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장인수
펴낸곳 도서출판 삼인
가격 13,500원
아버지와 엄마는 만년(晩年)의 삶을 살고 있다. 만년이란 참 쓸쓸한 것 같다. 가깝던 친구나 친척들, 이웃들이 죽거나 발길이 뜸해진다. 점점 말벗이 없어진다. 아버지와 엄마는 만년의 쓸쓸함을 감내하면서도 늘 표정이 밝다. (중략) 아버지는 수백 가지 씨앗을 싹을 틔우는 데 아주 큰 공을 들인다. 자연을 관찰하고 탐구할수록 무궁무진한 비밀을 캘 수 있다. “거름 중에 가장 좋은 거름은 발걸음이여.”
흙으로부터 출발한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
모처럼 흙냄새 폴폴 풍기는 책을 만났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던 대자연 속 일상을 훔쳐보는 느낌이다. 저자 장인수는 충북 진천군 초평면 들판에서 나고 자란 시절을 반추하며 현재를 되짚는다. <거름 중에 제일 좋은 거름은 발걸음이여(아버지와 흙으로부터 배운 이야기)>는 그런 의미에서 삶의 거름이자, 저자의 소소한 깨우침이 담긴 인생의 분진이다.
그 중심에 우리 시대의 아버지, 어머니가 있다. 저자는 ‘부모님은 대개 모든 곳이 일터다. 마당도, 대청마루도, 안방도 모두 일터다. (중략) 부모님은 문명이 주는 편리를 거의 누리지 못하고 고단한 노동을 숙명처럼 여겼다. 그리고 자연이 주는 희로애락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간다’며 인생의 덕장인 부모를 떠올린다.
중년의 아들은 투박했던 부모의 사랑을 본다
자식을 투박하게 사랑했던 부모의 마음은 도시의 중년에게 어떻게 다가올까. 저자는 돈을 벌어 소비하고 자식 교육이 절대적인 의무이자 삶의 방식인 냥 살아간다고 고백하지만, 시골에 갈 때마다 부모님께 온갖 동식물의 안부를 묻는 아들이다. 그리고 ‘묻지 않은 것들의 안부와 근황을 자세히 토설하는, 생기와 활력이 넘치는 늙은 음성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본다. 자연으로부터 인생을 배워온 부모에게 차마 표현하지 못한 존경의 시선을 담아, 무심한 듯 그렇게 본다. 마치 스스로 ‘오십 줄이나 됐는데 난 아직 철이 없다’고 내비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천성과 자연이 가르쳐준 삶의 지혜’를 이미 초연한듯하다.
아들을 보며 패랭이 청년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저자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며 도시인이 되었고, 교육열이 높은 강남지역 교사이자 대학입시 최전방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진학담당 교사이다. 그럼에도 ‘나무꾼, 촌놈, 바보, 패랭이 청년’이라는 별명처럼, 자연의 가르침과 흙이 주는 교훈을 잊지 않고 산다.
‘아버지의 낫, 삽, 호미, 예초기에는 풀꽃과의 싸움, 애증, 교감이 들어 있다. 아버지가 지나간 길에는 쑥부쟁이와 패랭이꽃이 피었다. 아버지는 들꽃으로 살다가 들꽃으로 돌아가실 것이다.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무덤이 풀과 야생화에 뒤덮인 것처럼. 나와 내 아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 집안은 들과 풀을 사랑하는 들꽃의 족보를 지녔는지도 모른다’는 고백처럼, 저자는 제 아들을 보며 자신의 아버지처럼 그렇게 아버지가 된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당신도 그렇게 아버지, 어머니가 되라’고 무언의 선동을 한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쯤이면 중년이 된 패랭이 청년의 선동에 조금씩 동조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우리도 (조금씩 성장해가는) 아버지, 어머니가 된다(고 믿고 싶다).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