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우리 집 처마 끝에는 제비가족이 둥지를 틀고 살고 있었다. 마당 곳곳 새똥이 널렸지만 제비가족이 작은 둥지에 모여 옹기종기 사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내 어릴 적 큰 즐거움이었다. 그런데 그 때 그 시절 흔하던 제비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사라진 제비에 대한 이야기를 대진고등학교 2학년 정다미양으로부터 들었다. 정다미양은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이 제비를 3년 동안 연구조사 해 제54회 전국 과학전람회에서 특상을 받았다. 어릴 적부터 꼬마 새박사로 통했던 다미양은 조류관련 분야의 영재성이 돋보이는 학생으로 생물학과에 진학해 새에 대한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고 한다.
새와의 인연
다미양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니가 전해주신 리플릿 속의 사진 한 장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거기엔 파주 적성면 일대에서 독수리가 떼죽음을 당한 모습이 담겨있었다. 새들을 잡기 위해 곡식 사이에 뿌려 놓은 청산가리를 먹고 독수리가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이 한 장의 사진은 다미양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오늘날의 정다미양을 만들어 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이 후 다미 학생은 새를 아끼고 보호하려면 새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새에 대한 탐조를 시작했다. 주말이면 엄마와 함께 곡릉천 일대를 비롯해 강원도 비무장 지대와 멀리는 다른 나라 몽골까지 탐조여행을 다녔다. 흔히 탐조여행이 낭만적일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새를 보기 위해 6~7시간 이상 등산을 해야 하는 경우는 기본이며, 무거운 장비에 오랜 시간을 숨죽인 채 새를 기다려야 하는 등 애로사항이 만만치 않다. 이 여행을 늘 동행하며 격려해주는 사람은 바로 다미양의 어머니다. 다미양에게 새와의 인연을 만들어준 사람이자 어릴 적부터 다미양을 위해 전국 방방곳곳을 데리고 다니며 새에 대한 다미양의 열정에 꽃을 피워준 사람이다.
강남갔던 제비, 돌아와요~
정다미양은 제54회 전국과학전람회에서 학생부 특상을 수상했다. ‘강남 갔던 제비는 다시 돌아올까’라는 주제로 제비의 귀소성과 번식 생태에 대한 3년간의 실험을 출품해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이 실험은 제비의 귀소율에 대한 연구가 미약한 국내 조류학회에 큰 도움을 줄만한 성과라고 한다.
다미양은 강남 갔다가 돌아온 제비를 바로 포획해 거리를 최대 200여km 떨어진 곳에 방사해주면 제비가 100% 돌아온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1년 미만의 단기 실험으로 이와 같은 실험을 해본 이는 아직 아무도 없다고 한다. 또한 제비의 3년간 귀소율을 실험한 결과 귀소 1년차는 60%였고, 2년차는 20%로 감소했다. 어릴 적 주택 처마 밑에 둥지를 틀고 살던 제비들은 주택 형태의 변화와 환경파괴 등으로 급격히 우리 곁에서 살아지게 됐다고 한다.
다미양이 좋아하는 새는 소쩍새와 호반새. 우리 문학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소쩍새는 올빼미 과의 맹금류이지만 생김새가 작고 귀여운 새라고 한다. 호반새는 붉은색 부리를 가진 예쁘고 귀한 새로 다미양은 이 새를 보기 위해 해마다 비무장지대를 찾아가곤 한단다. 다미양이 운영하는 블로그(http://blog. paran.com/damee9136) ‘새와 함께 날아오르다’에 가면 다미학생이 좋아하는 호반새와 소쩍새를 비롯해 다미학생이 국내외에서 촬영한 수많은 새들과 관련 자료를 살펴볼 수 있다.
새를 사랑해주세요
얼마 전 다미양은 어머니와 함께 곡릉천으로 새 탐사를 갔다. 그곳에서 큰말똥가리 새를 봤는데 처음엔 경계하던 새가 가까이 다가가도 날아가지 않고 있더니, 바로 힘없이 쓰러졌다. 급한 마음에 새를 안고 동물병원으로 향했는데 병원에 거의 다 온 순간 새는 피를 토하며 죽었다. 농약에 중독된 작은 새를 잡아먹고 2차 중독이 돼 죽은 것이다. 죽은 새를 보는 다미양은 마음이 너무 아팠다. 청산가리부터 시작해 농약까지 사람들로 인해 새들의 자리는 점점 더 줄어드는 것 같았다.
다미양은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새에 대한 관심을 갖고 아끼고 사랑해 주면 좋겠다”며 “조류학을 전공해 새와 함께 날아오르는 여성조류학자가 되고 싶다”고 전했다. 가녀린 다미양의 모습이 새를 닮았다고 생각한 건 우연일까? 정다미양이 언젠가 커다란 날개를 펼치며 분명 새와 함께 날아오를 것을 의심치 않는다.
양지연 리포터 yangjiy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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