구
연중 무휴, 입장료 없음
권성미 리포터 kwons0212@naver.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신석기 시대의 흔적, 암사동 선사 주거지
약 6천여 년 전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집터 유적인 암사동 선사 주거지. 국내에서는 최대 규모로 알려져 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여러 채의 움집이 보인다. 짚으로 만든 고깔 모양의 집은 아파트에 익숙한 아이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땅을 약 50~100㎝정도 파서 단단한 나무로는 기둥과 서까래를 세우고 풀이나 짚으로 지붕을 덮었다. 4~5명이 살기에 적당한 크기로 가운데는 불을 피우는 화덕이, 그 옆에는 곡식을 저장해 두었을 작은 구멍도 있었다. ‘원시인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살았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저절로 해결되는 순간이다.
원시생활전시관의 제1전시관 중앙에는 실제 움집터가 자리 잡고 있다. 그 주위로 빗살무늬토기, 돌로 만든 도끼, 화살촉, 그물추, 돌낫 등의 출토유물들과 신석기시대 원시인의 생활을 담은 입체 모형 전시관을 볼 수 있다. 정정자 문화유산 해설사는 ‘암사동 유적지를 방문하기 전 선사와 역사의 구분 정도는 꼭 하고 오길 바란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통로로 연결된 제2전시관은 영상물로 당시의 주거환경과 생활상을 알게 하는 곳. 수렵, 어로, 농경, 채집생활을 축소모형으로 전시하고 도구를 이용해 불을 붙여보는 체험코너도 마련돼 있어 아이들의 발길로 북적댄다. 움집 모형이나 빗살무늬토기, 도자 만들기 체험코너도 있어 아이들은 원 없이 신석기인이 되어볼 수 있다.
*가는길 지하철 8호선 암사역 1번 출구
입장료 어른 500원/어린이 300원
관람시간 오전 9시30분~오후6시
한성시기의 백제를 찾아 몽촌토성으로
몽촌토성은 풍납토성과 함께 백제 최초의 왕궁으로 추측되고 있는 곳으로 지금은 올림픽공원 내에 있다. 당시의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성안에 곰말(꿈말) 곧 몽촌이라는 마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이름이 생겼다고. 위에서 내려다보면 성모양이 마름모꼴을 닮아 있다. 자연 그대로의 언덕을 이용하여 흙을 6~7m높이로 쌓아 올리거나 경사면을 급하게 깎는 등 필요에 따라 인공을 가해 놓은 토성이다.
공원길을 따라 걸으면 나무를 땅에 박아 만든 나무울타리인 목책과 성 밖으로 둘러서 땅을 파고 물을 댄 연못인 해자를 볼 수 있다. 목책과 해자는 성의 방어 수단이었음을 꼭 알려주자. 몽촌역사관까지 가는 길, 낮은 구릉성을 보면서는 완만하고 소박한 백제의 선과 숨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좋을 듯. 역사관에는 몽촌토성에서 발굴된 세발토기, 잔, 철제 무기류, 뼈로 만든 갑옷 등의 유물의 일부와 축소 복원된 움집터, 저장 구덩이들이 전시되어 있다. 대표적인 백제의 유적과 유물들을 소개하고 있어 백제문화 이해에 도움을 준다. 역사관을 나와 성벽위로 난 길을 걸으면 움집터전시관도 볼 수 있다. 군사들의 숙소였던 것으로 짐작되는 백제의 전형적인 육각형 모양 움집터이다.
*가는길 지하철 8호선 몽촌토성역 1번 출구, 5호선 올림픽공원 3번 출구
입장료 없음
몽촌토성역사관, 움집터 전시관 관람시간 평일 오전10시~오후8시/
주말·공휴일 오전10시~오후6시
백제 문화를 알려주는 석촌동·방이동 고분군
석촌동 고분군 정문에 들어서면 백제의 옛무덤들이 빙 두른 돌담 안으로 한 눈에 들어온다. 왕릉이나 일반 관리, 서민의 묘로 쓰였던 돌무지무덤, 널무덤, 독무덤 등 다양한 형태의 무덤이 섞여 있었다.
돌무지무덤 2,3,4호는 층단을 차츰 좁혀가며 쌓아올린 모양으로 남한에서는 이곳에서만 볼 수 있다. 기원전 전후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고구려양식의 무덤이며 이 무덤의 주인이 고구려계임을 뜻한다는 것은 꼭 알아야 할 사실. 3호분은 광개토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장군총과 비교된다. “한 변이 30m에 7단인 장군총과 달리 3호분은 하단은 50m에 높이는 3단으로 되어있죠.” 문화유적 해설사 배성현 씨의 설명이다. 웅장하기보다는 늠름하고 안정감이 두드러진 자태에서 어딘지 모를 단아한 백제의 기품이 느껴진다. 4호분은 기존의 흙무덤을 깎아내고 그 주변에 석축을 쌓음으로써 흙무덤이 돌무지무덤으로 바뀐 것으로 해석된다. 겉모습은 하나의 커다란 흙무덤으로 보이나 무덤의 주인이 여럿인 5호분도 볼 수 있다. 큰 무덤 사이에 외톨이처럼 끼어있는 널무덤은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평범한 인물의 것임을 짐작케 한다.
백성현 씨는 “석촌동은 예전에 돌마리 또는 돌마을이라고 불릴 만큼 돌이 흔해서 마을 사람들이 고분의 돌을 가져다가 집을 짓기도 했다”며 고분의 보존에 소홀했던 것을 아쉬워했다. 지금의 돌담도 이곳의 돌로 만든 것이라고. 아이와 함께 유물과 유적의 가치에 대해 되새겨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듯하다.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방이동 고분분에도 들러 보자. 구릉의 경사진 부분을 파고 돌로 방을 만든 뒤 입구에 널길을 설치한 굴식돌방무덤을 볼 수 있다. 한성시대 백제인들의 돌무지무덤인 석촌동고분군에서 방이동고분군을 거쳐, 웅진·사비시대로 변화했음을 보여주는 주요한 유적이다.
*가는길 석촌동고분군 지하철 8호선 석촌역 5번 출구
방이동고분군 지하철 5호선 방이역 3번 출구
연중 무휴, 입장료 없음
권성미 리포터 kwons0212@naver.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