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이 만난 사람들-한옥순

자연이 오래도록 내 안에 머물러 있죠

천연염색체험장 ‘꽃무지 풀무지’ 한옥순

지역내일 2008-11-13
‘자연에서 나는 모든 것이 염색재료가 된다’는 한옥순 씨의 얘기에 절로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잔디밭 여기저기, 그녀만의 무궁무진한 재료가 지천으로 깔렸다. 한 씨가 발품을 팔아 심고 가꾼 작품이라고. 가을 단풍이 너무 예뻐 만들어 봤다며 그녀가 건넨 스카프에는 은은한 가을이 담겨있었다. 황백, 양파껍질, 오배자, 소목, 소리쟁이가 만들어낸 황금갈색.
텍스타일 디자인을 전공한 한 씨는 스카프를 만들어내는 화학 염색회사에서 근무하다가 우연히 천연염색을 만났다. 염색 과정은 똑같지만 천연염색에서만 느껴지는 ‘곱고 순한 색’은 이내 그녀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흔히 자연스러운 색깔이라고 하잖아요. 자연에서 얻은 색 그대로 표현되는 게 천연염색의 매력이죠.”
그 뿐인가, 숯이나 황토, 쪽물을 들인 속옷과 침구류는 건강에도 좋다. 특히 쪽은 방충, 방습효과도 있어 여름을 보송보송하게 날 수 있다.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유일하게 물을 들였을 때 의외의 색이 나오는 게 ‘쪽’이란다. 녹색이 푸르른 옥색으로 변하는 순간을 경험해본 사람들은 모두 쪽빛에 빠지게 된단다. 그 오묘한 천연염색의 세계를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많은 공과 애착이 담기는 작업임에도 아직 사람들은 천연염색이다 하면 집에서 못 입는 헌옷을 이용해야만 하는 걸로 생각한다. 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색을 좋은 재료에 담아내는 것이 천연염색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냐”는 한 씨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천연염색 제품들은 시간이 가면서 자연스럽게 발색이 되는데 그게 또 천연염색의 매력. 그리고는 또 다른 재료로 전혀 다른 색을 내볼 수도 있다. 지금도 한옥순 씨는 논밭이나 길가를 지날 때마다 식물 하나 허투루 보는 법이 없다. 이것을 섞으면 어떤 색이 나올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단다.
커다란 노천카페마냥 자연을 향해 활짝 열려있는 그녀의 당수동 체험장에선 계절도 머물다 가는 모양이다. 은은한 가을의 끝자락이 한 씨의 목에 감물 빛 스카프로 감겨있다.

오세중 리포터 sejoong7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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