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사랑 100만인 서명운동에 동참해주세요
지난 8월 울릉도에서 독도까지 국토순례를 마친 길종성 고양시의원을 만났다.
영토지킴이 ‘독도사랑회’. 그가 7년째 고양시의원직 못지않게 비중을 두고 일하고 있는 일이다. 그의 사무실 사방을 꽉 메우고 있는 독도관련 사진, 자료는 시의원 사무실인지, 독도지킴이 사무실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는다.
“사람들은 제가 이러고 있으니 정작 시의원직엔 충실하지 않은 것 아니냐고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시의원이 하는 일과 독도가 우리 땅임을 알리는 것 모두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 땅 독도는 반드시 지켜야
경북 경주가 고향인 그는 역사학을 전공했다. 1988년 대학을 졸업하고 국회의원 비서로 사회 첫발을 내디딘 후 2002년 고양시 시의원에 당선 되었다. 그리고 그 해 9월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유명한 노래의 주인공 가수 정광태씨를 만나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에 담긴 정광태씨의 뜻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독도사랑회’를 창립했다.
길 의원이 이끄는 ‘독도사랑회’는 2004년 8월 울릉도에서 독도까지 이어지는 87.4km의 거리를 헤엄쳐 종단하는 행사를 가졌다. 수심 2.5~3km의 깊은 물살을 헤치고 맨몸으로 헤엄쳐 독도까지 간다는 것은 그 당시로는 그야말로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싸움. 그의 이런 열정에 ‘정치인이고 유명인이니 자신을 알리려고 하는 일일 텐데 저러다 말겠지’ 하던 주변사람들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참가자들은 다양했다.
13세 중학교 여학생에서부터 60세 장년층까지 신청을 받아 구성된 45명이 6개월 정도 훈련에 훈련을 거듭한 뒤 드디어 독도를 향해 출발했다.
“그날의 종단은 하늘도 바다도 도운 길이었죠. 초행길이었는데도 36시간의 장시간에 걸친 싸움을 참가자 모두 완주할 수 있었으니까요.”
2005년 광복 60주년 행사 때는 33명의 여성만으로 구성한 종단팀을 구성했다. 여성들로만 구성된 33인의 선수들은 민족대표 33인을 뜻하며 유관순 애국지사와 같은 한국 여성의 강인함과 한민족의 우수성을 보여주기 위해 여성 선수로만 구성되었다.
당시 정부에서는 선착장에만 들어 갈 수 있다고 했고 아사히 방송에서는 종단 자체를 중계 하겠다고 나섰다. 그것을 빌미로 정부와 협상을 벌였다,
“일본에서도 중계를 한다는데 한국에서 가만히 있게 되면 결국 일본 땅임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냐고 설득했죠.” 결국 끈질긴 그의 고집이 승리했다. 상어와 고래 떼에 쫓기며 사투를 벌였던 2번째 종단은 28시간 만에 성공해 낼 수 있었다.
울릉도 도동항에 독도노래비를 세우다
2005년 8월엔 독도노래비 건립위원회를 발족하고 ‘독도는 우리땅’ 노래가 새겨진 노래비를 울릉도 도동항에 세웠다. 2007년 영어, 불어, 독어로 구성된 팸플릿을 만들어 중학교 1학년 이상 학생들을 선발하여 홍보단을 발족했다. 팸플릿 1000장을 가지고 떠난 학생들은 현지에서 직접 독도를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독도를 알리기 위해 직접 해외원정 홍보를 한 셈이었다. 원정단은 현지에서 섭외가 가능하도록 영어를 어느 정도 하는 학생들로 구성했다. SK의 후원을 받아 무사히 마치고 온 해외홍보팀은 작은 목소리일지 모르지만 독도는 우리 땅임을 분명히 했다. 이어 나라사랑 독도사랑 논술경시대회도 개최했다.
지난 8월 19일엔 4번째 울릉도, 독도 국토순례를 다녀왔고 이번에 독도에 다녀온 후부터는 나라사랑 독도사랑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독도가 우리 땅임을 다시 한 번 주지시키고 자라나는 차세대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자는 뜻에서다. 한편 오는 10월엔 그동안 독도사랑회와 함께 한 분들로부터 고문헌을 수집한 자료를 받아 ‘고지도 전시회’도 가질 예정이다.
김영진 리포터 yjk63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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