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이 만난 사람] 한빛안과의원 김규섭 원장

지역내일 2008-09-11
“눈이 밝아지면 노인들 걸음걸이가 달라져요”
저소득층 노인들에게 4년째 사랑의 인술 펼치는 안과의사

“나이 들어서 생기는 병 중에서 고칠 수 있는 유일한 병이 백내장이에요. 눈이 침침해서 불편하게 사시던 노인들이 수술을 하고 나면 얼굴이 밝아지고 걸음걸이가 달라집니다.”
고잔동 한빛안과 김규섭(안과전문의) 원장. 돈이 없어 백내장수술을 받지 못하는 노인들에게 사랑의 인술을 펼치고 있다.
백내장은 눈의 수정체가 혼탁해지면서 시야가 뿌옇게 보이고 시력이 저하되는 현상으로 나이 60세가 넘으면 절반이상에서 발생하는 병이다. 수술을 통해 고칠 수 있는 병이지만 저소득층 노인들은 수술비가 겁나서 불편함을 참고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수급자(생활보호대상자)는 동 주민센터에서 관리를 하니까 건강상태 파악이 잘 되는 편이에요. 문제는 수급자가 아니지만 생활이 어려운 차상위계층 노인들이죠. 호적상 자식은 있는데도 부모를 찾아오지도 않고 연락도 없고, 돌봐주는 사람도 없으니 눈이 안보여도 하소연할 데가 없고, 돈이 없으니 병원 갈 생각도 못하고 그냥 사시거든요. 저희가 그런 분을 찾아낼 수는 없으니까 동 주민센터나 보건소에서 협조를 의뢰하는 공문이 오면 수술을 해주고 있어요.”
김 원장이 의료봉사를 시작한 것은 4년 전부터다. 우연한 계기로 영주귀국 사할린동포가 사는 고향마을 노인들에게 안과진료 봉사를 하게 됐다. 안산에서 안과를 하고 있는 만큼 고생하다 고국으로 돌아온 동포들에게 봉사하자는 마음이었지만 초기에는 환자유인행위로 의심하는 눈초리도 받았다. 하지만 꾸준히 사심 없이 진료하고 수술해 주는 김 원장의 모습에 의심은 사라졌다. 수술을 받은 고향마을 노인들이 고맙다면서 텃밭에서 농사지은 콩 한 봉지를 갖다주고, 러시아에 다녀왔다며 초콜릿을 들고 병원을 찾을 때 그는 즐겁다.
“남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많지요.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눈을 고치는 일이니까 육체노동을 해서 돕는 것보다도 이 일을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생각해요. 시력이 나빠지게 되면 다른 어떤 병보다도 삶의 질이 떨어지니까요.”
사실 저소득층 노인들을 치료해주는 일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노인 혼자 병원을 찾아올 수 없기에 차로 가서 모셔와 수술을 하고 집까지 모셔다 드려야 한다. 노인 혼자 사는 경우 수술 후에도 훨씬 더 신경을 써야한다.
하지만 김 원장은 저소득층 노인들을 더 치료해 주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동주민센터나 보건소를 찾아가서 병을 호소한다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있지만 그러지도 못하는 노인들을 발굴해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김 원장은 “동주민센터에서 안질환 노인을 적극적으로 찾아내고, 다른 안과도 이 일에 참여해서 환자들이 가까운 안과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라고 말한다.
안과의사로서 김 원장은 최대한 환자의 편에 서서 진료를 하는 편이다.
“솔직히 말해서 치료하기 좋은 환자만 골라서 받고, 회피하고 싶은 환자는 큰 병원으로 보낼 수도 있어요. 하지만 편안하고 안전한 일만 하면 의사가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줄어들고 환자 또한 더 많은 부담을 안게 됩니다. 환자에게 과연 어떤 것이 좋을까를 고려합니다. 우리 병원에서 치료할 수 있는 병인데도 귀찮다고 큰 병원으로 보낼 경우 환자는 치료비용이 3~4배는 들어요. 입원 안 해도 될 걸 입원해야하니 가족들도 힘들고 의료보험재정이 많이 나가니 사회적으로도 손실이거든요. 연세 많은 분들은 건강상 후유증도 있지만 내 의술로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최근 김 원장은 거의 시력을 잃을 뻔한 한 팔순 할머니의 백내장 수술에 성공해 할머니에게 밝은 삶을 안겨줬다. 그 할머니의 경우 선천성안구진탕으로 눈동자가 계속 떨리는 바람에 수술을 하려면 전신마취를 해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연세가 많아 전신마취를 할 경우 위험부담이 커서 어느 병원에서도 수술을 꺼려했던 환자. 김 원장은 눈 정밀검사 후 부분마취를 하면 수술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부분마취를 해서 수술에도 성공했다.
“수술 전에는 가족 중 한 사람이 늘 할머니 옆에 붙어있어야 했는데 요즘은 할머니 혼자 잘 지내신다고 합니다. 내 능력으로 환자만이 아니라 주위 사람의 삶의 질도 높여줄 수 있다는 것이 흐뭇하고 의사로서 보람을 많이 느낍니다.”
박순태 리포터 atasi2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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