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검색결과 총 2개의 기사가 있습니다.
- 3.1운동, 안산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기 3·1운동이 올해 100주년을 맞는다.100년 전 그날, 안산은 어땠을까? 당시 인구 8천이던 수암면에서는 2천여 명이 거리로 나와 대규모 만세시위가 열렸고, 옛 관리들의 공덕비가 세워져 있던 비석거리(수암동 498-5)에는 현재 3.1운동 기념비가 세워졌다.방방곡곡에 만세함성이 울려 퍼지던 3월, 안산 곳곳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여해 선열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이루어진 역사를 되새겨보는 건 어떨까?■ 수암동 만세길 걷기1919년 서울에서 봉기한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3월 30일 수암 비석거리, 4월 1일 반월장터, 4월 4일 군자면사무소 등지의 만세운동에 4천여 명이 참여했다. 그 중 비석거리 만세운동은 인근 18개 리 주민 2천여 명이 참여한 안산 최대의 만세운동이다. 주민들은 태극기를 들고 면사무소, 주재소, 보통학교, 향교 등을 돌며 독립만세를 외쳤다.100년 전 그때를 생각하며 후손들이 수암동 만세길(원후마을-비석거리-안산초등학교-안산향교)을 함께 걷는다.-일시/장소 : 3월 1일(금) 오전 10시, 안산초등학교 출발-문의 : 615안산본부■ 3.1운동 유적지답사 및 경기만 평화번영 기원 순례매년 수암 비석거리 3.1만세운동길 걷기 행사를 진행하던 안산지역사연구모임에서는 수암동 비석거리 답사 후 경기만 평화번영 기원 순례를 한다.버스 2대로 출발해 안산초교(안산 보통학교 터)-수암 주재소 터-비석거리(안산3.1운동기념비)-독립유공자 유익수 묘(부곡동)-독립유공자 김병권 묘(화정리)-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 코스로 답사한다.원일중학교 신대광 수석교사와 경기만포럼 김갑곤 사무국장이 유적지 해설을 맡았다.-문의 : 안산지역사연구모임■ 안산시 ‘3.1운동 기념식’그동안 안산초등학교에서 진행되던 ‘3.1운동 기념식’이 올해는 안산문화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100주년을 기념해 더 많은 시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여 진행하는 행사장에는 대형 태극기와 소녀상이 설치되며, 해돋이극장 메인홀에서는 3.1운동 사진전이 열린다.군악대, 시립국악단, 극단 이유의 공연 등 시민들이 3.1운동의 역사적 현장을 체감하고 함께 재연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2016년부터 안산시 3.1절 기념행사에 참여하고 있는 극단 이유는 안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홍순칠 선열을 주인공으로 한 연극 ‘1919 독립의 꽃 안산’을 무대에 올리며 독립에 대한 갈망을 그려낸다.-일시/장소 : 3월 1일(금) 10:00~13:00, 안산문화예술의전당 해돋이극장■ 땟골 삼거리, ‘고려인독립운동 기념비’ 건립 출범식3월 17일 땟골삼거리에서는 ‘대한국민의회 독립선언 100주년 기념식’과 ‘고려인독립운동 기념비건립 출범식’이 열린다.강화도 조약(1905)으로 연해주로 밀려나 고려인이 된 사람들. 올해는 고려인들이 연해주를 개척한 지 154년, 연해주에서 처음으로 항일의병을 일으킨 지 116년이 되는 해다. ‘기억되지 않은 독립운동사’로 불리는 고려인들의 항일투쟁을 기억하는 기념비를 국내에 건립하는 ‘고려인 독립운동 기념비’ 건립 사업은 이날 발족대회를 거쳐 올해 안에 기념비를 세우게 된다.-참여문의 : 사단법인 너머(안산시 단원구 지곡로6길 37)■ 중앙도서관, ‘3.1운동&임정수립 100주년’ 특집영화 상영중앙도서관은 3월 한 달 간 매주 토요일에 3.1절 특집 영화를 상영한다.친일파를 둘러싼 숨막히는 작전 ‘암살’(3/2), 독립을 위해 목숨 바쳤던 의열단의 신념을 다룬 영화 ‘밀정’(3/9), 가슴 먹먹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 ‘눈길’(3/16), 묻으려 할수록 드러나는 역사 관동대학살을 다룬 ‘박열’(3/23), 절절한 슬픔과 좌절 속에서도 한 편의 서정시를 길어 올리던 청년 ‘동주’(3/30)를 보며 비극의 역사 속에서 열정적으로 살다간 선열들의 삶을 반추해보자.-일시/장소 : 3월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중앙도서관 시청각실 2019-02-27
- 8월 안산의 독립 유공자들 올해는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된 지 72주년이다. 해마다 8월은 조국의 해방을 위해 피 흘린 선조들을 기억하며 뼈아픈 역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다짐하는 달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안산에는 어떤 독립운동가들이 계셨을까? 그들의 숭고한 삶을 기억하는 우리들은 얼마나 될까? 교과서에 등장할 정도로 유명하진 않지만 안산에도 조선의 독립을 위해 일제에 항거한 독립유공자들이 계셨다. 3.1 만세운동을 주도한 와리마을 대지주 홍순칠 선생과 만세운동을 끝까지 비폭력 평화운동으로 이끌었던 유익수 선생의 삶을 소개한다.안산의 독립운동 ‘수암면 비석거리 만세시위’1919년 3월 30일. 수암면사무소가 위치했던 수암면 비석거리에는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는 시위군중으로 뒤덮었다. 일제 경찰들 눈에는 ‘마치 눈사태가 덮친 것처럼’ 하얀옷을 입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대한 독립 만세’를 불렀다고 표현할 정도로 많은 인원이 모였다. 시위 군중들의 손에는 몇 일 전부터 몰래 숨어서 만든 태극기와 독립선언서가 들려있었다. 인근 지역 18개리에서 모여든 군중은 2000여명. 당시 기록에 의하면 수암면 인구가 8000명 남짓이니 어린이와 노인 여성을 제외하고 활동하던 주민 대부분은 비석거리 만세 시위에 참여한 것이다.수암면 비석거리 시위는 경기도 인근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시위였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었던 것일까? 향토사학자들은 안산에서 만세시위는 당시 지역 유지들이 체계적이며 적극적으로 만세운동을 독려하고 준비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와리 대지주였던 홍순칠 선생을 비롯해 진주 유씨가문의 유익수 선생, 능곡리의 윤병소, 화정리의 김병권, 수암리의 이봉문, 산현리의 윤동욱 선생이 만세운동을 주도했으며 이들은 거사일 전에 직접 태극기를 만들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참여를 독려할 정도로 만세운동에 적극적이었다.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만세운동에 적극 나섰다.와리마을 대지주 홍순칠“해방되면 국유지는 농민들에게 분배”경기도 시흥군 수암면 와리(현재 단원구 와동)에서 1877년 태어난 홍순칠 선생은 안산에서 진행된 3.1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남양 홍씨의 세거지였던 와리에서 대지주였던 그는 그의 나이 42세에 기미년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게 된다.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촉발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선생은 자신의 사랑방에서 이웃사람들과 태극기 3000여개를 만들었다. 수암면 장날이었던 30날에 대규모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거사 전날 선생은 각 동리를 돌아다니며 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했다. 선생은 소작인들을 설득하기 위해 “조선이 독립하면 국유지는 소작인들의 소유가 되니 이 때 만세를 부르는 것이 득책이다”라며 소작인들을 설득했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일제는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신고하지 않은 토지를 일제총독부 소유로 만들었는데 이에 대한 소작인들의 반대정서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과 기대를 만세운동에 담아내고 싶었을 것이다.선생은 경찰 조사에서 만세운동을 벌인 이유에 대해 “조선 독립을 희망하는 사람으로 독립을 하려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시위운동을 할 필요가 있다”당당히 말할 정도로 기개가 넘친 분이었다. 하지만 일제의 고문은 모질었고 서대문형무소에서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자택에서 13년 동안 고문 휴유증으로 병고를 치르다 향년 55세 일기로 타계했다.선생이 만세시위운동을 참가한 후 선생의 집안은 거의 풍비박산이 날 정도로 가세가 기울었다. 지금은 와동체육공원에 선생의 공적비가 남아있다.평화주의자 유익수 선생“건물, 기물은 우리 민족 재산 파손하지 말자”조선시대 청문당을 지은 유시회의 7세손인 유익수 선생은 월피동에서 큰 잡화상을 운영했다. 당시에도 충분한 부와 명예를 누리던 지역의 유지로 부유한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선생은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유익수 선생의 종손(宗孫)이며 초대 안산문화원장을 지낸 유천형 씨는 “30날 만세운동을 벌인 유익수 할아버지는 이튿날 반월면 시위도 주동하면서 만세 시위자로 체포된 사람들 중 가장 긴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을 거쳐 징녁 1년만에 집으로 돌아오셨지만 고문 휴유증으로 3년 만에 돌아가셨다”고 말한다.특히 선생은 만세운동 중 시위가 과열되지 않고 평화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시위대들을 지휘했다. 선생은 “건물이나 기물은 우리 민족의 재산이니 파손하지 말라”며 과격해진 시위대를 안정시켰다.유천형 씨는 “할아버지처럼 조선의 독립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던지신 분들 덕분에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 안산에 삼일운동이 있었는지 3.1운동과 관련된 유적지가 있는지도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안타깝다”며 “자라나는 후손들이 우리 지역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고 애향심을 키워나가기 바란다”고 당부했다.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내려놓고 조선의 독립을 위해 만세 운동을 이끌었던 홍순칠 선생과 유익수 선생. 홍순칠 선생의 공적비는 한때 자신의 기름진 들판이었을 와동체육공원 야트막한 언덕위에 어린이 물놀이장이 바라보고 서있다. 유익수 선생의 묘소는 정재초등학교 뒤편 정수장 입구 주차장 아래편에 위치해 있다. 8월 우리고향의 독립유공자들의 흔적을 찾아 감사하다는 꽃 한송이 바쳐보는 건 어떨까? 2017-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