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에게도 패자에게도 괴롭기만 한 복기. 그럼에도 우리는 복기를 해야 한다. 승리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습관을 만들어주고, 패배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준비를 만들어준다.”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 중에서
이제 며칠 뒤면 수능 성적표가 나온다. 그리고 다음 주면 논술 고사의 합격자 발표도 기다리고 있다. 동시에 새로운 예비반을 가르치기 위한 연중 커리큘럼을 다시 점검하고, 수업자료를 보완해야 하는 시기이다. 조훈현 국수國手의 책을 읽다가 '복기復碁'에 대한 그의 금언에 마음이 움직인 것 역시, 한 해의 대학입시가 마무리되는 이 시기가 바로 복기의 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선생이 똑같이 가르쳐도 각양각색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입시인지라, 나의 복기가 간단할 수는 없다. 그래도 올해에는 큰 변수 없이 그간의 실력들을 대체로 잘 발휘한 것 같아서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 요즘이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다음 주에 있을 수시 합격자 발표에 긴장되는 것도 사실이다. 당사자인 제자들과 학부모님들의 마음은 오죽할까.
우산장수 아들과 소금장수 아들을 둔 할머니가 늘 울 수밖에 없는 것처럼 희비가 교차할 수밖에 없는 비정한 승부의 판을 생업으로 하는 나로서는 기뻐도 마냥 기쁠 수 없고 슬퍼도 마냥 슬플 수 없을 것을 안다. 이긴 자도 패배한 자도 또 다른 승부를 이어가야 하기에, 우리는 기뻐도 아파도 마음을 추스르고 지나온 자신의 수와 세계의 수를 하나하나 직시하고, 곱씹어 점검해야 할 것이다. 나머지는 그 결과대로 또다시 힘을 내서 의연하게 걸어가는 것이리라. 이제 하나둘씩 대입 합격의 기쁜 소식을 전해줄 제자들에게 <노자>의 구절을 미리 권하며 글을 맺는다. “戰勝以喪禮處之(전승이상례처지)” 전쟁에서 승리한 자는 패한 자의 슬픔을 먼저 살펴서 상갓집의 예의로 처신해야 한다는 뜻이다.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고생 많았다. 그러나 반드시 겸손해야 한다. 승부의 끝에는 슬픈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숨인국어학원
이전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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