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참여할 수 있어서 재미있고 이해도 잘 돼요”

지역내일 2008-08-16
고양시 보건교사들이 펼치는 성교육 현장을 가다

팀티칭(Team Teaching)을 통한 체험형 성교육 프로그램을 선뵌 보건교사들

“인터넷에서 사이트를 여는 도중에 갑자기 야한 동영상이 뜰 때가 많아요. 그냥 들어가 보기도 하고, 사실 부모님 주민등록번호는 대부분 알고 있으니까 아예 회원가입을 하는 경우도 많죠.”(15·정00군)

“19세 금지 영화 보는 건 사실 별거도 아니죠. 공유하는 사이트도 많고요. 정작 부모님들은 잘 모르는 거 같아요. 성에 관해 서로 얘기할 준비도 안 돼 있고요. 시각차가 너무 커요.”(16·이00양)

“우리 반 남자아이의 가방 속에 콘돔이 들어있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 질문을 받은 당신이 교사라면, 부모라면 어떻게 대답할까?

세계 3위로 성폭력 사건이 벌어지는 나라. 아직까지 성에 관한 얘기는 대부분 금기시 되는 나라. 이런저런 성폭력 사건들이 뉴스에 뜨면 그때서야 여태까지 없었던 일이 별안간 벌어진 것처럼 들썩들썩 하다가 제대로 된 예방책 없이 그냥 묻히기 일쑤다. 이런 와중에 정말 중요한 우리 아이들의 안전이나 건강권은 무시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때가 됐다. 사실 부모나 기성세대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빨리, 더 깊이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성에 관련된 다양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더 늦출 수 없을 정도로 제대로 된 성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 시기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가정이나 학교 현장에서 이뤄지는 성교육은 아직까지 형식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아이들의 건강을 학교현장에서 지켜주고 있는 고양시 보건교사들이 ‘팀티칭(Team Teaching)을 통한 성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시범교육에 나선 것. 우선 1차로 일산정보산업고가 선정됐다. 교육은 지난 7월10일 2학년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성교육 전문가 과정 연수를 받은 보건교사 주도하에 오전 8시부터 오후 1시까지 펼쳐졌다.

7개 테마로 나눠 현장감 있게
이번에 치러진 성교육프로그램은 교육인적자원부에서 제시한 성교육 내용 체계와 학생들의 성교육 요구도 분석을 토대로, 학생들이 직접 참여가 가능하고 흥미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7개 테마로 만들어졌다. 알고 싶은 성, 궁금한 성 ‘사랑과 포르노’에서는 음란물, 성기 크기, 자위행위에 대한 정확한 지식 등의 성관련 정보가 제공 돼 긍정적인 성 인식을 높이기 위한 공감을 이끌어냈다.

특히 ‘낙태는 NO!’ 인공임신중절 영상에서 보여준 끔직한 모습에 학생들은 생명과 건강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알자!알자! 피임법’에서는 여러 가지 피임법에 대해 알아보고 모형 및 콘돔 시연도 직접 해보는가 하면 ‘월경주기 팔찌’를 실제로 만들어 보기도 했다. 남학생들도 진지한 자세로 잘 만들었다.

‘소중한 우리, 내 몸은 내가 지켜요’는 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알아볼 수 있었던 시간. 성폭력·성매매 예방 및 피해 후 대처방법을 통해 성에 대해 바르게 알 수 있도록 다양한 사례가 곁들어졌다. ‘에이즈, 예방이 최고!’에서는 성관련 질환의 예방과 대처방법을 OX 퀴즈로 알아보았다. 각종 성병(임질, 매독)과 에이즈에 관한 확실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테마별로 참여 시간은 25분씩.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는 아쉬움을 남겼지만 학생들의 평가는 “직접 참여할 수 있어서 영상을 봤을 때마다 훨씬 재미있고 이해도 잘 됐다”는 이구동성.

테마의 마지막 단계는 ‘나의 미래 생각하기’. 제법 진지해진 자세로 10년 후 내 모습을 적어보는 마무리 시간을 가졌다. 이번 성교육 프로그램을 총괄한 일산정산고의 박수진 보건교사는 “현장에서 느끼는 성에 대한 청소년들의 실태는 정말 안타까울 정도”라며 “학생들이 상당히 공감하면서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만큼 앞으로 더 많은 학생들에게 실질적으로 다가설 수 있는 알찬 건강프로그램이 다양하게 개발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피력했다.

부모가 아이들로부터 성에 관한 질문을 받고 당황해 하는 것은 성교육이라는 것을 성행위에 대한 개념을 깔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부모들도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실제로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들이 성교육을 받으면 자녀들에게 말하기 어려운 민감한 주제들에 관해서도 더 쉽고 편하게 얘기하는 것으로 연구결과 나타났다. 건강하게 자녀를 키우기 위해서 부모가 직접 얘기하고 나서는 것이 좋다는 것. 자녀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것, 더 이상 쉬쉬하기 보다는 부모들부터 솔직하고 적극적으로 나서보면 어떨까.

미니인터뷰- 오희숙 고양시 보건교사 회장

성 범죄 연령이 점점 어려지고 있다. 더구나 가해학생은 죄의식이 없는 데다 집단화 양상까지 보이는 등 범죄의 질이 성인범죄 못지않게 나빠지고 있어 걱정이다. 교육부에서는 성교육 및 성폭력예방에 대한 자료가 초저, 초중, 초고, 중, 고로 학년별로 편성이 되어 지침이 하달이 되었지만 독립편성 된 수업시수를 확보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특히 중·고등학교에서는 성교육 전문교사로 보건교사가 지정이 되어 있으나 직접 수업을 관장하는 시간이 주어지진 않는다. 따라서 성교육이 성윤리, 성도덕, 성적 자기 결정권 등의 분야를 체계적이면서도 전문적으로 다루어지기 못하고 있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학교보건법 9조2항 ‘학교에서 모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보건교육을 체계적으로 실시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학교보건법이 2007년 12월14일 통과됐고 지난 7월9일 공청회를 거쳐 다음 달쯤 시안과 교육과정 개정안이 발표될 예정이다. 건강한 성에 관한 지속적인 교육이 절실한 상황에서 그동안 일회성으로 실시되던 교육이 이후로는 체계적이면서도 전문적으로 실시될 수 있음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성은 자기 사랑에서 출발해야 건강하게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앞으로 내일신문같이 영향력 있는 매체에서 상설체험관을 열어 현장감 있는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장을 만들어보면 좋겠다. 또는 보건교사들이 열심히 만들어 놓은 좋은 건강프로그램을 일반화한다거나, 지역사회 자원 즉 바우처사업, 건강교실 등을 이용한 보건교육의 연계가 잘 이루어져 제대로 된 성교육이 다양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다 같이 협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프로그램을 통해 성교육을 받은 학생들의 이구동성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다섯 차례 정도 성교육을 받은 것 같은데, 이번 교육은 머릿속에서 지우기 힘들 거 같습니다. 특히 낙태에 관한 내용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앞으로 이번에 했던 교육처럼 참여를 할 수 있는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이번 일을 계기로 다른 친구들에게도 성에 대해 바른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얘기하려고 합니다.”(신준호)

“우리가 받은 성교육을 다른 학교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왜냐면 지금까지의 성교육과는 많이 다른 효과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여성과 남성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막상 성에 대해 더 피해를 보는 건 여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성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도록 현실적인 교육이 강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이은식)

“아직 성에 대해서 잘 모르겠지만, 자라는 시기별로 교육을 적절하게 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장감 있는 낙태비디오를 보면서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정말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한 번 더 생각들을 하게 될 테니까요. 그리고 현재보다는 미래를 위해 좀 더 생각해보는 장을 마련해줬으면 좋겠습니다.”(김경욱)

“성교육은 성에 대한 지식을 알 수 있고 건강하게 자기관리를 철저히 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냥 말로 얘기해주거나 비디오로 보여주는 것보다는 이번처럼 구체적으로 다양하게 해 줘서 더 재미있고 유익했습니다. 낙태에 관한 비디오는 저뿐만 아니라 많은 아이들에게 충격이었던 만큼 앞으로도 다양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봅니다.”(이현정)

김태나 리포터 kimtaen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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