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수학
김통영 원장
꽤 어린 시절 꽃이 나는 좋았다. 봄날의 벚꽃, 여름의 장미, 가을의 코스모스가 그 계절에 알맞게 멋진 꽃을 피우면 아름다움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어린 날의 나에게만 해당하는 얘긴 아닐 것이다.
마흔이 가까워지기 시작한 몇 해 전부터는 여전히 꽃도 좋지만 이제는 단풍이 훨씬 더 좋아졌다. 꽃은 그 화려함이 며칠 가지 않지만 단풍은 비교적 더 긴 시간 함께 해 줄뿐더러 무엇보다 꽃 보다 더 마음을 당기는 요소가 두 가지 있다 하겠다. 하나는 봄에 가지에서 나와 일년 가까운 오랜 시간을 나무와 함께 하며 광합성이라는 헌신을 해 온 그 역사에 있고 다른 하나는 꽃은 떨어져도 잎이 남지만 단풍은 곧 낙엽이 되어 떨어지면 앙상한 가지만 남고, 존재하지 않게 됨으로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역설을 춥고 긴 겨울 내내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누구나 어린 시절에는 남보다 더 빨리 성취하고 싶고 돋보이고 싶은, 비유하자면 꽃과 같은 존재가 되고자 하는 열망이 강하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스스로가 그렇게 화려한 존재가 되기 힘들다는 것도 평범한 이가 깨닫게 되는 일이다. 앞서간 남들을 보며 부럽기도 하고 체념도 하는 사람들이 퍽 많다.
그런데 더욱 더 나이가 많아지면 나를 앞섰던, 내가 동경했던 누군가가 어느 순간 보이지 않고, 존재감이 거의 없던 누군가가 강한 빛을 내는 일을 종종 경험하게 된다. 집안이 별로여도, 어릴 때 공부를 딱히 잘 하지도 못했던 이가 조급해 하지 않고 묵묵하게 자기의 최선을 오랜 시간 다하며 견디고 견디어 누구도 쉽게 넘보지 못할 영역으로 진입해버리는 이런 멋진 일.
20년 가까이 학생들을 지도하며 헤아리기 힘들 정도의 다양한 학생들을 보아오니 처음에 탁월해 보였던 학생들이 어느 순간 존재감이 사라지고 정말 평범해 보였던 학생들, 아무 존재감이 없던 학생들이 묵묵히 노력을 계속 해서 우뚝 서게 되는 일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고 입시도 사용하기 따라서 꽤 많은 시간이 주어진다. 지금은 꽃에 가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안 보이는 잎들처럼 자신만의 때를 기다리며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학생들을 지켜보아야겠다. 가능하다면 ‘네가 원한다면 저 꽃들보다 빛나는 순간을 만들어낼 수 있어!’라는 메시지를 아이들에게 주고 싶다. 그러면 분명 깊은 가을에 꽃보다 더 빛나는 잎으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경탄과 깨달음을 주는 존재로 세상에 드러나게 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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