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여름방학이 시작된다. 금년에는 비가 많이 온다고 하는데, 얼마나 무더울지 벌써 걱정된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과 함께 여름방학 때 리딩엠 센터에서 <전집 읽어내기> 특강이든, 한국사 특강이든 시원하게 보낼 생각도 한 켠으로 해본다. 특히 지난해 8월 중순,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준비했던 리딩엠 한국사 특강을 열띤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했던 기억이 난다. 수업 내내 역사 이야기에 귀 기울이던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동자는 특강 수업을 더없이 소중한 시간들로 채워 주었다. 평소 정규수업 시간에 비문학 도서 읽기에 어려움을 느껴 왔던 한 아이는 이번 특강을 통해 역사도서와 친숙해지며 스스로의 힘으로 한 단계 더 성장하는 모습을 이루었다. 매 방학 때마다 진행하는 한국사 특강이지만, 필자 또한 여름방학 특강을 진행하며 새삼 많은 것들을 얻었다. 역사의 무궁무진한 힘이 느껴졌다.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를 구분하는 기준은 문자의 유무다. 문자를 발명한 이래로 인류는 삶의 노하우를 기록으로 축적하며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그리고 이 작은 기록들이 모이고 모여 역사가 되었고, 그 중 특별히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기록들은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우리 곁에 고전으로 남아 있다. 이처럼 역사에는 우리 조상들이 겪은 시행착오나 흥망성쇠의 모든 것이 담겨 있기에 우리는 그것을 인류 지혜의 총합이자 보고라고 하는 것이다.
학업, 성적, 재미, 지식, 교양, 통찰 등 우리가 역사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그 중에서 필자는 ‘미래’라는 키워드에 초점을 맞추어볼까 한다. 중국 한나라 때의 역사가 사마천은 한 무제로부터 궁형의 치욕을 당한 이후에도 비루한 목숨을 부지해 나간 끝에 불후의 역사서 <사기>를 완성한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왜 역사를 기록해야만 했냐는 세간의 질문에 그는 “지난 날을 서술하여 미래에 희망을 걸어본 것입니다.”라는 답을 남겼다. 또한 그는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 진나라가 통일 이후 불과 10여년 만에 멸망한 원인으로 ‘막힌 언로’를 꼽으면서, “지난 일을 잊지 않는 것이 나중 일의 스승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태조부터 철종까지 조선왕조 472년의 역사를 담은 조선왕조실록은 오늘날 매우 가치 있는 문화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이 방대하고 소중한 실록이 임진왜란 당시 모두 불타 없어질 위기에 처한 적이 있다. 당시 조상들도 실록의 가치를 매우 중히 여겨, 동일한 인쇄물 4부를 만들어 전국 4개의 장소에 나누어 보관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머지않아 3개의 장소에 있던 실록이 모두 불에 타거나 없어지고, 전주 사고에 있던 마지막 1부만 남겨지게 되었다. 이 소식을 접한 전북 정읍의 선비 ‘안의’와 ‘손흥록’은 실록을 내장산 깊은 산속으로 옮긴 후 무려 14개월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그것을 안전하게 지켜냈다. 그리고 그들 덕분에 500년 후를 살고 있는 우리가 조선의 역사를 더 온전히 공부하고, 그것으로부터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두 사람은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실록을 지켜냄으로써 미래 세대에게 큰 보물을 전해준 것이다.
한편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는 자신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했다. 역사란 고정불변의 과거가 아니므로, 미래를 준비하는 이에겐 끊임없이 생동하는 지혜가 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 가능하다. 또한 <사피엔스>의 저자로 유명한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과거로부터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즉 인간은 자신이 속한 세계의 규범이나 체계, 질서만이 유일한 방식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어, 역사를 공부하지 않으면 과거에 뒷덜미를 잡혀서 지금 이대로 살고 있는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뜻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역사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공부하는 이유는 ‘과거로부터 새어나오는 희미한 빛이 이제부터 자신이 들어서려는 앞날의 어둠을 밝혀줄 것이라는 희망’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건 국가의 미래와 같은 거대담론만이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개인의 삶, 개인의 미래도 마찬가지다. 삶의 여정에서 가끔씩 길을 잃었다는 느낌을 받을 때 우리는 이정표를 찾기 마련이다. 이럴 때 그것을 굳이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지금 자신 옆에 놓여 있는 역사도서의 책장을 펼치는 순간 그것이 우리에게 훌륭한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오늘부터 역사도서를 읽으며, 자신만의 미래를 밝혀줄 지혜의 등불을 만들어 나가기를 고대한다.
책읽기와 글쓰기 리딩엠 평촌 교육센터 이상준 총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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