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학년도 대입은 한마디로 ‘인문계 패싱’으로 설명할 수 있다. 외국어고(이하 외고) 미달 사태도 이와 무관치 않다. 올해 처음 실시된 문이과 통합형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에서 인문계열 수험생이 주로 선택하는 수학 ‘확률과 통계’ 응시자는 51.6%였고, 자연계열 수험생이 대다수인 미적분 응시자는 39.7%였다. 그런데 수능에서 1등급 비율은 미적분이 무려 87.3%이며, 확률과 통계는 5.8%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자연계 수험생에게 유리한 이런 수능 구조는 수시모집에서 인문계 수험생들의 수능 최저학력기준(이하 수능 최저) 충족에도 매우 불리하게 작용했다. 반면, 자연계 학생들의 수능 최저 충족률은 높을 수밖에 없었다. 수능 수학에서 공통문항 75%를 인문계, 자연계 학생들이 같이 치르다 보니 상대적으로 수학 실력이 부족한 인문계 학생들이 대부분 하위권을 형성했고, 선택과목인 미적분과 기하 25%에서 그 격차를 훨씬 더 벌린 셈이다. 이로 인해 2022학년도 정시모집 인문계 상위권 대학과 교대는 ‘자연계 침공’으로 초토화됐다. 높은 수학 점수로 무장한 자연계 학생들이 경상계열을 중심으로 대거 교차지원을 했기 때문이다.
외고·국제고·자사고 준비하는 학생이라면 자신과 맞는 학교인지 면밀히 살펴야
미래 핵심 산업이 AI, 컴퓨터, 소프트웨어, 반도체, 에너지 등으로 옮겨 가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대세여서 자연계 선호도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표준화된 시험인 수능에서 평가의 공정성이 매우 크게 훼손된 점은 비판하고 싶다. 시험은 누구에게나 공정해야 하므로 더더욱 그렇다. 자연계 학생들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면, 인문계 학생들은 열심히 뛰어봤자 불리한 플레이어일 뿐이다.
이런 학습효과는 자연계열이 없는 외국어고?국제고 입시에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의대 정원 증가, 약대 통합 6년제로 전환, 첨단산업 관련 신설학과 증가 등 자연계열 수요가 증가하는 점도 외국어고 국제고의 입지를 더욱 좁게 하고 있다.
또한 ‘수능 영어 절대평가제’, ‘학령인구 감소’와 맞물려 <표 1>에서 보듯 외고 경쟁률은 매년 감소 추세다. 올해 전국 30개 외고 일반전형 경쟁률은 1.07에 불과하며, 1대 1 이하도 14개교나 되는 점을 감안하면 존폐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2011~2015학년도 외고 과학고 영재고 진학현황’에 따르면, 외국어고의 5년간 동일 어문계열 진학자는 31.3%에 불과했다. 따라서 외고를 무턱대고 지원하기보다는 나에게 잘 맞는지, 허와 실은 없는지 잘 따져보고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외국어에 능숙한 인재 양성을 목표로 설립된 외고는 외국어 교육을 심도 있게 받을 수 있고 대입 실적이 좋아 상위권 중학생이 선호하는 고등학교다. 하지만 그동안 특목고, 자율고 등 전기 고등학교에 학생의 우선선발권을 부여했기 때문에 후기 고등학교였던 일반고등학교(이하 일반고) 학력 저하의 주범으로 지목됐다. 이 때문에 2018년부터 외고, 국제고, 자사고와 일반고(자공고 포함)는 고등학교 입시를 동시에 실시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 학교들이 도입 취지와는 달리 귀족학교, 진학을 위한 입시학원으로 변질됐다고 판단해 2025년부터 외고 국제고 자사고는 모두 일반고로 전환하게 했다. 따라서 외고 국제고 자사고를 준비하는 학생이라면 자신과 맞는 학교인지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영어를 기본으로, 국어 수학 사회 과학 과목의 학업역량도 신중히 파악해본 후 지원하길
외고의 장점은 영어와 제2외국어 위주로 교육과정이 편성되고, 외국어 전문교과를 80단위 이상 이수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언어 감각이 있고 어학계열로 진로를 정한 학생에게는 상대적으로 유리한 교육환경이다. 설립 취지대로 동일계로 진학만 한다면 어학계열 특기자전형으로 합격률도 높은 편이다. 또한 우수한 성적의 균질한 집단이기 때문에 경쟁 속에서 서로에게 자극을 주고받는 학습 분위기가 형성된다.
반면, 비슷한 성적대의 학생이 몰려 있으므로 내신에 대한 경쟁과 스트레스가 심하다. 영어 내신만 우수해 입학한 학생은 자칫 내신 경쟁에서 낙오될 수 있고, 기숙사 생활을 하는 외고라면 단체생활에 따른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이렇듯 자신이 생각한 것과 실제 외고의 현실이 다를 경우 부적응할 수도 있다. 외고에 와서 이공계열과 의학계열로 진학하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이다. 교육과정이 외국어 중심이고 전공어 수업 시수가 많아서 이과계열 수업을 전적으로 혼자 준비하거나 방과 후 수업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외국어 중심으로 교육과정이 편제되어 있기 때문에 이공계 학생들이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진학하기도 어렵고, 우수한 학생들 속에서 교내 상을 수상하기도 녹록지 않다. 심화된 외국어 교육을 받고 이를 통해 대학을 진학하고 싶은 학생이 아니라면 외고는 정답이 아니다. 외고 문제의 해법은 간단하다. 외고 입학생이 특화된 외국어 교육을 받아 언어 인재로 성장하고, 전공적합성을 살려 어문계열로 대학을 진학하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2018학년도부터 시행된 ‘수능 영어 절대평가제’ 이후 수능에서 영어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약화됐다. 따라서 영어 성적만 높다고 외고를 무턱대고 지원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국어, 수학, 사회, 과학 과목의 학업역량도 신중히 파악할 것을 권한다. 문·이과 통합형 수능으로 자연계 수험생 유리해진 대입도 변수다.
외고 역시 바뀐 교육 지형을 냉철하게 인식해야 한다. 내신 따기 쉬운 일반고와 내신과 수능 준비가 모두 가능한 명문 일반고로 유턴하는 외고 준비생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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