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1호 생활축구 여성 심판 변태섭

지역내일 2008-09-12
“운동장을 뛸 땐 세상을 모두 지휘하는 것 같아요”

구릿빛 얼굴에 건강한 웃음이 활짝 핀 생활축구심판 변태섭(44)씨를 만났다. 그는 부천 원미 새로나 여성축구단의 창단 멤버이면서 선수와 심판으로도 활약하는 맹렬 여성이다. 전국에 11명밖에 없는 국가 자격1급을 취득한 경기도 1호 심판으로 일본과 중국을 누비며 여성심판의 영역을 알리는 축구 전도사이기도 하다. ‘주말=축구’라는 생활 공식으로 살아가는 그녀의 축구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하자.

축구와 함께 숨 쉴 수 있는 이유
그는 축구와 산다. 한 달에 두 번 이상 심판을 뛰면 1년에 30경기를, 선수로 뛰다보면 10여 개 대회에 참가한단다. 주말이면 거의 집에 없지만 그가 안심하고 필드를 가를 수 있는 건 남편 원종삼(48)씨와 아들 원상연(25)씨의 든든한 후원이 있어서다. 축구광인 남편은 그녀가 처음 축구를 시작할 때 배려해 준 최초의 응원자. 쉬는 날이면 패스연습을 같이했고 경기 때 늘 응원을 와줬던 조기축구 회원이다. 아들도 엄마가 축구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심판 생활을 하려면 독하지 않으면 못 버텨내요.” 주말에 시간 내야지, 인내심을 길러야지, 공평한 판정을 해야지, 결혼한 여성은 집안일에도 신경 써야 하는 등 여자라서 정말로 힘이 든단다. 본인이 계속 노력하지 않으면 쳐지는 게 이 생활이다.
“살아남으려면 즐겨야 하고 즐기려면 끈질긴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고 나면 성취감과 자부심을 얻을 수 있게 되지요. 힘은 많이 들지만 보람은 그것보다 배가 되니까요.”

여자가 심판을 잘 할 수 있을까?
축구에는 프로 선수 게임을 판정하는 프로심판, 학교 단체를 맡고 있는 엘리트심판, 그리고 생활축구 심판이 있다. 세 분야의 심판들은 국가 1급 자격증을 정점으로 지속적인 공부를 해야만 한다. 지금에 오기까지 그에겐 우여곡절이 있었다. 욕도 먹고 부상도 입었다. 주로 남자 심판이 많은 이 분야에서도 여성을 무시(?)하는 우리나라 남자들 특유의 근성을 볼 수 있었다. 처음 변씨가 축구를 할 땐 지나가던 사람이 ‘여자가 무슨 축구를 하느냐’며 욕을 했단다. 지금은 인식이 좋아졌지만 그 때만 해도 그랬다. 하지만 도움을 준 이도 있다. 현재 유소년축구심판으로 활동하는 이성주(55)씨는 그에게 많은 도움을 줬다. 심판에 몸 바친 사람으로 알려진 이씨는 부천 여성 심판계의 황무지를 개척한 인물이다. 당시 ‘여자들이 과연 심판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정확한 교육과 프로경기 참가 등의 열의로 불식시켰다. 변태섭, 강미선, 김남숙, 박입비 등 4명의 부천여성심판들은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이렇게 제대로 교육 받은 변씨는 유소년축구심판을 맡을 때가 제일 어렵지만 보람을 많이 느낀다. 배운 대로 하나씩 가르치면서 모범을 보이면 그 어느 게임보다 기억에 많이 남고 최선을 다하게 된다고 했다.

새카맣게 그을려 있어도 괜찮습니다
“3월부터 11월까지 경기를 뛰고 나면 나머지 시간엔 교육을 받아요. 1급 자격증을 받기 전엔 매년 공부와 체력 테스트를 해야 하지요.” 경기장에서 새카맣게 그을려 있어도 마음만은 즐겁다. 가끔 하는 가벼운 오심에도 실수를 인정하면 선수들의 오해가 없다. 경기에서 진 선수들이 수고했다고 말할 땐 정말 기분이 좋다.
2004년부터 심판생활을 하다 보니 벌써 사십 대 중반이 됐다. 축구 심판은 체력 소모가 많고 순발력이 뛰어나야 한다. 앞으로 2년 정도 더 뛰고 싶다. 이후에는 후배 양성을 위해 힘쓰고 싶다.
“백지상태에서 도전한 일이었기 때문에 대견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후배들을 길러내고 싶어요. 늦게 도전한 분야라 해도 그동안 공부한 체계와 노하우가 어디 가겠어요? 나이가 어리고 재능 있는 후배들은 여성축구심판에 도전해보세요.”
임옥경 리포터 jayu7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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