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아쉬움이 쌓이는 소리/내 마음 무거워지는 소리~’
20여 년 동안 우리 귀에 익숙한 노랫말이다. 가수 김민기가 직접 선곡해 ‘노래를 찾는 사람들’ 제1집에 수록된 곡이기도 하다. 다 가는 휴일이 아쉬워 일요일 오후면 묵직해지는 마음을 주변의 소리를 빌어 표현해 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샀던 곡. 이 노랫말이 삶을 지긋이 관조하는 것이 취미이자 습관이었던 한 고등학생의 시선이라는 것에 놀랐다. 그 학생이 바로 오늘 만난 김기수씨다.
올해로 마흔 아홉인 그는 무역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사장님이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멤버로 활동했던 그가 20년 넘게 서랍 속에 꼭꼭 숨겨 놓은 노래들을 ‘희망’이라는 앨범 속에 하나하나 펼쳐냈다.
노래는 아버지가 남겨준 가장 위대한 유산
49세 나이로 첫 앨범을 발표한 그의 삶을 보면서 문득 중년의 나이에 그룹사운드를 결성한 사람들의 이야기 영화 ‘즐거운 인생’이 떠올랐다. 평범한 중년의 가장이지만 그가 특별한 것은 결코 꿈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다시금 꿈꾸어볼 용기를 갖게 하니 말이다.
“아버지가 대중음악을 하셨어요. 그래서인지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음악과 친했죠. 하지만 예술가인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가난이 싫었어요. 방황했던 당시 음악은 나의 유일한 탈출구였죠. 하지만 생각해보면 지금 노래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아버지가 내게 남겨 준 위대한 유산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딴따라 하면 배고프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늘 들으면서 자랐지만 노래를 만들고 부를 때 가장 행복한 그다.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노래에 대한 재능과 열정은 숨길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대학에 입학하면서 당시 유명한 김민기, 한대수 등이 활동했던 서울대학교 노래패 ‘메아리’에서 활동했고 이후 ‘노찾사’ 멤버로 활동을 이어 나갔다.
“메아리 활동을 하면서 사회문제에 대한 사고를 넓힐 수 있었고 그런 의식이 음악에 대한 열정과 맞물려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치며 인생의 가장 정열적인 한 때를 보낸 것 같아요. 하지만 모든 열정을 음악에 쏟아 부을 수 없는 것이 지금 나의 현실이었죠. 생활 때문에 음악을 접어야만 했습니다.”
현실과 꿈, 아름다운 조화 이뤄
음악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고 생활인으로 돌아간 것은 그가 대학을 졸업하면서부터이다. 그는 철저하게 생활인이 되어 살아갔다. 동화제약에 근무하다 지금은 제약원료 관련 무역회사인 ‘청수실업’ 을 운영하고 있다. 그렇게 20여년이 흘렀다.
그에게 음악은 원 없이 해봤던 것이 아니라 못 이룬 꿈처럼 늘 부족하고 목마른 것이었다. 언제든지 발을 뺄 수 있는 정도만 담그고 있어야 하는 테두리 안에서 허락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첫 아이 탄생의 기쁨을, 아내에 대한 감사와 사랑을, 수험생 딸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마음을 담아 삶의 순간순간을 노래로 기록해 왔다. 꿈과 현실사이에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 낸 것이다.
“첫 번째 앨범 ‘희망’은 이렇게 만든 노래들을 한 데 모은 거예요. 생활인으로 살았지만 못다 한 노래에 대한 욕망은 늘 있었나 봐요.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의 감동을 ‘그림을 그리자’라는 노래로 만들었는데 이 노래가 20년 후인 2007년 한국 공익광고협의회에서 만든 출산 장려 캠페인의 CF의 배경음악으로 쓰이게 되었어요. 정말 기뻤죠.”
40대 후반으로 치달을 무렵인 2년 전 쯤 문득 노래를 삶의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마치 청년시절의 열정처럼 일어나기 시작했다. 남들은 하던 음악도 접는다는 49세의 나이에 첫 번째 앨범을 발매하고 그는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소소한 일상의 행복감 아름다운 노래로 담아
‘일상에 괄호 치기’
즉 아무 일 없이 지루하기만 한 일상을 특별한 순간으로 만든 것이 그의 노래가 가진 색깔이다. 그의 노래는 우리의 일상도 특별한 눈으로 바라보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 지를 보여준다. 20여 년 전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의 연장선에 있다.
‘나는 탄천을 따라 이어지는 한강변까지 페달을 밟아본다/가끔 고인 물 지날 때 앞바퀴의 물길 가르는 소리 상쾌한 소음이다/바람 한 점 없어도 달리다 보면 느껴지는 바람처럼 행복도 그럴 거다~’
신용카드 포인트를 차곡차곡 모아 받은 자전거, 그 자전거를 타고 탄천변을 달릴 때의 어린아이 같은 기쁨이 그의 노래 ‘자전거 하이킹’에 잘 드러나 있다.
노찾사 활동 당시 사회 분위기 때문에 그의 노래를 민중가요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의 관심은 처음부터 삶에 대한 관조에 깊이 천착해 있었다. 그는 사랑하고, 새 생명을 탄생시키고, 아이를 키우며, 나이 들어가며 어느 나른한 오후에 부는 바람과 햇살 하나에도 행복해지는 사람이다.
“7080세대를 위한 문화가 너무 없는 것이 안타까워요. 시대를 함께 한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그런 노래를 만들 싶습니다. 그들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고 내 노래 선율에 몸과 마음을 누일 수 있으면 그것으로 행복합니다.”
이춘희 리포터 chlee1218@empa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여 년 동안 우리 귀에 익숙한 노랫말이다. 가수 김민기가 직접 선곡해 ‘노래를 찾는 사람들’ 제1집에 수록된 곡이기도 하다. 다 가는 휴일이 아쉬워 일요일 오후면 묵직해지는 마음을 주변의 소리를 빌어 표현해 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샀던 곡. 이 노랫말이 삶을 지긋이 관조하는 것이 취미이자 습관이었던 한 고등학생의 시선이라는 것에 놀랐다. 그 학생이 바로 오늘 만난 김기수씨다.
올해로 마흔 아홉인 그는 무역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사장님이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멤버로 활동했던 그가 20년 넘게 서랍 속에 꼭꼭 숨겨 놓은 노래들을 ‘희망’이라는 앨범 속에 하나하나 펼쳐냈다.
노래는 아버지가 남겨준 가장 위대한 유산
49세 나이로 첫 앨범을 발표한 그의 삶을 보면서 문득 중년의 나이에 그룹사운드를 결성한 사람들의 이야기 영화 ‘즐거운 인생’이 떠올랐다. 평범한 중년의 가장이지만 그가 특별한 것은 결코 꿈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다시금 꿈꾸어볼 용기를 갖게 하니 말이다.
“아버지가 대중음악을 하셨어요. 그래서인지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음악과 친했죠. 하지만 예술가인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가난이 싫었어요. 방황했던 당시 음악은 나의 유일한 탈출구였죠. 하지만 생각해보면 지금 노래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아버지가 내게 남겨 준 위대한 유산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딴따라 하면 배고프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늘 들으면서 자랐지만 노래를 만들고 부를 때 가장 행복한 그다.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노래에 대한 재능과 열정은 숨길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대학에 입학하면서 당시 유명한 김민기, 한대수 등이 활동했던 서울대학교 노래패 ‘메아리’에서 활동했고 이후 ‘노찾사’ 멤버로 활동을 이어 나갔다.
“메아리 활동을 하면서 사회문제에 대한 사고를 넓힐 수 있었고 그런 의식이 음악에 대한 열정과 맞물려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치며 인생의 가장 정열적인 한 때를 보낸 것 같아요. 하지만 모든 열정을 음악에 쏟아 부을 수 없는 것이 지금 나의 현실이었죠. 생활 때문에 음악을 접어야만 했습니다.”
현실과 꿈, 아름다운 조화 이뤄
음악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고 생활인으로 돌아간 것은 그가 대학을 졸업하면서부터이다. 그는 철저하게 생활인이 되어 살아갔다. 동화제약에 근무하다 지금은 제약원료 관련 무역회사인 ‘청수실업’ 을 운영하고 있다. 그렇게 20여년이 흘렀다.
그에게 음악은 원 없이 해봤던 것이 아니라 못 이룬 꿈처럼 늘 부족하고 목마른 것이었다. 언제든지 발을 뺄 수 있는 정도만 담그고 있어야 하는 테두리 안에서 허락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첫 아이 탄생의 기쁨을, 아내에 대한 감사와 사랑을, 수험생 딸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마음을 담아 삶의 순간순간을 노래로 기록해 왔다. 꿈과 현실사이에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 낸 것이다.
“첫 번째 앨범 ‘희망’은 이렇게 만든 노래들을 한 데 모은 거예요. 생활인으로 살았지만 못다 한 노래에 대한 욕망은 늘 있었나 봐요.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의 감동을 ‘그림을 그리자’라는 노래로 만들었는데 이 노래가 20년 후인 2007년 한국 공익광고협의회에서 만든 출산 장려 캠페인의 CF의 배경음악으로 쓰이게 되었어요. 정말 기뻤죠.”
40대 후반으로 치달을 무렵인 2년 전 쯤 문득 노래를 삶의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마치 청년시절의 열정처럼 일어나기 시작했다. 남들은 하던 음악도 접는다는 49세의 나이에 첫 번째 앨범을 발매하고 그는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소소한 일상의 행복감 아름다운 노래로 담아
‘일상에 괄호 치기’
즉 아무 일 없이 지루하기만 한 일상을 특별한 순간으로 만든 것이 그의 노래가 가진 색깔이다. 그의 노래는 우리의 일상도 특별한 눈으로 바라보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 지를 보여준다. 20여 년 전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의 연장선에 있다.
‘나는 탄천을 따라 이어지는 한강변까지 페달을 밟아본다/가끔 고인 물 지날 때 앞바퀴의 물길 가르는 소리 상쾌한 소음이다/바람 한 점 없어도 달리다 보면 느껴지는 바람처럼 행복도 그럴 거다~’
신용카드 포인트를 차곡차곡 모아 받은 자전거, 그 자전거를 타고 탄천변을 달릴 때의 어린아이 같은 기쁨이 그의 노래 ‘자전거 하이킹’에 잘 드러나 있다.
노찾사 활동 당시 사회 분위기 때문에 그의 노래를 민중가요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의 관심은 처음부터 삶에 대한 관조에 깊이 천착해 있었다. 그는 사랑하고, 새 생명을 탄생시키고, 아이를 키우며, 나이 들어가며 어느 나른한 오후에 부는 바람과 햇살 하나에도 행복해지는 사람이다.
“7080세대를 위한 문화가 너무 없는 것이 안타까워요. 시대를 함께 한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그런 노래를 만들 싶습니다. 그들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고 내 노래 선율에 몸과 마음을 누일 수 있으면 그것으로 행복합니다.”
이춘희 리포터 chlee1218@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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